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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에 밀린다" 공포 시달리더니…18년 갇혀있던 한국 '대반전'

입력 2026-01-22 17:36   수정 2026-01-22 19:41

코스피지수가 사상 처음으로 장중 5000을 넘어섰다. 1956년 국내 증시가 출범한 지 70년, 1980년 100을 기준으로 코스피지수를 산출한 이후 46년 만이다. 오랜 기간 국내 증시를 짓눌러온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의 오명을 벗고 한국 자본시장이 새 역사를 썼다.

22일 코스피지수는 0.87% 오른 4952.53에 거래를 마쳤다. 장중 한때 5019.54까지 뛰며 처음으로 5000 고지를 밟았다. 올해 들어서만 17.52% 급등했다. 세계 주요국 증시 중 상승률 1위다. 미국 S&P500지수(0.44%), 일본 닛케이225지수(6.68%), 중국 상하이종합지수(3.88%) 등을 압도했다.

코스피지수는 불과 9개월 만에 2284에서 5000선까지 파죽지세로 치솟았다. 지난해 초 미국 관세 충격으로 흔들리던 코스피지수는 4월 바닥을 치고 오름세로 돌아섰고, 6월 ‘코스피 5000’을 핵심 공약으로 내건 이재명 대통령이 당선된 후 3000선을 다시 밟았다. 10월 27일 처음으로 4000을 돌파했고 3개월 만에 ‘오천피’ 시대를 열었다.

정부의 증시 선진화 정책과 슈퍼사이클을 맞은 반도체주 급등세가 상승장을 이끌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재명 정부는 부동산에 쏠린 자금을 자본시장으로 돌리기 위해 상법 개정과 배당소득 분리과세 등 증시 체질 개선 정책을 추진했다.

인공지능(AI) 시대를 맞아 전례 없는 메모리 반도체 호황에 ‘반도체 투톱’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연초부터 매서운 상승세로 지수를 끌어올렸다. 이날 삼성전자의 장중 고점 기준 시가총액은 1023조1385억원(우선주 포함)에 달했다. 국내 단일 기업 중 처음 시가총액 1000조원을 돌파했다. 반도체뿐만 아니라 조선, 방위산업, 원전, 자동차, 전력기기 등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주도주가 등장하면서 국내 증시가 ‘코리아 프리미엄’을 받았다는 평가다.

증권가에서는 국내 증시가 주요국 증시와 비교해 여전히 저평가된 만큼 상승세가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코스피지수의 12개월 선행 주가수익비율(PER)은 10.65배로, 미국(22.19배) 중국(13.67배) 일본(16.31배) 유럽(16.37배) 등에 비해 낮다. 이채원 라이프자산운용 의장은 “‘코스피 5000 시대’는 자본시장이 정상화하면서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해소된 결과”라며 “가업 승계를 가로막고 증시 활력을 떨어뜨리는 상속세를 개편하는 게 남은 과제”라고 말했다.
'AI날개' 단 K인더스트리…18년 박스피 뚫고 반전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 주역은 '기업 체력·정부 정책'
국내 증시가 마침내 코스피지수 5000을 찍었다. 18년째 ‘2000피’(코스피지수 2000선)에 갇혀 있던 한국 증시의 대반전이다. 1년 전만 해도 코스피지수는 2500 안팎을 맴돌았다. 시가총액 1위인 삼성전자의 위기론과 미국발 고강도 관세 우려가 한국 증시의 발목을 잡았다. 시장에는 비관론이 팽배했다. 이랬던 코스피지수가 어느새 박스권을 뚫고 새 역사를 쓰고 있다. 금융투자업계는 그 배경으로 ‘K제조업’과 인공지능(AI)산업의 결합, 정부의 증시 선진화 정책, 미국발 관세 불확실성 완화와 금리 인하 등 대내외 여건 개선을 꼽았다.
◇ 18년 박스권 갇혔던 코스피
코스피지수는 1983년 기준 100으로 출범한 뒤 1989년 ‘3저(低) 호황’을 타고 장밋빛 미래를 그렸다. 그러나 이후 30여 년간은 ‘코리아 디스카운트’라는 오명 속에 박스권 장세가 이어졌다. 외환위기 때인 1998년 지수가 280까지 폭락하며 큰 부침을 겪었다. 2007년 처음으로 2000을 돌파했지만 글로벌 금융위기, 유럽 재정위기, 미·중 무역분쟁 등 대외 변수로 3000을 좀처럼 넘지 못했다.

코로나19 유동성 랠리와 ‘동학개미운동’ 덕에 코스피지수가 3300을 넘기도 했지만 반짝 상승 이후 다시 하락세를 탔다. 이에 따라 국내 증시는 외부 변수에 따라 등락하는 ‘단기 이벤트 중심 시장’이라는 인식이 굳어졌다.

금융투자업계는 최근의 증시 반전을 ‘기업 체력, 정부 정책, 거시 환경’이 종합적으로 뒷받침한 결과로 본다. 코스피지수는 2007년 10월 2000을 돌파한 이후 약 18년간 3200을 넘지 못했다. 이 기간 한국의 주력 산업인 제조업은 만년 저평가 상태였다.

반도체·조선 등은 경기 순환에 따른 불확실성이 크다는 인식이 강했고, 나머지 업종은 중국과의 경쟁에서 밀리는 사양 산업으로 취급받기 일쑤였다. ‘차이나 포비아’와 ‘피크 코리아’라는 위기감이 증시에 짙게 깔려 있었다.
◇ AI와 ‘K제조업’ 결합
하지만 미·중 갈등이 장기화하고 AI산업이 급성장하면서 시장 판도가 바뀌었다. 국내 주요 기업은 AI산업과 미국 우방 간 공급망 재편(프렌드쇼어링) 측면에서 핵심 밸류체인 기업으로 부상했다. 국내 증시를 이끄는 반도체 ‘투톱’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고대역폭메모리(HBM) 열풍과 메모리 공급 부족에 힘입어 각각 ‘15만전자’ ‘70만닉스’로 불리며 시가총액이 급증했다. 원전·전력기기 업종도 AI 핵심 산업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정성한 신한자산운용 최고투자책임자(CIO)는 “AI 시대에 미국엔 없는 핵심 인프라 생산 능력이 부각되는 시기가 왔다”며 “그간 저평가받은 한국의 제조 경쟁력이 재평가되고 있다”고 말했다.
◇ 정책 효과도 ‘오천피’ 견인
정부 정책과 대외 환경도 코스피지수 상승세에 힘을 보탰다. 이재명 대통령은 당선 직후부터 ‘코스피지수 5000’ 달성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웠다. 자금이 부동산에만 몰리지 않도록 부동산·대출 규제를 강화하는 동시에 주주가치 제고 정책으로 자금 흐름을 증시로 돌렸다. 정부는 지난해 하반기 기업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을 ‘회사’에서 ‘주주’로 확대하는 1차 상법 개정안과 대규모 상장사에 집중투표제를 의무화하는 2차 개정안을 차례로 공포했다. 배당소득 분리과세는 2028년까지 한시적으로 시행하기로 했다. 최근엔 해외 증시에 투자하던 ‘서학개미’ 자금을 국내로 유도하기 위해 비과세 혜택을 주는 ‘국내시장 복귀 계좌’(RIA)를 도입했다.

지난해 상반기 국내 증시를 짓누른 관세 불확실성도 완화되고 있다. 한·미 양국은 지난해 10월 말 관세 협상을 타결한 뒤 고위급 회담을 추진 중이다. 후속 조치와 경제 협력 강화 방안도 논의하고 있다. 강대권 라이프자산운용 대표는 “국내 증시가 단기 이벤트 중심의 박스권 시장에서 구조적 성장 시장으로 전환하는 초입 단계에 있다”며 “정책의 후속 조치 등이 실제로 증시 체질을 바꿀 수 있을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맹진규/조아라/선한결 기자 mae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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