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를 잘 다루는 인재를 찾으면서도 AI로 인해 내 자리가 없어지진 않을지 가슴 한 켠에는 플랜B를 준비하며 불안감을 살아야 하는 것이 요즘 시대 리더들의 자화상이다.
지난 주 모 처에서 각자의 브랜드를 발판으로 성공 스토리를 쓰고 계신 CEO들과의 식사자리가 있었다. 부모의 도움없이 바닥부터 시작해 스스로 일으켜 세운 사업과 삶의 이야기들은, 아무도 연출하지 않았지만 기승전결의 구조를 완벽하게 갖춘 영화의 시나리오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지만 그 가운데서 필자를 강력하게 끌어당기는 서사가 있었으니, 반영구 화장 브랜드 K 대표의 이야기였다.
우리가 살면서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많지만, 자신의 얼굴만큼 중요한 것이 있을까. 영원히 젊고 아름답고자 하는 인간의 욕구는 ‘백세시대’라는 사회 변화와 맞물려 다양한 산업의 키워드가 된 지 오래다. 반영구 화장 역시 머리카락을 필두로 탈모가 시작되는 연령대부터 시작되는 그 붙잡고 싶은 ‘영원함’에 대한 인간의 갈구가 빚어낸 비즈니스일지도 모른다.
불현듯 ‘AI가 눈썹 디자인은 잘 그려낼 수 있을지 모르나 사람의 손만큼 정교하게, 전체적인 인상까지 살피며 인상을 봐가며 시술까지 할 수 있을까?’하는 내적 의구심이 생겼고, 필자는 K 브랜드 대표를 향해 속사포 질문공세를 이어갔다.
눈, 코, 입 구성조건은 동일해도 어느 하나 같은 것이 존재할 수 없는 것이 사람의 얼굴이다. 피부 탄력, 미세한 비대칭, 살아온 삶과 직업까지도 가늠하게 하는 표정근육의 흔적까지 일란성 쌍둥이의 얼굴도 시간이 지나면 달라지는 이유다. “한쪽 눈썹을 자주 찡그리며 생긴 표정근육이 보이지 않게 반영구 눈썹으로 자연스럽게 가렸다”는 한 고객에 대한 이야기에 모르긴 몰라도 수천 명, 수만 명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가장 예쁜 ‘평균값’을 제시할 AI의 안목 혹은 기술과 니들(needle)을 든 사람의 눈과 손맛과의 한판 대결을 상상했다.
결국 승기를 드는 쪽은 전체적인 ‘조화로움’을 판단하는 이성과 감성을 갖춘 사람의 손일 것이고, 실제로 그렇다고 한다.
무서운 속도로 진화하는 AI 기술이 언젠가는 인간의 창작 영역까지 대체하는 것이 시간문제일 지도 모른다. AI는 이미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영상을 만들고, 작곡도 해주고 있다. 몇 달 동안 머리를 부여잡고 가사를 쓰고 또 고치며 피아노와 씨름하며 곡 하나를 만들어 내는 인간의 치열한 노력이 비효율적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그래서 AI에게 ‘AI가 못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AI로서 솔직한 답변을 해주기 바랐다. 그랬더니 돌아온 대답은 다음과 같았다.
“AI는 계산할 수 있지만 공감하지 못하고, 패턴을 찾을 수 있지만 맥락을 온전히 느끼지는 못합니다. 이 사람이 왜 이 선택을 했는지, 지금 이 순간 어떤 감정상태인지, ‘예쁘다’가 아니라 ‘어울린다’는 판단 같은 것은 여전히 인간의 영역입니다. 그리고 이 영역은 생각보다 넓습니다.”
오호라. 지금껏 AI와 나눈 대화 중에 가장 인간적(?)인 솔직한 답변이다. 그렇다면, AI가 점령할 수 없는 분야는 정답이 없는, 인간의 미적 판단이 작용하는 분야라는 결론인데 앞서 언급한 반영구 눈썹을 떠올려 본다면 데이터 분석을 기반으로 가장 아름다운 눈썹 디자인을 AI 로봇이 내 얼굴에 시술했다고 치자. 하지만 그 눈썹이 내 얼굴에서 조화롭게 보일지는 미지수다. 바로 이것이 조화로움을 판단하는 인간의 ‘감성’과 그것을 구현할 수 있는 ‘손맛’의 영역일 것이다. 당장 오늘부터 AI시대를 헤쳐 나갈 나만의 기술 하나쯤은 배워야겠다는 의지가 샘솟는다.
반면, AI시대의 흐름을 잘 타며 AI를 활용해 백세시대를 준비하는 이들도 있다. 안정적인 직업의 대명사 중 하나인 의사인 지인은 얼마전 사직서를 내고 AI로 작곡도 하고, 자신의 여생을 보낼 집을 짓겠다며 건축학 분야에도 도전하고 있다.
전혀 다른 분야에 도전할 수 있는 용기의 원천 가운데 하나는 아이러니컬하게도 의료인의 경쟁자일 수 있는 AI기술이다. 의사 재직시절부터 남들이 안 쓰는 비싼 유료 소프트웨어를 써가며 열심히 AI가 열어둔 길을 쫓아가는 그가 의료서비스가 아닌 어떤 것으로 인생의 또 다른 방점을 찍을지 자못 기대가 크다.
이런 얘기를 듣는 사람 중에 혹자는 “지금 하는 일도 바쁜데 뭘 또 배우냐”고 반문할 지도 모른다. 여기저기 기웃거리느니 AI 유망기업의 주식 수익율이 자신의 삶을 더 지속가능하게 만들어줄 것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AI시대에 우리가 느끼는 불안은 구조적인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다. 나의 직장(업)은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데 나는 오래 살 것으로 예상되는 시대. 나만의 감성에, AI가 치고 들어오기 힘든 기술과 내 삶의 서사가 더한다면, 그것이 곧 브랜드다.
인생이라는 장기전에서는 ‘어느 회사에 다니냐’ 보다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는가’가 오래 남는 레코드다. 오래 사니까 오래 갈 것이 필요하다. 나는 어떤 ‘감각’을 가진 사람인지, 나는 어떤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사람인지, 나는 어떤 ‘관점과 손맛’을 가진 사람인지.
이것에 대한 해답을 찾는 것이 머지않은 미래에 내 인생에서 사라져버릴 지도 모를 직장 때문에 포기하고 있는 우리의 수면시간을 투자할, 꽤 괜찮은 기회비용처가 될 수도 있다.
AI가 대답하지 않았나,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인간의 영역은 생각보다 넓다고.

장헌주 님은 홈쇼핑TV 마케터로 재직 중 도미(渡美), 광고 공부를 마친 후 중앙일보(LA) 및 한국경제매거진 등에서 본캐인 기자와 부캐인 카피라이터 사이를 오가며 살았다. 딜로이트 코리아에 이어 IT기업 커뮤니케이션 총괄 디렉터를 역임한 후 지금은 크리에이티브 솔루션 랩 '2kg'에서 PR & 위기관리, 브랜딩 전문가로 세상의 일에 '시선'을 더하고 있다.
강홍민 기자 kh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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