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일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이달부터 지원하는 올해 중기 R&D 예산은 지난해보다 45% 늘어나 사상 최대인 2조2000억원이 집행된다.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을 통해 지원하는 자금(4조4313억원)과 다른 부처 예산을 합하면 9조원대 정부 정책자금이 시중에 풀린다. 게다가 시중은행의 중기 대출(소상공인 포함)이 연일 최대치를 경신 중이다. 5대 시중은행의 중기 대출 잔액은 2021년 554조원에서 지난해 674조원으로 약 22% 증가했다.
정책자금 규모가 커지자 브로커도 기업형으로 진화하고 있다. 이들은 보이스피싱으로 정부 기관을 사칭하거나 스미싱 형태로 개인 정보를 빼내 대출금을 가로채고 있다. 정책자금 관련 업무를 맡은 공공기관 직원이 퇴직 후 브로커로 전업하거나 정책자금 신청자를 대상으로 한 컨설팅 학원 강사로 변신한다. 이들은 은행, 보험사와 연계해 정책자금을 신청하는 소상공인 등에게 보험과 펀드 상품 가입을 종용하기도 한다.
중기부는 지난달 태스크포스(TF)를 꾸려 경찰과 합동 조사에서 나섰지만 아직 구체적인 피해 규모조차 집계하지 못하고 있다. 불법 브로커를 처벌할 법 개정도 수년째 지지부진해 피해를 키우고 있다는 비판을 받는다.
합법적 컨설턴트와 분간 어렵고 불법 알고 이용한 기업은 속앓이만
A사 대표는 다음날 정책자금을 집행하는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에 전화를 걸어 ‘혼자 신청할 수 있으니 직접 찾아오라’는 답을 받았다. 그는 “돈이 궁한 상황에서 자금을 확보해주겠다는 말에 솔깃해 큰 피해를 볼 뻔했다”고 말했다.
새해를 맞아 9조원대 정책성 자금이 풀리면서 브로커 사기가 늘어나고 있다. 이들은 마구잡이로 메일을 보내거나 전화를 거는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해외 판로 확대나 연구개발(R&D)을 지원하는 맞춤형 컨설턴트로 진화하고 있다. 정책자금 관련 법규가 미비한 점을 악용해 정책자금 신청 절차를 잘 모르는 중소기업을 상대로 터무니없는 수수료를 받고 있다.브로커의 주요 공략 대상은 5인 이하 소기업과 대표가 고령인 중소기업이다. 먼저 자금 조달이 시급한 기업이 자주 찾는 기업설명회(IR)와 스타트업 설명회장에서 투자자로 둔갑해 중소기업 대표에게 접근한다. 친분이 쌓이면 “수수료만 조금 주면 정책자금이나 저리 대출을 쉽게 받을 수 있다”고 유혹한다. 공공기관으로 착각하도록 ‘중소기업지원센터’ ‘중소벤처진흥센터’ 같은 명함을 만들어 들고 다닌다.
이들은 “상반기에 신청해야 통과 확률이 높다”고 홍보한다. 하반기는 가용 예산이 줄고 지원자가 몰린다는 이유에서다.
처음엔 무료로 견적을 봐주겠다고 한 뒤 정책자금을 신청할 때면 수수료나 선수금을 요구한다. 이때 ‘대출’이라는 표현보다 ‘예산 혜택’과 ‘정부 지원’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며 신청 자금 규모를 키우라고 한다. 이들은 “우리 네트워크를 활용하면 정책자금을 100% 받을 수 있다”거나 “전문 컨설팅학원에서 수강하면 좋다”고 꼬드기기도 한다.
브로커가 활개 쳐도 중소기업 대표들이 합법과 불법을 분간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공식 컨설턴트는 정부 지원사업과 관련한 경영 자문을 해준 뒤 소액의 수수료를 받는다. 하지만 불법 브로커는 최대한 많은 지원금을 받을 수 있다고 유혹한 뒤 선수금 등을 요구하며 본인들의 이익을 늘리는 데 주력한다.
브로커 활동이 수면 위로 드러나는 일은 드물다. 불법이라도 빠르게 해결해주는 브로커를 찾다 보니 피해를 봐도 기업 이미지를 고려해 언급 자체를 꺼리는 기업인이 많다. 2019년부터 2024년까지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에 신고된 정책자금 불법 브로커 사례는 31건에 그쳤다.
불법 브로커들의 최대 먹잇감은 중소기업 R&D 예산이다. 다른 정책성 자금은 갚아야 하는 대출이지만 R&D 예산은 갚을 필요가 없는 출연금이어서 중소기업인들이 가장 선호한다.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지난해 중기부와 공공기관이 집행한 중기 R&D 지원 예산은 4조3565억원(추산치)으로 2023년보다 5%가량 늘었다. 올해 중기부가 자체 편성한 중기 R&D 지원금은 2조1959억원으로 역대 최대다. 다른 부처 정책자금까지 합하면 9조원이 넘을 전망이다.
노민선 중소벤처기업연구원 실장은 “불황일수록 정책자금 수요가 늘면서 불법 브로커가 기승을 부린다”며 “정책자금 신청 절차와 구비 서류를 간소화하고 처벌 법규를 강화하는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원종환 기자 won040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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