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나 현대차 같은 한국의 대기업은 이미 지정학적 갈등의 최전선에 서 있다.”일레인 간 다우존스 아시아태평양지역(APEC) 사장(사진)은 23일 인터뷰에서 “오늘날 지정학적 리스크는 국가 간의 외교 문제를 넘어 기업의 생존을 위협할 수 있는 변수가 됐다”며 이같이 말했다. 국가 간 무력 충돌, 미국의 각종 관세 부과 위협, 중국의 희토류 수출 제한과 같은 리스크에 면밀히 대응해야 한다는 얘기다.
다우존스는 세계 최대 경제지인 월스트리트저널(WSJ)을 비롯해 배런스와 마켓워치 등을 보유한 미디어 기업이다. 동시에 세계 금융기관과 ‘기업에 리스크 및 컴플라이언스’(R&C) 데이터를 공급하는 정보사업자기도 하다. 간 사장은 여러 기업에서 정보기술(IT) 및 네트워크 솔루션 분야 영업 파트에서 일하다 2008년 다우존스 싱가포르에 입사해 18년여간 일한 금융 데이터, 리스크 관리 분야 전문가다.
그는 수출에 의존하는 한국 기업들에 2026년이 ‘가혹한 한 해’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올해 주요 지정학적 리스크로 국가 간 무력 충돌 급증, 희토류 등 핵심 광물 자원을 둘러싼 패권 경쟁, 인공지능(AI)을 악용한 대규모 사이버 위협 확산 등을 예상하고 있다”며 “여기에 아직 끝나지 않은 미국의 상호관세 정책까지 더해지면 올해 한국 기업들은 끊임없이 세계 각지의 분쟁을 주시하며 공급망을 재편해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국 기업들이 특히 주목해야 할 분야로 ‘이중용도(dual-use) 품목’ 관리를 꼽았다. 이중용도 품목은 민간용으로 제조했지만 군사용으로도 사용할 수 있는 제품으로, 각국이 규제 대상으로 지정하는 대표적인 전략물자다. 간 사장은 “한국의 주력 수출품인 전자부품이나 기계류 가운데 상당수는 민간뿐 아니라 군사용으로도 쓰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글로벌 규제 당국은 기업이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이 부품이 군사적 목적으로 흘러 들어가는 것을 엄격히 차단하고 있고, 어길 시 막대한 벌금은 물론 선적이 차단되는 물류 리스크까지 감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글로벌 대기업들은 지정학 리스크에 전문성을 갖춘 정치권과 외교 분야 전문가를 영입해 경영 업무에 투입하고 있다. 영국 부총리를 역임한 닉 클레그를 영입했던 페이스북이나 트럼프 1기 행정부 당시 무역대표부(USTR)를 이끈 로버트 라이트하우저에게 최고경영자(CEO) 자문역을 맡긴 씨티그룹 등이 대표적 사례다.
다우존스는 이 같은 추세를 반영해 R&C 사업을 공격적으로 확장하고 있다. 지난해 지정학 및 보안 리스크 분석 전문 기업인 옥스포드애널리티카와 드래곤플라이인텔리전스를 인수했다. R&C 부문 매출은 작년 4분기 9200만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21% 증가했다.
간 사장은 기존의 규제 준수 지원 서비스에서 지정학적 리스크를 고려한 경영 컨설팅까지 사업을 확장한다는 계획이다. 그는 “2001년 9·11테러 직후 스위스 은행 UBS가 다우존스를 찾아와 방대한 뉴스 데이터를 기반으로 테러와 연루될 수 있는 정치적 위험 인사의 데이터베이스를 만들어 자금 세탁 방지를 도와줄 것을 제안했다”며 “해당 프로젝트가 오늘날 글로벌 은행들이 이용하는 리스크 비즈니스의 모태”라고 설명했다.
간 사장은 단순 리스크 대응을 넘어서 예측하고 대책을 마련하는 일이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미국이나 유럽의 경쟁자처럼 한국 기업들도 지정학 리스크나 보안 이슈에 대응할 C레벨 경영진을 선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전범진 기자/사진=문경덕 기자 forward@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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