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0일 전북 장수군, 해발 500m 산자락에 있는 중심가를 지났다. 15분 정도 차를 타고 언덕을 오르자 꼭대기에 거대한 유리 온실이 보였다. 29세 김현준 씨가 운영하는 토마토 스마트팜이었다.
거대한 온실 속에선 한겨울 맹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바깥과 달리 싱그러운 토마토 향기가 가득했다. 축구장 두 개 크기에 달하는 1만3200㎡(약 4000평) 규모의 농장. 김 대표는 이곳의 온도와 습도를 휴대전화로 확인하고 조정한다. 이날 온실 한켠에 있는 사무실에는 증권가에서 볼 법한 컴퓨터와 모니터들이 나란히 놓여져 있었다.
김 대표는 부모님이 일궈온 '장수 파프리카 영농조합법인'을 이어받아 경영 중이다. 2020년 대학을 졸업하고 도시 생활을 선택할 수도 있었지만, 그는 농사를 이어가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왔다. 대신 기존 농사 방식에 IT 기술을 도입해 '스마트팜'을 일구고 있다. 작물도 회사명과 달리 파프리카가 아닌 토마토를 선택해 사업을 확장 중이다.
김 대표는 스마트폰 하나로 온실의 천창을 여닫고, 난방 파이프의 온도를 조절하며, 작물이 필요로 하는 수분과 비료의 양을 1% 단위까지 제어한다. 과거 농업이 하늘만 바라보는 '천수답'이었다면, 그의 농업은 철저히 계산된 '과학'이다. 수확량도 스마트팜을 통해 한 달에 200㎏ 정도로 끌어올려 놓은 생산 효율성을 기록 중이다.
그가 생산한 토마토는 품질 기준이 까다로운 글로벌 프랜차이즈 패스트푸드점과 주요 백화점으로 납품된다. 시장 가격보다 높은 값을 받지만, 균일한 품질 덕분에 주문이 끊이지 않는다. 그는 "단순히 농산물을 파는 게 아니라, 신뢰와 기술력을 파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젊은 나이에 수십억 원 규모의 시설을 운영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다. 특히 농업을 '힘들고 지저분한 3D 업종'으로 바라보는 사회적 편견은 그가 넘어야 할 첫 번째 산이었다.
"요즘 농업은 무턱대고 몸만 쓰는 노동이 아닙니다. 외국인 근로자들을 효율적으로 배치하는 인사 관리부터, 시세 변동을 예측해 출하 시기를 조절하는 재무 관리까지, 말 그대로 기업 경영과 똑같습니다."
김 대표는 농장을 '생산 공장'처럼 시스템화했다. 과거 아버지가 '신지식인'으로 지역에 선진 농법을 도입했던 것처럼, 그는 이제 농업을 '첨단 산업'의 영역으로 끌어올리고 있다. 그는 "농장에서 직접 땀 흘려 일하는 '워커(Worker)'를 넘어, 전체적인 흐름을 읽고 지시하는 '매니저(Manager)'가 되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지역 청년 사업가로서 감내해야 할 고충도 있다. 억대 매출을 올리는 '부자 농부'로 비치기 쉽지만, 주 6일 일하며 매일 온실을 관리해야만 한다. 일반적인 직장인들이 주 5일 근무하며 주말을 즐기는 생활이 김 대표에게는 오히려 생소하다.
귀농 자체에 대한 어려움도 여전하다. 농사를 선택한 젊은 청년에겐 금융 등 현실적인 문턱이 여전히 높기 떄문이다. 특히 '소득 증빙'이 귀농 청년의 주거에 큰 문제가 된다. 농업 소득은 비과세 대상이라 소득금액증명원상 소득이 잡히지 않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시중 은행의 대출 심사에서는 신용도가 낮게 평가되거나 사실상 '소득 없음'으로 분류되기 일쑤다. "결혼을 앞두고 신혼집 마련을 위해 주택담보대출을 알아봤지만, 증빙 가능한 소득이 없다는 이유로 대출이 불가능했다"는 귀농 가구의 사례가 적지 않다. 법인의 매출 규모나 영농 실적은 개인의 주택 대출 심사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 구조 탓이다.
김 대표는 "청년들의 귀농을 장려하는 정책 취지와 달리, 정작 지역 정착에 필수적인 주거 금융 시스템은 농업의 특수성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며 “청년들이 지역에서 더 활약할 수 있도록 제도적 사각지대가 해소돼야 한다”고 말했다.
유오상 기자 osy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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