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 이후 이어진 것은 끝이 보이지 않는 치료의 시간이었다. 항암치료와 각종 검사, 약 처방이 반복되며 병원비 부담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그동안 치료를 위해 지출한 비용만 약 1억 원에 달했다. 몸의 고통은 물론, 경제적인 부담과 미래에 대한 불안은 김 선생님을 더욱 힘들게 했다. “눈물만 나는 날들이 일상이었다”는 그의 말처럼,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시간은 결코 쉽지 않았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치료에 전념하던 중, 김 선생님은 산재 인정이라는 또 하나의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다.

Q. 폐암 진단 당시의 심경은 어떠셨나요?
“처음에는 정말 믿기지 않았습니다. 오랜 시간 조선소에서 일해오며 건강하다고만 생각했는데, ‘폐암 4기’라는 말을 들었을 때 머릿속이 하얘졌습니다. 앞으로의 치료 과정이나 남겨질 가족들 걱정에 불안과 두려움이 한꺼번에 밀려와 눈물이 많이 났습니다.”
Q. 폐암을 치료하기 위해 어떤 치료를 받으셨나요?
“2020년 진단 당시 이미 4기였기 때문에 수술보다는 항암치료와 약물치료를 중심으로 진행했습니다. 보조 항암제인 타그리소를 처방받아 복용하며 정기적으로 병원을 오갔고, 몸 상태에 맞춰 치료 방법을 조절해 나갔습니다. 치료 과정이 쉽지는 않았지만, 의료진과 충분히 상의하면서 제 몸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관리하는 데 집중했습니다.”
Q. 힘든 투병 생활 속에서 예후를 좋게 했던 본인만의 노하우가 있다면요?
“항암 치료로 몸이 천근만근일 때가 많았지만, 가만히 누워만 있지 않으려 노력했습니다. 컨디션이 허락할 때마다 근처 둘레길이나 산책로를 매일 1시간씩 꼭 걸었습니다. 맑은 공기를 마시며 걷는 것이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큰 힘이 되었죠. 또 날씨 좋은 날엔 오토바이를 타고 바람을 쐬거나 가족과 가까운 곳으로 여행을 가는 등 일상 속 즐거움을 찾으려 했던 것이 긴 투병을 버티게 한 원동력이었습니다.”
Q. 경제적인 어려움은 어떻게 극복하셨나요?
“치료가 길어지며 쌓이는 병원비와 비급여 약값이 가장 큰 걱정이었습니다. 그때 노무법인 폐의 정현일 노무사님을 통해 산재보상 제도를 알게 되었습니다. 저의 조선소 재직 경력과 업무 환경을 꼼꼼히 분석해 직업력을 입증해주신 덕분에 산재 인정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보상급여로 치료비와 생활비 부담을 덜고 나니 경제적 여유가 생겨 오직 치료에만 전념할 수 있었고, 덕분에 끝까지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김 선생님의 산재보상을 담당한 노무법인 폐 대표 정현일 노무사는 "김 선생님의 경우, 조선소에서 수십 년간 근무하며 용접 흄과 분진, 그리고 과거 현장에서 흔히 쓰였던 석면 등에 장기간 노출된 점에 주목했습니다. 폐암 산재는 퇴직 후 수년이 지나 발병하는 경우가 많아 인과관계를 놓치기 쉽습니다. 저희는 김 선생님의 구체적인 공정 기록과 유해 물질 노출 빈도를 법리적으로 재구성하여, 질환의 발생과 근무 환경 사이의 인과관계를 입증했습니다”라고 산재 승인을 받기까지의 과정을 설명했다.
이어 정 노무사는 “폐암 환자들이 가장 먼저 맞닥뜨리는 공포는 경제적 고립입니다. 하지만 산재보상은 치료비뿐만 아니라 생활비(휴업급여)를 지원하여 환자가 치료를 포기하지 않도록 도울 수 있습니다. 김 선생님의 사례처럼 과거의 근무 환경과 폐암 유발 요인에 얼마나 노출되었는지를 체계적으로 입증할 수 있다면 충분히 산재 승인을 이끌어낼 수 있습니다”라고 조언했다.
한경닷컴 뉴스룸 op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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