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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공적보증이라는 이름의 무게… 제도 신뢰는 어떻게 유지되어야 하는가

입력 2026-01-22 15:29   수정 2026-01-22 15:40

대한민국 전세·임대차 시장에서 주택도시보증공사(HUG)는 사실상 ‘국가가 설계한 공적 보증기관’으로 인식된다. 엄밀히 말해 HUG는 행정청이나 국가기관은 아니지만, 주택도시기금이라는 공적 기금을 재원으로 하고, 법률에 근거해 설립되어 공공성을 띤 보증 업무를 수행한다. 이러한 구조 때문에 시장과 국민은 HUG의 보증을 단순한 민간 보증이 아니라, 국가가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는 안전장치로 받아들여 왔다.

실제로 HUG는 전세시장 불안이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과정에서도 보증 인프라를 유지·확대하며, 수많은 임차인의 보증금 회수에 실질적인 역할을 해 왔다. 제도 운영의 부담과 재정적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공적 역할을 수행해 온 점, 그리고 시장 변화에 맞춰 기준을 조정해 온 노력 역시 평가받아야 할 부분이다.

다만 관련 사건들을 다루다 보면, 개별 보증상품의 차이와 단계별 구조를 넘어, ‘공적보증’이라는 이름 아래 형성된 기대와 신뢰가 제도 운영 과정에서 온전히 충족되지 못하는 장면을 마주하게 된다. 이 글은 바로 그 신뢰와 제도 구조 사이의 간극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Ⅰ. 공적보증으로 인식되는 구조와 오인의 시작

현장에서 임대차 분쟁을 다루는 변호사의 관점에서 보자면, 임차인들이 실제로 접하게 되는 보증제도는 대체로 다음의 세 가지로 구분된다.

첫째, 전세보증금반환보증은 기존 임대차계약에서 임대인의 보증금 반환 불이행 위험을 담보하기 위한 구조로, 보증 가입 여부와 보호 범위를 좌우하는 핵심 변수는 담보인정비율(LTV)이다.

둘째, 개인임대사업자 임대보증금보증은 민간임대사업자의 등록·운영 구조와 결합된 보증으로, 다수 주택을 전제로 한 공동담보 설정과 그 해제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채비율 변동이 주요한 구조적 리스크로 작용한다.

셋째, 사용검사 이전 단계에서 운용되는 임대보증금보증은 민간임대주택 사업 과정에서 사업자금의 적정한 관리와 유용 방지를 목적으로 설계된 보증으로, 보증금이 특정 계좌를 통해 관리되도록 하는 지정계좌 제도가 핵심적인 안전장치로 기능한다.

법률적으로는 서로 다른 상품이고, 적용 시점과 요건, 책임 구조 역시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차인의 인식은 명확하다. “공적 보증이 붙어 있으니 안전하다”는 믿음이다. 이 믿음은 제도 홍보나 브로커·중개인의 설명을 통해 강화되기도 한다.

문제는 사고 이후다. 보증 이행 단계에 이르면, 상품별 구조 차이와 약관상의 제한이 전면에 등장하고, 그 결과 보증금 전부가 보호되지 않는 사례들이 현실에서 발생한다. 이 지점이 바로 신뢰와 구조 사이의 균열이다.

Ⅱ. 담보인정비율 조정과 126% 기준의 체감 (전세보증금반환보증)

정부와 보증기관이 전세사기 구조를 차단하기 위해 보증 가입 요건을 강화해 온 방향성 자체는 충분히 합리적이다. 실제로 2023년 5월 1일부터 반환보증 가입 대상 전 주택에 적용되는 담보인정비율(LTV)은 100%에서 90%로 조정되었다.

특히 비아파트 주택의 경우 주택가격 산정 방식과 결합되면서, 공시가격 × 140% × 담보인정비율 90%, 즉 공시가격의 약 126% 수준으로 체감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 기준은 고위험 전세 구조를 억제하는 데 일정 부분 기여했지만, 과거 기준에 따라 체결된 계약들이 갱신 국면에 접어들면서 임차인과 임대인 모두에게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했다.

충분한 연착륙 장치 없이 기준이 급격히 조정되면서, 선량한 임차인과 임대인 모두가 제도 변화의 충격을 동시에 떠안게 된 측면에 대해서는 성찰이 필요해 보인다.

Ⅲ. 임대사업자의 공동담보 구조와 임차인의 한계 (개인임대사업자 임대보증금보증)

개인임대사업자 임대보증금보증 영역에서 문제 되는 또 하나의 지점은, 임대사업자 단위에서 설정되는 공동담보 구조다. 공동담보가 순차적으로 해제되면서 특정 세대의 부채비율이 급격히 상승하는 구조는, 사후적으로 우연히 발생한 변수가 아니라 사전에 충분히 예측 가능한 위험에 속한다.

임대보증보험은 형식상 임대인이 가입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임차인의 보증금 보호를 위한 제도다. 실제 현장에서는 보증료의 일부를 임차인이 직·간접적으로 부담하게 되는 구조적 특성상, 임차인 역시 제도의 보호 범위에 대한 정당한 기대를 가질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동담보 해제나 부채비율 변동에 대한 핵심 위험 정보에서 임차인이 배제되어 있다면, 그 구조가 제도의 보호 취지에 온전히 부합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보증 이행 단계에서 예외 없는 면책만을 주장하기 전에, “임차인이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었는가”라는 질문도 생각해보아야 할 문제이다.

Ⅳ. 사용검사 전 임대보증금보증과 지정계좌 제도 (사용검사 전 임대보증금보증)

민간임대주택에서 문제 되는 임대보증금보증은 사용검사 이전 단계에서 사업 자금 관리 차원에서 운용되는 보증 구조이다. 이 보증은 시행사나 시공사의 자금 유용을 방지하기 위해 지정계좌 제도가 핵심적인 안전장치로 설계되어 있다.

제도의 취지 자체는 정당하다. 다만 실제 운영 과정에서는 그 취지가 온전히 구현되지 못한 사례들이 확인된다. 임차인들은 보증보험 가입 사실을 신뢰하고 계약을 체결했으나, 이후 공사가 자금난으로 지연되거나 중단되면서, 약관상 요구되는 지정계좌로 자금이 입금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사후적으로 드러나는 경우들이 있었다.

보증 이행 단계에서 약관 해석이 문제 되는 경우, 그 부담을 정보 접근권조차 없던 임차인이 전적으로 감내하게 되는 구조가 과연 공적보증제도의 취지에 부합하는지에 대해서는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자금 흐름을 확인하고 관리할 수 있는 권한은 임차인이 아니라 보증기관과 제도 운영 주체에게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Ⅴ. 약관 이전의 문제

이 글은 약관 해석의 대원칙이나 약관규제법을 본격적으로 논하려는 글은 아니다. 다만 분명한 것은, 약관은 제도의 취지와 목적을 구현하기 위한 수단이지, 그 취지를 잠식하는 결과를 정당화하기 위한 장치는 아니라는 점이다.

보증기관의 해석이 약관 문언상 틀리지 않은 경우가 많고, 실제로 제도 운영 주체 역시 재정 건전성과 위험 관리라는 현실적 과제를 동시에 안고 있다는 점도 부인하기 어렵다. 최근 수년간 급증한 보증 이행으로 인해 상당한 재정 부담과 적자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는 점 역시 공적 논의의 대상이 되어야 할 것이다.

다만 공적 보증이 재정 부담을 이유로 약관의 문언 뒤로 후퇴한다면, 그 순간 제도는 신뢰의 기반을 잃게 된다. 공적 기금을 기반으로 한 보증제도라면, 약관 이전에 제도의 존재 이유와 사회적 신뢰의 무게를 함께 고려하는 균형 감각이 요구된다.

Ⅵ. 입법의 선택 ? 민간임대주택법 개정과 신뢰의 경과 보호

이와 같은 문제의식은 입법 과정에서도 일정 부분 반영되었다. 2025년 6월 4일부터 시행된 「민간임대주택에 관한 특별법」 제49조 제8항은, 임대사업자의 허위서류 제출을 포함한 사기,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이 있더라도 임차인에게 책임 있는 사유가 없다면, 보증회사가 임대보증금 보증의 해지 또는 취소로써 임차인에게 대항할 수 없도록 명시하였다.

특히 주목할 부분은 부칙의 적용례다. 개정 규정은 시행 당시 이미 가입되어 있던 보증은 물론, 임대사업자의 사기 등 사유로 보증회사가 이미 해지 또는 취소한 보증에 대해서도 적용된다고 정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제도 보완을 넘어, 공적 보증을 전제로 형성된 신뢰는 사후적 분쟁 단계에서라도 가능한 한 보호되어야 한다는 입법자의 명확한 선택으로 읽힌다.

Ⅶ. 맺으며 ? 권한과 책임의 균형을 위하여

모든 위험을 사전에 차단하는 제도는 존재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공적보증제도는 끊임없이 보완되어야 하고, 시장 환경의 변화에 맞춰 진화할 수밖에 없다. 다만 그 과정에서 한 가지 기준은 분명히 공유될 필요가 있다.

공적보증이라는 이름으로 부여된 권한은, 그에 상응하는 책임 구조와 함께 이해되어야 하지 않을까. 공적 기금을 기반으로 한 보증제도는 단기적인 재정 논리만으로 설명되기 어렵고, 신뢰가 형성된 지점에서부터 제도의 책임 또한 시작된다는 전제 위에서 유지될 필요가 있다.

공적보증제도가 시장의 불안을 완화하고 예측 가능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약관의 문언을 넘어 제도 설계와 운영 전반에서 ‘신뢰를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에 대한 보다 정제된 논의가 요구되는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글: 법률사무소 A&P 대표 변호사 박사훈
한경닷컴 뉴스룸 op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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