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일(현지시간) “아시아로 천연가스를 수출하기 위한 알래스카 파이프라인 프로젝트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이어 “한국, 일본과 (무역)합의를 타결하면서 전례 없는 수준의 자금을 확보했다”고 말했다. 알래스카 가스전 사업에 한국이 참여한다고 못 박은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집권 2기 1년을 맞아 열린 백악관 브리핑에서 이같이 말했다. 구체적으로 알래스카 가스전에서 한국과 일본의 대미 투자금액을 어떻게 활용할지 설명하지는 않았지만 한·일의 대규모 투자 약속을 어떤 식으로든 가스전 사업에 활용하겠다는 구상을 드러냈을 가능성이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직후인 작년 2월 의회 연설에서 알래스카 가스전 사업에 한국이 수조달러를 낼 것이라고 언급했다.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도 지난해 10월 SNS에서 한국의 대미 투자액 중 2000억달러 투자처와 관련해 “알래스카 천연가스 파이프라인, 에너지 기반 시설, 핵심 광물, 첨단제조업, 인공지능과 양자컴퓨터가 포함된다”고 했다.
한국은 총 3500억달러의 대미 투자액 중 조선에 1500억달러를 투자하기로 했지만 나머지 2000억달러의 사용처는 지정하지 않았다. 한국 정부는 알래스카 가스전 사업 시행사인 미국 글렌파른의 시장성 검토 결과가 나와 봐야 참여 여부와 방식을 검토할 수 있다는 원론적인 입장이다. 글렌파른은 지난해 말까지 조사 결과를 내놓겠다고 했지만 발표 시기가 늦춰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브리핑에서 미국 연방대법원이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을 적용해 상호관세를 부과하는 것이 위법이라고 결정하면 관세를 ‘라이선스(면허) 수수료’ 형태로 즉각 전환하겠다고 밝혔다. 미국에 들어오는 해외 제품에 ‘관세’ 대신 그만큼의 ‘수수료’를 물리겠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법조문이 너무나 명백하다”며 “라이선스 부여는 허용된다”고 했다. 하지만 ‘관세’를 ‘수수료’로 바꾸는 것은 말만 다를뿐 실제 내용은 달라지는 것이 아니란 점에서 여전히 논란이 될 가능성이 크다.

알래스카 가스전 개발사업은 두 단계로 나뉜다. 북부의 가스전을 개발해 남부의 페어뱅크스를 거쳐 앵커리지 인근 니키스키항까지 1200㎞에 달하는 파이프라인 건설이 1단계, 니키스키항에서 이를 액화천연가스(LNG)로 만들어 수출하기 위한 터미널을 건설하는 것이 2단계다. 개발을 맡고 있는 글렌파른 사는 이를 통해 우선 알래스카 지역 내 수요를 충족하고, 2030년께부터 아시아 지역에 연 2000만t 규모 LNG를 수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사업비는 총 440억달러(약 65조원) 규모로 추산된다. 글렌파른 사는 2단계 LNG 터미널 건설 자금 조달을 위해 대규모 장기공급 계약(오프테이크)을 추진하고 있다. 운송 거리를 고려할 때 이 가스를 사는 것이 이익이 되는 지역은 한국, 일본, 대만 등 동아시아다.
기업들은 파이프라인 제작, 설계 및 시공, 터미널 건설, 가스 구매계약, LNG 운송선 판매 등 다양한 방식으로 사업에 참여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파이프라인 건설 작업까지 아우르는 듯이 언급했지만, 실제 개발사 글렌파른 측이 한국에 가장 시급하게 요청하고 있는 것은 LNG 장기공급 계약을 위한 ‘의향서(LOI)’다. 이것이 있어야 사업자금을 조달하는 프로젝트파이낸싱(PF)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트럼프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 덕분에 현재 글렌파른은 예상하는 수출 가능물량(연 2000만t)의 절반 이상인 연 1100만t에 대한 구입 의향서를 확보했다. 가장 적극적으로 나선 것은 한국의 포스코인터내셔널이다. 작년 12월 연 100만t 규모 LNG 구입에 대한 주요조건 확인서(HOA)를 써 줬다. 강관 제작 등에 필요한 철강 공급 및 지분투자를 함께 하는 조건이다. 일본의 발전회사 JERA와 도쿄가스도 각각 연 100만t씩 사겠다는 의향서를 썼다. 태국 석유공사(PTT)도 연 200만t 의향서를 제출했다.

가격이 싸면 기존 거래선을 바꾸더라도 별 문제가 없다. 하지만 이를 계산할 수 있는 기초 자료조차 미국은 아직 내놓지 못하고 있다. 글렌파른은 사업성 평가 결과를 작년 3분기에 내놓겠다고 약속했다가, 다시 4분기로 이를 미뤘고, 1월20일 현재까지도 내놓지 못하고 있다. LNG 구입 의향서가 충분히 모이지 않은 것이 1차 원인일 가능성이 높다. 시장성 검토 결과 기존 구매처인 카타르나 텍사스산 LNG보다 가격이 높게 나올 경우 이를 억지로 사들이는 데 따른 부담이 크다.

1단계 파이프라인 건설 작업에 한국의 참여를 요청할지 여부는 또 다른 문제다. 글렌파른 측은 지난해 7월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그럴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이미 알래스카 주민들이 그간 활용해 온 쿡인렛 가스전이 완전 고갈 상태에 임박했기 때문에 북부 가스전 생산물량을 즉각 내수용으로 공급할 수 있어 건설비용 충당이 가능하다는 논리를 댔다. 하지만 실제 비용이 기존 추정치보다 크게 늘어날 경우에는 대미 투자금을 전용하자는 의견이 힘을 받을 수도 있다.
다른 나라들도 보다 적극적으로 참여를 약속하기에는 아무런 데이터가 없어 망설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과 알래스카 프로젝트에 대한 조인트벤처(JV)를 설립할 것이라고 지난해 7월 언급했지만 일본 측은 이에 당혹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대만 중유공사(CPC)는 알래스카 수출 예정 물량의 3분의 1에 달하는 연 600만t 구매 의향서를 트럼프 정부 출범 초기인 작년 3월에 일찌감치 써줬으나 공식적인 계약에는 이르지 않았다.
워싱턴=이상은 특파원/김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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