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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프리즘] 반성문 쓴 유럽의 길을 갈 것인가

입력 2026-01-21 17:04   수정 2026-01-22 00:15

“유럽요? 박물관으로 먹고사는 나라답게 기술도 박물관에 있을 법한 옛것뿐이잖아요. 미국·중국 기업은 일거수일투족까지 챙기지만, 혁신이 사라진 유럽은 관심 밖입니다.”

국내 굴지의 테크기업 고위 임원에게 매일매일 동향을 체크하는 해외 기업 리스트를 물으니 이런 답이 돌아왔다. 엔비디아, 테슬라, BYD, 바이두 등 스무 개 넘는 이름을 읊는 동안 유럽 기업은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

곱씹어 보니 취재 과정에서 유럽 테크기업이 거명된 기억이 나지 않았다. 인공지능(AI)과 자율주행, 휴머노이드 전쟁 무대에 오른 회사는 미국 아니면 중국이다. 엔비디아, 구글, 테슬라가 실리콘밸리식 혁신으로 길을 열면 정부 지원을 등에 업은 바이두, 텐센트, BYD, 유니트리 등 중국 기업이 순식간에 따라붙는 양상으로 전개된다.

‘AI 시대’의 동반자인 배터리, 반도체, 전기차도 마찬가지다. ‘유럽의 CATL’로 키우겠다던 스웨덴 노스볼트는 파산했고, 유럽에서 제일가는 칩 메이커인 독일 인피니언과 네덜란드 NXP는 규모와 수익성 등에서 TSMC, 삼성전자, SK하이닉스보다 몇 수 아래다. 유럽의 ‘마지막 자존심’인 자동차 역시 ‘예정된 미래’인 전기차에서 중국에 한참 밀린다.

20년 전만 해도 미국과 맞먹는 산업 강국이던 유럽이 어쩌다 이런 신세로 전락했을까. 마리오 드라기 전 유럽중앙은행(ECB) 총재가 2024년 9월 내놓은 ‘EU(유럽연합) 경쟁력의 미래’라는 보고서에 그 답이 있다. ‘유럽이 쓴 반성문’으로 불리는 이 보고서는 유럽의 위기를 미국·중국과 비교되는 ‘혁신의 격차’에서 찾았다.

세상이 바뀌었는데도 여전히 자동차 등 전통산업에 의존하는 정체된 산업구조와 역동성이 떨어지는 생태계가 첨단기술의 잉태를 막는다는 것이다. 그나마 아이디어와 기술이 있는 유니콘 기업 후보들은 벤처캐피털 등 ‘돈줄’을 찾아 죄다 미국으로 떠난다. 나라마다 천차만별인 규제와 느려터진 인허가도 ‘기업 엑소더스’에 한몫한다. 급격한 친환경에너지 전환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천연가스 공급망 붕괴 때문에 미·중보다 2~3배 높아진 전기료는 모든 유럽 기업의 경쟁력을 끌어내리는 결정타 역할을 하고 있다. 줄어드는 인구와 그보다 더 빨리 줄어든 근로시간은 1995년 미국의 95% 수준이던 노동생산성을 80% 수준으로 떨어뜨렸고. 이런 구조적인 문제들이 쌓여 2011년 15조달러로 엇비슷했던 미국과 EU의 국내총생산(GDP) 격차는 2024년 각각 28조달러와 19조달러로 50% 가까이 벌어졌다.

어딘가 익숙한 대목이다. 유럽 기업을 박물관에 박제한 문제들은 지금 이 순간 우리 기업이 겪는 현실이다. 한국도 유럽처럼 20~30년 전 대표 기업과 주력 업종으로 지금도 먹고산다. 숨 막히는 규제와 빈약한 자본시장에 실망한 청년 기업은 해외에서 길을 찾는다. 최근 4~5년간 70% 넘게 오른 산업용 전기료는 정부의 친환경에너지 전환 정책 탓에 앞으로도 한참 더 오를 일만 남았다. 세계에서 가장 낮은 출산율에 ‘주 4.5일제’가 더해지면 안 그래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72.4% 수준인 한국의 노동생산성은 더 떨어질 게 뻔하다.

성장보다 복지를, 실리보다 명분을 좇은 결과가 유럽의 ‘잃어버린 20년’이다. 결과가 뻔한데 유럽의 길을 따라갈 수는 없는 일이다. “성장이 멈춘 경제는 청년 세대에 ‘이 나라에서 계속 살아도 되는가?’란 질문을 던진다. 성장의 불씨가 약해진 한국에 희망이 없다고 느끼는 순간 청년들의 이탈은 커질 수밖에 없다”는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의 호소가 정부와 정치권에는 들리지 않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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