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원전은 심각한 전략적 실수였다.”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는 지난 15일 공개 회견에서 독일의 뿌리깊은 탈원전 정책을 이렇게 규정했다. 독일은 앙겔라 메르켈 전 총리 그는 “세계에서 가장 비싸고 어려운 에너지 전환을 자초했다”고 밝혔다. 전력 생산 설비 부족으로 에너지 목표를 수정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는 설명이다.
이 같은 발언은 폭증하는 인공지능(AI)·데이터센터 전력 수요 속에서 전력 안정성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라는 전 세계 공통의 과제를 다시 부각시키고 있다. 한국원자력학회(회장 최성민 카이스트 교수)도 같은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다.
학회는 23일 발표한 입장문에서 “AI 전력 수요 증가와 2050년 탄소중립을 동시에 달성하려면, 제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12차 전기본)에 기존 계획을 넘어선 추가 신규 원전 건설이 반드시 반영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학회는 한국이 ▲탄소중립(환경) ▲전기요금 부담(경제성) ▲에너지 안보(안정성)라는 ‘에너지 트릴레마’에 직면해 있다고 진단했다. 재생에너지는 필수적이지만, 발전량 변동성이 커 AI·데이터센터처럼 24시간 전력을 요구하는 수요를 단독으로 감당하기는 어렵다는 설명이다.
특히 학회는 발전원 경제성을 비교할 때 널리 쓰이는 균등화발전원가(LCOE)가 “현실을 왜곡한다”고 지적했다. LCOE는 발전소 내부 비용만 계산할 뿐, 재생에너지 간헐성에 대응하기 위한 백업 발전, 전력망 확충, 에너지저장장치(ESS) 구축 비용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이유에서다.
학회는 전력망 보강과 유연성 자원 확보 비용까지 포함한 ‘총전력계통비용(Full System Costs)’을 기준으로 에너지 믹스를 평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엔유럽경제위원회(UNECE) 보고서에 따르면 변동성 재생에너지는 이런 추가 비용 때문에 실제 시스템 비용이 LCOE의 두 배 이상으로 커질 수 있다는 분석도 제시됐다.
학회 분석에 따르면 11차 전기본의 2038년 원전 비중 목표인 35%를 2050년에도 유지하려면 신규 대형원전 20기와 소형모듈원전(SMR) 12기가 필요하며, 비중을 50%로 높일 경우 대형원전 34기와 SMR 20기까지 필요하다.
해외에서는 이미 민간이 움직이고 있다. 구글은 SMR 개발사와 협력해 2030년까지 500MW 규모의 전력을 공급받기로 했고, 마이크로소프트는 미국 스리마일아일랜드(TMI) 원전 1호기 재가동을 통해 20년간 전력을 구매하기로 했다. 아마존, 메타 등도 원전 전력 확보에 나서고 있다.
최근 기후에너지환경부가 진행한 원전의 필요성에 관한 여론조사에서 국민들의 90% 가까이가 찬성하고 있는 것으로 집계된 바 있다. 한국원자력학회는 “원자력과 재생에너지는 대체 관계가 아니라 상호 보완적 파트너”라며 “전문가 중심의 과학적 검증과 국민적 공감대를 바탕으로 12차 전기본을 재설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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