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한국이 직면한 가장 큰 난제는 지식 생산 방식의 심각한 병증이다. 이와 관련해 항공우주 분야 석학인 서울대 A 교수의 말이 오랫동안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어떤 테크놀로지를 전공하냐고 물으면 ‘입금 테크’라고 답합니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 혹은 국가 미래를 위해서가 아니라 정부 연구개발(R&D) 자금을 따내는 데 지력을 총동원하도록 내몰리고 있다는 자조의 말이다. 공대는 그나마 의대 쏠림을 막자는 ‘계몽’의 수혜자여서 연구 지원을 받기 위해 시장·산업과의 연계를 고민이라도 하지만, 자연·인문·사회과학 등 ‘기타’ 학문의 연구는 논문이라는 활자 세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공무원은 어떤가. 그들은 보고서의 세상에 산다. 출연연구소가 만들어 준 표지 그럴듯한 ‘세계의 동향’에다 입금 테크에 통달한 교수들의 자료를 종합해 ‘윗선’ 입맛에 맞는 보고서를 만드는 게 세종 공무원들의 목표다. 세종의 지식은 선거 때마다 폐기와 복붙(복사해 붙여넣기)을 반복하고, 부처 간 칸막이로 질식당한다. ‘행시 출신 사무관은 관할 산업 전체를 조망할 수 있어야 한다’는 선배 공무원들의 덕담은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영웅담일 뿐이다. 이런 방식의 지식 생산으로 관료들은 ‘국가 10대 미래 성장동력’ 유의 미래를 제시한다. 교수들은 아닌 줄 뻔히 알면서도 보고서에 명시된 연구비 숫자를 좇아 또다시 입금 테크 전략을 세운다.
기본적으로 중국이 ‘국가 대계’에 성공할 수 있던 건 지식 축적에서 남다른 효과를 거뒀기 때문이다. 사회주의 이데올로기라는 ‘사이비 과학’을 신봉했던 중국과학원은 1월 현재 3개의 직속 대학과 12개 분원(分院), 110여 개 분야별 연구소, 130여 개 국가급 중점 실험실·엔지니어링센터, 210여 개의 야외 관측·시험기지를 운영하는 거대 과학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과학원 소속 당원들은 실패와 성공 경험을 다음 정책에 반영할 수 있도록 모든 것을 기록하고 축적한다.
미국은 어떤가. 단백질 접힘을 인공지능(AI)으로 읽어내 인류를 죽음에서 벗어나게 해주겠다는 데미스 허사비스, 인류의 화성 정착을 언젠가 실현하고 말겠다는 일론 머스크, 전 재산을 털어서라도 현생 인류를 뛰어넘는 슈퍼AI를 개발하려는 마크 저커버그 같은 창업가들이 지금도 미국의 수많은 청년의 열정을 자극하고 있다. 논문과 보고서 굴레에 갇힌 현재의 지식 생산 구조로는 미·중을 따라잡기란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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