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라의 부(國富)를 키우는 국부펀드(Sovereign Wealth Fund)가 올해 하나 더 출범합니다. 기존 국부펀드인 한국투자공사(KIC)는 외환보유액 등의 정부 자산을 안정적으로 운용하는 임무를 맡고 있습니다. 하지만 수익 증대에는 한계가 있죠. 이재명 대통령은 “엔비디아 같은 우량 글로벌 기업을 키워내고, 국민이 그 이익을 향유할 수 있는 국부펀드가 있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이른바 ‘K-엔비디아’ 구상인데요, 이게 윤곽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정부는 정부 출자 주식, 공기업 지분 등으로 제2 국부펀드의 초기 자본금 20조원을 조성하고, 올 상반기 안에 투자 전담 기구를 설치할 계획입니다.
작년 말부터 세계 증시와 산업계에선 미국 우주기업 스페이스X의 상장 가능성이 큰 이슈가 되고 있습니다. 기업가치가 약 8000억 달러(1180조원)에 달하다 보니 관련 기업의 주가도 상승 탄력을 받고 있어요. 미래에셋금융그룹이 스페이스X에 약 4000억원을 투자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화제가 되기도 했죠. 제2의 국부펀드가 이런 기업의 성장 초기에 투자할 수 있다면 어떨지 한번 상상해보세요.
생글생글은 지난해 4월 7일 자(제890호)에서 ‘펀드의 세계’를 개략적으로 다뤘습니다. 이번엔 좀 더 깊이 파보겠습니다. 국부펀드와 헷갈리는 국민성장펀드는 무엇이고, 국부펀드의 긍정적·부정적 영향에는 어떤 게 있는지 4·5면에서 공부해보겠습니다.
운용 잘하면 가계·나라살림 피고 성장률 '쑥'

먼저 펀드(fund)란 무엇인지 복습해볼까요? 펀드는 자산운용회사가 투자자로부터 모은 자금을 주식이나 채권 등에 투자한 뒤, 그 수익을 돌려주는 금융상품을 말합니다. 돈을 모아 투자한다는 점에서 ‘집합투자기구’이고, 전문가가 대신 운용해준다는 점에서 ‘간접투자상품’입니다. 펀드는 증권펀드, 부동산펀드, 파생상품펀드, 주가지수펀드(ETF), 사모펀드, 사모투자회사 등으로 다양합니다.
국부펀드·국민성장펀드 역할 기대
이름에 같은 ‘펀드’가 붙어 있지만, 국부펀드는 꽤나 성격이 다릅니다. 위의 펀드들이 민간의 금융투자상품인 데 반해, 국부펀드는 정부가 소유하거나 관리하는 투자 펀드를 말합니다. 나라의 부(富)를 기초자산으로 삼아 국부를 더 키우고 경제적 안정에도 기여하고자 하는 펀드입니다. 주로 외환보유액이나 자원 수출로 확보한 자금, 재정 흑자로 생긴 여유자금을 장기 투자전략에 따라 주식·채권·부동산 등에 투자합니다.
그러면 ‘국민성장펀드’는 또 뭘까요? 지난 20일 정부는 국민성장펀드에 소득공제, 배당소득 분리과세 등 파격적인 세제 혜택을 부여하는 방안을 밝혔습니다. 이 펀드는 국내 첨단 전략 산업에 투자해 관련한 생태계를 조성하고자 정부가 총 150조원 규모로 만드는 공공정책펀드입니다. 국민도 투자할 수 있도록 문호를 열고, 이렇게 마련한 돈으로 ‘K-엔비디아’ 육성, 국가 인공지능(AI) 컴퓨팅 센터, 해상풍력·전고체 배터리 등 유망 분야에 집중 투자하겠다는 겁니다. K-엔비디아를 키워 국민이 이익을 향유하게 하겠다는 것은 국민성장펀드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이제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새롭게 만들어지는 국부펀드는 국유 자산과 공기업 지분을 모아 국가 전략 산업에 장기 투자하는 지주회사 형태의 투자 플랫폼입니다. 싱가포르 국부펀드 테마섹(Temasek)이 모델이죠. 그리고 한국투자공사(KIC)는 외환보유액 등을 해외에 투자하는 전통적 국부펀드입니다. 싱가포르투자청(GIC)과 역할이 비슷합니다. 마지막으로 국민성장펀드는 경제성장을 앞에서 이끌 마중물 역할을 하는 공공펀드로서, 국민이 투자할 수 있게 국민 참여형으로 만드는 겁니다.
“국부펀드는 국가전략의 두뇌”
국부펀드를 통한 국부 증대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 주요국 사례에서 효과성이 충분히 입증됐습니다. 1974년 설립된 싱가포르의 테마섹은 최근 20년간 연평균 수익률이 9%, 50년으로 넓혀보면 연평균 14%에 이르는 수익률을 올렸습니다. 이 기간에 오일쇼크, 아시아 외환위기, 글로벌 금융위기 등 수많은 경제위기가 있었다는 점에서 놀라운 수익률입니다. 싱가포르 GIC도 20년 연평균 수익률 4.6%로 안정적 성과를 보였습니다.
비결이 무엇일까요? GIC 창립자인 조지 추는 국부펀드를 ‘국가의 뇌(brain)’에 비유하며 “정치적 압력이나 단기 안목을 극복하고 글로벌 자산을 최적화하는 전략적인 두뇌”라고 묘사했습니다. 국가가 민간과 한 몸이 돼 경제를 이끌어가는 싱가포르 특유의 경제 시스템에 우수 인재들이 국부펀드 운용을 맡고 독립성을 보장받기 때문이라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노르웨이 정부연기금(GPFG)이 성공 사례로 꼽힙니다. 이 펀드의 운용자산은 약 1조7000억 달러(약 2500조원)로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합니다. 1998년 설립 이후 2023년까지 연평균 수익률은 7.5%에 이르렀습니다. 노르웨이산 석유 자원에서 발생하는 수익을 글로벌 주식과 채권에 분산 투자한 결과, 국민 1인당 약 30만 달러(약 4억4000만원)의 자산 증식 효과를 봤다고 합니다.
이에 대해 노르웨이 경제학자 라멜레 지아비는 “석유라는 유한 자원을 미래세대의 금융자산으로 변환하는 시간 기계”라고 국부펀드를 설명했습니다. 자원은 쓰면 쓸수록 고갈 시점이 다가오는 리스크가 있습니다. 석유 자원을 장기간의 투자 재원으로 바꿔 경제 안정과 성장잠재력 확보에 잘 활용했다는 설명입니다. 이를 통해 노르웨이는 국내총생산 증가율을 연간 0.5~1.0%p만큼 높였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2. 공공정책펀드가 성공한 사례가 없다. 이유가 뭘까?
3. 싱가포르 테마섹의 발전 과정과 성공 요인에 대해 알아보자.
구축효과, 혁신 둔화 등 부작용 주의해야

이번엔 국부펀드가 나라 경제에 어떻게 기여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경제 안정과 성장을 돕습니다. 국부펀드는 금융위기 같은 상황이 벌어지면 보유 자금을 투입해 시장을 안정시키는 소방수 역할을 합니다. 또 각종 인프라 건설과 국가전략 산업에 투자를 진행해 경제성장을 촉진하고 국가경쟁력을 높여줍니다.
“국가의 연금저축 통장”
다음으로 재정 안정에 이바지합니다. 국가의 유휴자산을 적극적인 투자로 불려나가기 때문에 수익률만 적정 수준을 지키면 국가부채를 줄이고 재정건전성을 강화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마지막으로 세대 간 부(富)의 분배를 돕습니다. 국부펀드는 장기간에 걸쳐 국부를 관리하고 미래세대에 혜택을 제공해 사회통합에 기여합니다. 저명한 경제학자인 케네스 로고프 미국 하버드대 교수는 국부펀드를 ‘국가의 연금저축 통장’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국부펀드는 국가의 초과수익을 강제로 저축하게 한 다음, 복리 효과로 증식시키는 메커니즘”이라고 설명합니다.
국부펀드 발달하지 않은 미국
그런데 ‘자본주의의 심장’이라 불리는 미국에선 국부펀드가 별로 발달하지 않았습니다. 왜 그럴까요? 국부펀드가 기능하려면 먼저 국부가 쌓여 있어야 합니다. 자원 수익, 재정·경상흑자 등을 통해 ‘남는 돈’이 있어야 하는데,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재정적자와 경상적자가 수십 년간 지속됐습니다. 또 노르웨이나 중동의 산유국처럼 고갈될 위기의 자원 수익을 금융자산으로 전환해야 할 필요성이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다음으로 정부가 특정 기업과 투자 기구를 직접 소유하고 투자하는 것에 대해 전통적으로 거부감이 강합니다. 미국 정부는 민간의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보장하는 역할에 충실할 뿐, 직접 시장에 뛰어들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집권 2기를 맞아 변화하는 움직임도 목격됩니다. 인텔 등의 지분을 정부가 확보하고 해외 기업의 미국 내 투자에 지분을 요구하는 등 국가 주도 경제 시스템을 일부 도입하는 분위기입니다.
연금사회주의 부작용 우려
경제이론에 입각해 국부펀드를 따져보면 구축효과(Crowding-out Effect), 민간의 창의성 제약, 과도한 정치적 목적 추구 등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구축효과란 민간이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시장에 정부가 개입함으로써 민간의 투자를 밀어내버리는(구축하는) 효과가 생기는 것을 말합니다. 정부가 국부펀드를 조성하기 위해 국채 발행을 늘릴 경우, 국채 가격은 떨어지고 시장금리는 올라갑니다. 또 국부펀드의 투자가 늘어나면 주식·부동산 등 자산의 가격이 상승해 경제 전체의 자본비용이 증가하게 됩니다. 금리와 자본비용의 상승은 필연코 민간의 투자를 위축시키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구축효과는 자본조달 경로 밖에서도 작용합니다. 국부펀드의 자금이 인공지능(AI)·반도체 등 특정 전략산업에 쏠리면 기존에 민간이 추구해 온 고수익 프로젝트가 국가 우선순위에서 밀리고 자금 지원을 받지 못할 수 있습니다. 이때 경제 전체의 자원배분 효율성이 떨어져 장기 경제성장률이 0.2~0.5%P 낮아진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민간의 혁신을 둔화시킬 위험성입니다. 국부펀드가 연구개발 자금을 좌지우지하게 되면 기업은 위험을 감수하는 창의적 시도를 하기보다 안전한 ‘국부펀드 따라잡기’에 올인할 수 있습니다. “국가가 투자를 주도하니까, 내가 위험을 부담할 필요 없다”는 심리가 퍼지면 벤처투자가 감소하고 창업 생태계는 위축됩니다. 싱가포르 테마섹이 과도하게 스타트업에 개입해 민간의 벤처캐피털 역할이 많이 줄었다는 보고도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정부의 과도한 개입과 정치적 목표 추구 문제입니다. 국부펀드가 정치적 목적에 휘둘려 운용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면 투자 결정이 경제적 합리성을 잃고, 결국 수익률은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국부펀드가 투자 대상 기업을 고를 때뿐만이 아닙니다. 이미 투자한 회사의 경영에 개입하려 할 경우 ‘연금 사회주의’(연기금을 통한 기업 경영 개입) 문제가 국부펀드에서도 나타날 수 있습니다.
2. 국가 주도 경제 시스템으로 변화하는 미국의 상황을 알아보자.
3. 연금사회주의에 대해 공부해보자.
장규호 한경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danielc@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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