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오전 청와대 앞에서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재검토 촉구’ 기자회견이 열렸다. 정치권을 넘어 시민단체까지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전북 이전론’에 가세한 것이다. 일단락될 줄 알았던 반도체 이전론이 또다시 나오자 산업계는 별다른 목소리를 내지 못한 채 “국내 투자를 위축시키고 생산시설의 해외 이전을 부추길 수 있다”고 속앓이만 하고 있다.국내에서 반도체 공장을 전북으로 옮기자는 주장이 나오는 사이 미국은 으름장을 놓고 있다.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은 지난 16일 “모든 메모리 기업은 100% 관세를 미국에 내거나 미국에서 제품을 생산하는 두 가지 선택지밖에 없다”고 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에 각각 370억달러, 38억7000만달러를 투자해 파운드리와 첨단 패키징 공장을 짓고 있다.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공장 유치로 재미를 보자 이제 메모리 시설까지 오게 하려는 것이다.
외국에선 벌써 한국 기업들의 미국 메모리 시설 이전을 거들고 있다. 일본 노무라증권은 전날 보고서에서 “삼성과 SK하이닉스가 미국에 보유한 생산시설로는 관세 충격을 상쇄하기 어렵다”며 “한국에서 계획했던 설비투자를 줄이고, 미국에 메모리 공장을 새로 지어야 할 것”이라고 부추겼다.
그동안 기업들이 국내 투자에 적극적이었던 건 한국이 인건비나 운영비용 등의 측면에서 매력적이고, 한국에 일자리를 창출해야 한다는 사회적 책임감 때문이다. 경제적 고려 없이 일방적인 주장으로 기업을 압박한다면 한국에 첨단 반도체 생태계를 구축하겠다는 계획조차 사라질 수 있는 상황이다. 용인에 들어설 공장 몇 개를 전북으로 이전하자는 주장도 현실성이 없다. 연구 인력을 유치하기 어려운 곳에 최첨단 공장을 짓다간 제품 경쟁력이 훼손될 게 분명하다.
삼성전자가 360조원을 투입하는 ‘용인 첨단시스템반도체 국가산업단지’는 이미 토지 보상 절차가 진행 중인 사업이다. SK하이닉스의 용인 클러스터는 작년 2월 1기 팹을 착공해 내년 초 가동을 앞뒀다. 이런 상황에서 용인 반도체 이전 요구는 기업의 혼란을 키우고 해외 이전 유인만 강화할 뿐이다.
정치적 계산은 모두의 패배로 돌아오게 된다. 공장이 해외로 떠나가면, 한국에선 일자리와 법인세가 줄어드는 게 아니라 아예 ‘0’이 된다. 국가 미래를 쥐고 있는 반도체산업을 두고 정치적 싸움만 하다간 ‘코스피 5000’ 시대는커녕 다시 코스피가 2000으로 돌아갈 것 같아 두렵다.
관련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