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종 사모펀드(PEF) 운용사 스틱인베스트먼트를 창업한 도용환 회장이 경영권 지분을 2대주주인 미국계 미리캐피털에 매각한다. 얼라인파트너스 등 행동주의 펀드 연합의 공세가 거세지자 조직 안정을 위해 경영권을 넘기는 식으로 은퇴하기로 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20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도 회장은 스틱인베스트먼트 보유 지분(13.44%) 중 약 11.44%를 미리캐피털에 넘기는 주식매매계약(SPA)을 맺었다. 매각 가격은 주당 1만2600원으로 600억원 규모다. 도 회장은 지분 2%를 보유한 주주로 남아 경영 자문을 맡는다.
이번 계약으로 미리캐피털은 기존 지분 13.52%를 포함해 약 25% 지분율을 확보해 단일 최대주주 지위에 오른다. 미리캐피털은 경영 컨설팅과 주주행동주의를 결합해 투자 회사의 중장기 기업 가치를 올리는 ‘컨설타비스트(consultavist)’ 전략을 쓰는 헤지펀드다.도 회장의 경영권 매각은 행동주의 펀드 압박에 따른 결과로 해석된다. 2023년 스틱인베스트먼트 주요 주주에 오른 미리캐피털에 이어 지난해에는 얼라인파트너스(7.63%)와 페트라자산운용(5.09%) 등 행동주의 연합이 장내에서 지분을 매집하며 공격적인 주주행동을 폈다. 별도로 움직여 온 미리캐피털이 여기에 합류하면 지분율이 26%에 달해 도 회장 측 지분(약 19%)을 넘어서는 상황이었다.
"분쟁 피하고 조직 안정 택해"
스틱인베스트먼트는 도용환 회장(69)이 1996년 창업한 1세대 사모펀드(PEF) 운용사다. 도 회장은 PEF라는 개념조차 생소하던 시절 신한생명 투자운용실장(CIO) 자리를 박차고 나와 창업전선에 뛰어들어 토종 PEF를 세웠다. 그는 꾸준히 성장시킨 스틱 경영권을 창업 30년 만에 내려놓기로 했다. 애초 승계를 고려하지 않은 그는 행동주의 펀드 공세를 받자 은퇴 시기를 앞당겨 20일 미국 투자사에 경영권을 넘기기로 했다.
하지만 회사가 성장할수록 도 회장의 경영권은 취약해졌다. 관리 보수 등 회사의 수익이 해마다 늘어나는 가운데 20%에 못 미치는 최대주주 지분율을 겨냥한 행동주의 펀드의 움직임이 본격화했다. 2023년 8월 미리캐피털을 시작으로 작년 3월 얼라인파트너스, 9월 페트라자산운용까지 각각 5% 이상의 지분을 확보하며 경영진을 압박했다.
스틱의 경영권을 확보한 미리캐피털은 아시아와 중남미 등 신흥국 상장 중소형주에 주로 투자하는 회사다. 한때 행동주의 전략을 활용한 적이 있지만 기존 대주주를 적대시하는 행동주의 펀드와는 성격이 다소 다르다. 저평가된 기업의 경영진과 우호적 관계를 맺고 컨설팅과 행동주의를 결합한 ‘컨설터비스트(consultavist)’ 전략을 내세우고 있다. 한국에서는 유가증권시장의 스틱뿐 아니라 코스닥시장의 가비아, 인포바인 등 중소형 상장사 지분을 확보해 왔다.
도 회장 측은 미리캐피털이 장내에서 스틱 지분을 매집하기 시작할 때만 해도 우호적인 장기 투자자로 판단했다. 하지만 지난해 얼라인 등 행동주의 펀드가 기업가치 제고를 요구하면서 분위기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미리캐피털이 다른 행동주의 펀드와 연합 전선을 구축하면 도 회장이 스틱 경영권을 잃을 수 있다는 위기감이 수면 위로 불거졌다.
도 회장은 자사주를 활용한 백기사 확보, 제3자 매각을 통한 의결권 부활 등을 추진했지만 성과를 거두진 못했다. 결국 3월 정기 주주총회에서 표 대결이 임박하자 비교적 우호적인 소통을 해온 미리캐피털에 지분을 넘기는 것이 유일한 해법이라고 판단했다. 국내 PEF 시장 이해도가 낮은 미리캐피털은 기존 경영진과 핵심 인력의 이탈을 막고 시장에 안착하기 위해 경영 개입을 최소화하며 회사를 이끌어갈 것으로 관측된다.
얼라인은 이번 도 회장과 미리캐피털의 거래를 사전에 파악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창환 얼라인 대표는 “미리캐피털의 과거 트랙레코드 등을 봤을 때 스틱의 경영진을 지원하면서 지속 가능한 주주가치 제고를 지지해줄 좋은 대주주가 돼줄 것”이라고 말했다.
PEF업계에선 스틱의 지배구조 변경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 다른 1세대 운용사도 도 회장과 마찬가지로 창업자 은퇴 시점이 다가오고 있어서다. IB업계 관계자는 “행동주의 펀드의 공격에 떠밀리듯 경영권을 매각한 스틱은 PEF업계에 원활한 승계의 중요성을 다시금 일깨운 사례”라고 말했다.
차준호/박종관/송은경 기자 chacha@hankyung.com
관련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