정부는 연일 혁신 성장의 동력으로 모험자본 육성을 강조하며, 4차 산업혁명과 벤처·스타트업 생태계 활성화를 위한 다양한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금융 현장 참여자로서 이런 흐름 속에 내재된 근원적 고민을 하게 된다. 모험자본의 개념을 역사적 맥락과 금융의 본질적 기능 관점에서 차분하게 재정립해 볼 시점이다.모험자본의 기원은 2차 세계대전 직후 미국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전쟁을 통해 기술은 비약적으로 발전했으나, 담보가 부족한 신기술에 자금을 지원하기란 보수적인 은행으로서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이 간극을 메우기 위해 1946년 조르주 도리오가 세운 ARDC(American Research and Development Corporation)는 모험자본의 원형을 제시했다. ARDC는 미래가 불확실한 기술 기업에 장기 자본을 공급하고, 경영에 참여해 기업 가치를 제고하는 방식을 택했다. 오늘날 미국의 기술 패권은 연구실의 아이디어를 시장의 산업으로 구현해 내는 과정에서 모험자본의 ‘인내’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최근 모험자본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제시되었다. 모험자본을 각종 법에 근거한 벤처조합, 소부장조합 등 투자 기구의 형태로 한정하려는 경향이 보여 우려가 일고 있다. 형식이 본질을 앞서는 주객전도의 결과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금융 시장에서 가격 변동성 등 위험을 기꺼이 감내하는 투자라면, 형식적 주체가 무엇이든 모험자본 범주에 포함하는 것이 타당하다. 비상장 기업 구조 개선과 성장을 지원하는 사모펀드, 자본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하여 기업이 원활하게 자금을 조달할 여건을 조성하는 주식형 펀드 등 자본시장법상의 집합투자기구들도 엄연히 모험자본에 해당된다. 단지 형태만을 이유로 이들을 모험자본의 범주 밖으로 밀어낸다면, 실질적으로 산업 성장의 한 축을 담당해 온 투자 주체들이 정책적 논의에서 소외될 우려가 있다.
모험자본의 판단 기준은 금융의 외형이 아니라 최종 투자 대상 기업과 위험 수용 정도여야 한다. 기업의 잠재력을 믿고 위험을 부담하며 지분을 인수해 성장을 돕는다면 모험자본이다. 벤처조합일지라도 이미 검증된 기업에 안전한 담보부 대출을 하고 원금 보존에 치중한다면 모험자본이 아니다. 벤처조합이 투자하면 모험자본이고, 사모펀드가 투자하면 모험자본이 아닌 모양이라면 우스꽝스럽다. 따라서 앞으로 정책에 보다 폭넓고 유연한 접근이 깃들기를 기대해 본다. 불확실성이 크지만 성장 가능성을 지닌 기업을 지원하는 자본이라면, 그 형태와 구조를 막론하고 모험자본으로 인정하는 포용력이 중요하다.
모험자본은 법적 정의나 제도적 틀에 갇힌 개념이 아니다. 불확실한 미래에 투자하는 용기이자, 산업의 성장에 대한 신뢰다. 실패 가능성을 안고 새로운 기술과 산업을 현실로 만드는 자본, 이러한 ‘위험 감내 자본’이 제대로 자리 잡을 때 우리 자본시장은 보다 건강하고 지속 가능한 성장 기반을 확보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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