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은퇴, 퇴직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중장년은 위축된다. 요즘은 희망퇴직 대상 나이가 40대로 낮아지고 그 수도 점점 늘고 있어 불안감이 더 커지고 있다. 강연을 통해 퇴직을 앞둔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종종 있는데, 이런 질문을 던지곤 한다. “퇴직 후 가장 먼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가요?” 이 질문엔 ‘여행’이라는 답변이 압도적으로 많다. 그만큼 여행은 퇴직 후 하고 싶은 1순위다.
나는 퇴직 후 다양한 여행 즉 홀로, 가족 그리고 함께 여행을 즐기고 있다. 각각 장단점이 있지만, 퇴직을 앞둔 사람이나 퇴직한 사람들에게는 혼자 여행해 보라고 적극 권장한다. 현실과 완전히 벗어나 온전한 나를 마주할 절호의 기회이자, 현지인과 자연을 만나면서 향후 자기 인생의 방향을 정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하라 사막 나홀로 여행도 그랬다.
알고 보니 생텍쥐페리는 범상치 않은 삶을 살았다. 21살에 전투기 조종사가 되어 첫 비행부터 명령에 따르지 않고 자기 멋대로 비행했다. 그 후에도 여러 사고를 저질러서 ‘비행기를 부수는 사람’이라는 조종사로는 불명예스러운 별명까지 얻게 되었다. 실제로 그는 1935년 사하라 사막에 불시착했고 닷새간 사막을 배회하고 물까지 다 떨어져 죽을 뻔한 경험도 있었다.
사하라 사막에 도착하자마자 황급히 일몰을 보기 위해 낙타에 올라탔다. 낙타가 일어날 때 사막 모래에 코를 묻을 뻔했다. 몸을 활처럼 제치면 도움이 된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모래는 고유한 색상도 아름다운데 빛과 어둠의 대조로 인해 그 멋을 더했다. 기하학적 형상을 빚어낸 모래의 선이 칼날처럼 날카롭기도 했다. 사막에 표시된 길은 낙타와 바람이 만든 것은 아닐까. 사막에서 부는 바람은 모래와 모래 사이의 틈을 만들고 다양한 무늬를 만들었다.
단 하나도 동일한 문양이 없는 창의적인 디자이너다. 또한 끊임없이 낙타의 발자국도 이어진다. 낙타라는 동물이 없었다면 과연 여기 사하라 사막 주변에 사는 베르베르인들은 어떻게 생존할 수 있었을까.

해를 보기 위해 높은 모래 산 정상에 올랐으나 구름 낀 하늘은 장엄한 일몰을 허용하지 않았다. 다음 날 흐린 하늘은 일출도 보여주지 않았다. 사하라 사막과는 인연이 없나 보다 하고 뒤로 돌아섰다. 한 젊은 여인이 혼자 작은 모래 산등성이에 서 있었다. 어젯밤 호주에서 여행 온 사랑스러운 부녀지간 중 딸이었다. 어머니가 딸에게 조금씩 다가가며 설레는 듯한 모습을 보면서 갑자기 영화 촬영 감독인 양 두 주연의 일거수일투족을 담으려 애썼다.
관광객을 태우기 위해 낙타를 끌고 내려오는 베르베르인이 비중 있는 조연 역할까지 해 주니 멋진 한 컷이 완성되었다. 어머니와 딸이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이 멀리 서 보고 있는 나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되며 아쉽게 못 본 일출을 상쇄하고 남았다. 잊을 수 없는 사랑스러운 장면을 사진으로 담고, 딸에게 전달해 주었더니 인생 사진이라며 연신 감사하다고 했다. 나 역시 충만해지는 순간이었다.
부엌 천막 안에 들어가니 낯익은 우리나라 아궁이와 유사한 구조가 보였다. 어머니가 파란 비닐로 덮은 커다란 빵을 포함한 음식을 가져왔다. ‘아! 거기에서 이 빵을 구웠구나.’ 갓 구운 빵 아래는 불에 달구어진 돌 자국이 군데군데 선명했다.
올리브기름을 먼저 찍은 후 붉은색의 달콤한 전통 소스를 묻혀서 먹어야 한다고 꼬마가 친절하게 알려줬다. 거기에 민트차까지. 좋은 손님이 오면 주전자를 높은 곳에서 따라서 거품을 적절히 만들고, 마음이 들지 않는 사람에게는 거품이 없는 차를 준다고 했다. 물론 내가 받은 거품이 있는 차는 훨씬 더 향이 좋았다.
아이들과 장난감 호스 놀이도 했다. 상대방보다 빨리 입으로 세게 불어서 이겼다고 우기면서 한참을 웃었다. 이렇게 힘든 천막생활을 하면서도 얼굴에 구김살이 없다는 것이 다소 이해하기 어려웠다. 오히려 너무나도 밝고 행복해 보였다.

사하라 사막 투어는 보통 2박3일을 한다. 길면 더 좋을 것 같다고 3박4일을 선택한 사람은 내가 유일했다. 덕분에 일행들과 헤어져 1:1로 현지 베르베르인, 유수프라는 친구와 하루 종일 함께 할 수 있었다. “이런 척박한 사하라 사막에 사는 것이 힘들지 않나요?”라고 물었다. 몇 초의 망설임도 없이 그가 답변했다. “사하라 사막이라는 어려운 환경 덕분에 우리 베르베르인은 훨씬 더 강해졌어요. 심지어는 사하라 사막이 관광지가 되면서 생계에도 도움이 많이 되고 있고요.”라며 밝게 웃었다. 행복한 사람의 전형적인 얼굴이었다.
개인이 아무리 노력해도 바뀌지 않는 구조적 한계를 탓하는 단어가 있다. 특히 젊은이들이 겪는 시대의 아픔을 반영한 유행어인 각자도생(각자 살길을 도모함)과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다. 주변 상황이 갑작스럽게 안 좋아지면 사람들은 누구나 이런 푸념을 늘어놓기도 한다. ‘왜 하필 나에게만 이런 일이 일어나지.’
50대 후반 직장 근로자들은 퇴직 전후로, 사회로부터 버림받은 가치가 없는 사람으로 스스로를 간주하고 한숨을 쉬면서 불안감에 빠지기도 한다. 이처럼 힘든 상황에 처한 사람에게 유수프의 말은 삶의 지혜를 알려준다.
어려운 환경을 맞닥뜨리더라도 낙담하지 말고, 일단 겸허히 받아들이고, 점차 힘든 상황을 하나씩 극복하다 보면 강하고 단단해진다는 것이다. 만약 더 큰 난관에 부딪히더라도 흔들릴 수 있지만, 무너지지 않고 오히려 긍정적인 일이 생길 수도 있다고 강조한다.
나의 경험도 떠올랐다. 은퇴 후에 지나치게 주어진 재앙 같은 24시간에 마땅히 갈 곳도 없어 어쩔 줄 몰라 하며 결국 우울감까지 생겼다. 어느 날 ‘더 이상 고통스러워하지 말고 주어진 소중한 시간에 내가 좋아하는 재미를 찾고 시도하자’라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생각만 전환하고 시도한 결과, 활력을 찾고 나 자신이 단단해졌을 뿐만 아니라 꾸준히 시도한 결과 하고 싶은 일로 발전하는 행운도 얻었다.

사하라 사막을 다녀온 후 결심한 것이 하나 있다. <어린 왕자> 책을 다시 읽어 보리라고. 읽다가 잠시 머무르게 한 문구가 있었다. “아무도 모르는 비밀을 말해줄게. 아주 간단해. 마음으로 봐야 보인단다.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거든.”
그토록 보고 싶었던 사하라 사막에서 낙타를 타고, 흐린 일몰과 일출을 보고, 밤하늘 별까지 눈에 보이는 것을 보려고 노력했다. 많은 관광객이 유사하게 여행했을 것이다. 나는 유수프라는 현지 베르베르인을 통해 눈에 보이지 않는 중요한 인생의 교훈을 얻었다. 그가 중요한 존재가 된 건, 내가 그에게 들인 시간, 하루였다. 여행은 역시 사람이다.
서병철 재미있는은퇴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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