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최대 공작기계 회사인 DN솔루션즈는 이달 말 독일 공작기계 업체 헬러 인수를 마무리한다. 1894년 장인 공방에서 시작한 헬러는 4대에 걸친 가족경영으로 초정밀 기계 분야에서 독보적 입지를 구축했으나 코로나19 이후 전기료 급등을 이기지 못하고 위기에 빠졌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11월 유럽 최대 공조 기업인 플랙트를 사들인 데 이어 지난달 자회사 하만을 통해 독일 자동차부품 회사 ZF의 첨단운전자보조시스템(ADAS) 사업을 손에 넣었다. 두산밥캣도 독일 건설장비 업체 바커노이슨의 경영권 인수를 검토했다. 모두 업력이 100년 이상인 기업이다.
독일 기업 파산 건수는 2024년 2만1812건으로 3년 전보다 56% 증가했다. 독일 할레경제연구소는 2005년 이후 파산 기업이 가장 많았다고 집계했다.

'제조 신화' 미텔슈탄트의 비극
지난해 7월 독일 중소기업 전문지 마켓운트미텔슈탄트는 “23분마다 기업 한 곳이 문을 닫고 있다”며 이같이 우려했다. 여기에 지난해 말까지 미텔슈탄트(Mittelstand·강소기업) 소유주 23만1000명이 폐업을 고려 중이라는 조사 결과(독일 국영 개발은행)가 나와 독일 산업계가 충격에 빠졌다.
이런 상황에서 독일 제조업의 상징인 미텔슈탄트가 매물로 쏟아져 나오고 있다. 세계 최고 장인 기업으로 발돋움한 독일 강소기업마저 고령화와 공급망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해외에 매각되자 독일 내 위기감은 더 커지고 있다.
세계 제조업의 모범 사례로 통한 미텔슈탄트 모델이 한계에 봉착했다는 신호는 오래전부터 감지됐다. 독일 산업계는 독일 공작기계의 자존심으로 통하던 DMG가 일본 모리세이키에 인수된 2015년을 그 시작으로 여긴다. DMG는 1870년 독일 빌레펠트 내 작은 선반 제작소에서 출발한 길데마이스터를 중심으로 데켈, 마호 등 세 곳이 합쳐진 기업으로 미텔슈탄트 신화의 상징으로 통했다.
DMG는 유럽 내 정밀 공작기계 분야에서 강력한 기반을 갖췄지만 고속 성장하는 아시아 시장에서 일본의 아성을 넘지 못했다. 점차 시장 장악력이 약해지자 DMG는 생존을 위해 모리세이키와의 합병을 택했다. 합병으로 탄생한 ‘DMG모리’는 세계 1위 공작기계 업체로 거듭났지만 공작기계 최강국이던 독일의 자존심은 큰 상처를 입었다.
이후 독일 대표 제조업체가 잇달아 해외 업체에 팔렸다. 2016년 세계 2위 산업 로봇 업체 쿠카가 중국 메이디그룹에 넘어간 데 이어 세계 최대 플라스틱 가공기계 업체 크라우스마파이가 중국화공그룹(CNCC)에 매각됐다. 이후 게트락(변속기), 보스로(디젤·전기기관차), 오스람(조명), 비스만(공조) 등 굵직한 독일 제조 기업의 주인이 바뀌었다. 하나같이 본업에서 강력한 시장 점유율을 유지하던 강소기업이었다. 하지만 장인정신과 폐쇄적 지배구조를 고집하던 미텔슈탄트 모델로는 글로벌 무한 경쟁에서 살아남지 못했다.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인공지능(AI) 시대 들어 미텔슈탄트 체제는 더 큰 약점을 드러냈다. 지난해 독일 컨설팅 업체 호르바트가 200개 미텔슈탄트를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 미텔슈탄트는 매출의 0.35%만 AI에 투자하겠다고 답했다. 독일 전체 기업(0.5%)의 70% 수준으로 세계 디지털 선도 기업(4.9%·보스턴컨설팅 자료) 대비 10분의 1에도 못 미친다.
AI 시대에 힘을 잃은 독일 강소기업의 매각은 계속되고 있다. 독일 자동화 설비 제조기업 만츠AG는 지난해 파산한 뒤 테슬라에 인수됐다. 타이어 분야 히든 챔피언인 레마팁톱, 핵심 차 부품사 레겐트파인바우 등도 매물로 나와 있다. 산업계 관계자는 “얼마 전까지 인수하는 걸 꿈도 못 꾸던 독일 기업이 매물로 쏟아지고 있다”며 “독일 현지에서 반(反)중국 정서가 있는 만큼 한국 기업이 독일 기술력을 확보할 기회가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황정환 기자 j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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