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릭 월컷
그때가 오리라.
네 문 앞에 도착해
네 거울 속의 너를
큰 기쁨으로 반길 때가,
둘이 서로의 환영에 미소 지으며,
이렇게 말하리라, 여기 앉아라. 먹어라.
넌 한때 낯설었던 너 자신을 다시 사랑하게 되리라.
포도주를 따르라. 빵을 주어라. 네 마음을
자신에게 돌려주어라, 평생 너를 사랑해 왔으나
네가 다른 이에게 마음을 빼앗기느라 외면했던
너를 가슴 깊이 알고 있는 그 낯선 이에게.
책장 위의 연애편지를 내려놓고,
사진들을, 절박한 메모들을 걷어내라.
거울 속에서 너의 이미지를 벗겨내라.
앉아라. 네 삶을 잔치처럼 누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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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집 젊은이가 실연을 당했습니다. 그는 방에 틀어박혀 자신을 책망하며 슬퍼합니다. 식음을 전폐하고 후회와 원망의 시간을 보냅니다. 그러다 폭음, 폭식에 ‘이불킥’으로 새벽을 맞기도 합니다. 밤새 고통스러워하는 그를 위해 이 시를 골랐습니다.
카리브해의 대표 시인 데릭 월컷은 이 시에서 이별 후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를 알려 줍니다. 이별의 감정은 한 가지가 아니라 다발로 오지요. 슬픔, 외로움, 분노, 억울함, 수치, 후회, 불면 등의 묶음으로 옵니다. 그 위에 얹히는 것이 또 있습니다. 같은 생각을 반복해서 곱씹는 ‘반추’입니다. 이 반추가 이별 뒤의 고통을 오래 끌고 우울과 자기 의심을 키웁니다.
월컷의 시 ‘사랑 이후의 사랑’은 이런 감정을 해소하는 해독제와 같습니다. 우리 마음의 위기는 감정 자체보다 감정을 대하는 태도, 즉 자기 자신을 다루는 방식 때문에 증폭되지요. 이럴 때 월컷의 시가 도움을 줍니다. 시인은 우리가 느끼는 고통이 영원히 계속되는 감정은 아니라는 점을 먼저 일깨웁니다.
그러면서 “그때가 오리라./ 네 문 앞에 도착해/ 네 거울 속의 너를/ 큰 기쁨으로 반길 때가,/ 둘이 서로의 환영에 미소 지으며”라고 말합니다. 이별의 상황에서 기쁨을 생각하다니 참 이상하다 싶겠지만 시인은 확신에 차 말합니다. 우선 거울을 들여다보며 둘이 서로의 환영에 미소를 지어보라고 말이지요.
우리는 미소가 전염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미소를 짓는 순간 실제로 기분이 나아진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거울 속의 자신에게 미소를 지으면 반사된 모습도 미소를 짓습니다. 그 덕분에 기분 상승효과까지 커집니다.
심리치료사들은 오래전부터 ‘자신과의 관계’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해 왔습니다.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면 타인을 사랑하기 어렵습니다. 시인도 이 시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되찾는 것에 중점을 둡니다. 이별 후에는 자신감과 자존감을 잃기 쉽기 때문에 무엇보다 자신을 되찾으라고 강조합니다.
시인은 더 흥미로운 걸 제안합니다. “네 마음을/ 자신에게 돌려주어라.” 무슨 의미일까요? 이는 “평생 너를 사랑해 왔으나// 네가 다른 이에게 마음을 빼앗기느라 외면했던/ 너”를 “가슴 깊이 알고 있는 그 낯선 이에게” 돌려주라는 뜻입니다.
사랑에 빠지면 감정의 소용돌이에 휩쓸려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곤 하지요. 연인에게 지나치게 의존하거나 무조건 맞춰주려는 생각에 함몰되기도 합니다. 우리가 사랑에 빠지면 그 사실을 잊기 쉽다는 것을 알려 주면서, 시인은 진정한 자신을 되찾으라고 거듭 권합니다.
그다음 조언은 아주 구체적입니다. “책장 위의 연애편지를 내려놓고// 사진들을, 절박한 메모들을 걷어내라.” 이것은 단순한 ‘삭제’를 넘어 심리학의 ‘자극-반응 고리 끊기’를 의미합니다. 이별 뒤 사진 한 장이 감정을 폭발시키는 이유는 그 사진이 ‘정보’가 아니라 신호이기 때문이지요. 신호는 뇌의 보상 회로를 흔들어 반추를 부릅니다. 반추의 고통이 반복되면 상처도 현재형으로 살아납니다.
그래서 과거 사진이나 관계 회복을 위해 썼던 “절박한 메모” 등 고통을 부르는 기억을 제거하라는 것입니다. 바로 지우기 어려우면 ‘봉인’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폴더를 만들어 옮기고, 앨범에서 숨기고, 물건은 상자에 넣어 봉인하라”고 권합니다. 이별 뒤의 회복 과정에서 중요한 건 반추를 줄이는 환경이기 때문이지요.
세계적인 정신의학 전문가 노먼 로젠탈은 월컷의 이 시를 환자들에게 읽어주며 ‘치유의 통로’로 활용했다고 합니다. 그가 제시한 ‘마음 처방전’의 일부를 아래에 요약합니다.
1. 이별 후에는 자신에게 다정하라. 그 시기에 슬픔, 상실감, 분노, 자기 비난, 비관, 절망 등 많은 부정적인 감정을 느낄 수 있지만 그런 감정은 영원히 계속되지 않으며, 오히려 시간이 흐른 뒤에는 기쁨을 느낄 수도 있다는 것을 인식하자.
2. 거울을 보며 자신에게 미소를 지어라. 말 그대로 해보면 도움이 된다. 우리는 행복할 때 웃지만, 웃는 행위 자체가 행복을 만들어낸다는 과학적 증거도 많다. 그 반대로 찡그리면 불행해질 수 있다.
3. 자신과 대화할 때, 다정하고 존중하는 언어를 써라. “내가 정말 바보 같았어!” 또는 “어떻게 그렇게 어리석은 일을 할 수 있었지!”와 같은 말을 하거나 실수를 했더라도 그것을 감싸 안을 더 부드럽고 사려 깊은 언어는 얼마든지 있다는 것을 기억하라. 자신에게 어떻게 말하는가가 당신의 감정에 큰 영향을 미친다. “가능한 한 친절하라. 그리고 언제나 친절하라”는 말은 타인뿐 아니라 자신을 다루는 방식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4. 사랑할 때에도 너 자신을 잃지 말라. 처음에는 서로의 정체성이 합쳐지는 게 황홀할 수 있지만, 현실을 잊으면 큰 대가를 치를 수도 있다. 그러므로 사랑에 빠져 있을 때에도 자기의 정체성을 유지하라.
자세히 보면, 정신의학자의 ‘마음 처방전’과 시인의 조언이 같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랑이 떠난 자리에 남는 것은 결국 ‘내가 나를 어떻게 대하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자기에게 가혹한 사람은 이별 뒤에 더 깊이 가라앉고, 자기에게 친절한 사람은 같은 아픔 속에서도 더 빨리 떠오를 가능성이 커집니다.
시의 첫 장면이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보는 이미지로 시작하고 마지막 장면이 “거울 속에서 너의 이미지를 벗겨내라”로 끝맺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실연의 고통으로 힘들어하는 이웃집 젊은이도 거울을 보면서 “둘이 서로의 환영에 미소 지으며”, “한때 낯설었던” 자신을 “다시 사랑하게 되는 날”이 곧 오겠지요. 그 거울이 어깨를 토닥이며 들려주는 응원과 격려의 말이 벌써 들리는 듯합니다. “여기 앉아라. 먹어라. (…) 네 삶을 잔치처럼 누려라.”
■ 고두현 시인 : 199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늦게 온 소포』, 『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 『달의 뒷면을 보다』, 『오래된 길이 돌아서서 나를 바라볼 때』 등 출간. 김달진문학상, 유심작품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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