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2026년 경제성장전략의 한 축으로 ‘한국형 국부펀드’ 조성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초기 자본금은 20조원 규모로 시작해 운용수익과 배당 등을 통해 점진적으로 규모를 키워가는 구상이다. 공공기관 지분의 현물 출자 등도 재원 조달 방식으로 거론된다.국부펀드는 통화당국이 환율과 유동성을 방어하기 위해 보유하는 외환보유액과 달리 국가가 장기적인 수익과 자산 증식을 목적으로 일부 자금을 주식, 채권, 부동산, 인프라, 대체투자 등 다양한 자산에 운용하는 기금이다. 외환보유액은 위기 시 즉시 동원해야 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미국 국채처럼 신용도가 높고 환매가 쉬운 자산에 보수적으로 운용한다는 점에서 국부펀드와 운용 목적과 위험 허용도가 다르다.
다만 이번 계획은 아직 세부 기금 설계 방식이 공개되지 않았다. 처음 도입하는 제도일수록 ‘왜 만드는가’가 먼저 정리돼야 한다. 국부펀드의 목적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첫째, 저성장·고령화에 대비해 장기 수익률을 높여 미래 재정 여력을 축적하는 ‘저축형·연금형’ 역할이다. 캐나다와 호주처럼 명확한 장기 목표수익률과 독립적 지배구조를 두고 시장 수익을 추구하는 모델이 여기에 가깝다.
둘째, 싱가포르의 테마섹처럼 산업 경쟁력과 국가 전략을 뒷받침하는 ‘전략형’ 역할이다. 대규모 자본이 움직이면 시장은 그 행보를 신호로 읽고, 다른 기관투자가도 이를 참고한다. 즉 국부펀드는 단순한 투자자가 아니라 투자 기준과 흐름을 선도하는 주체가 되기 쉽다. 이런 영향력은 특정 산업의 성장 방향을 결정짓거나 신산업에 대한 민간 투자 심리를 유도하는 데도 큰 역할을 한다.
문제는 두 역할이 때때로 충돌한다는 점이다. 예컨대 노르웨이 정부 연기금은 윤리 기준에 따른 배제·매각 결정을 둘러싼 논란 속에서 의회가 윤리적 매각을 일시 중단하고 기준을 재검토하기로 했다. 이는 수익률, 시장 영향, 지정학적 쟁점이 얽힐 때 책임투자라는 본질적 원칙이 압력받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한국형 국부펀드는 출범 단계부터 실질 수익률이나 재정 기여 방식에서 장기 목표, 국내·해외 투자 비중과 투자 대상 범위, 그리고 정책 목표를 반영하는 경우 그 기준과 한계를 명문화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외환시장 안정과 충돌하지 않도록 자금 유출입 속도, 환헤지 원칙, 그리고 한국은행·연기금 등 기존 공적 운용주체와의 조정 메커니즘도 사전에 설계해야 한다.
또한 제도 설계의 핵심은 거버넌스다. 정치 일정과 단기 성과에 흔들리면 국부펀드는 국가의 장기 자산이 아니라 단기적 정책 수단으로 오해받기 쉽다. 국제적으로는 국제국부펀드포럼(IFSWF)의 ‘산티아고 원칙’이 투명성, 책임성, 투자·리스크 관리의 모범 기준으로 널리 활용된다. 최소한 이 원칙에 부합하도록 독립된 이사회, 명확한 위임운용 체계, 외부감사와 성과 평가, 이해상충 통제 장치를 마련해야 하며 동시에 운용 목표, 벤치마크, 리스크 한도, 의사결정 구조 정보도 공개해야 한다. 이런 구조적 장치는 국부펀드가 시장의 신뢰를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데 필수적이다.
결론적으로 한국형 국부펀드는 수익률 제고와 국가전략 지원 중 무엇을 우선할지 혹은 두 목표를 어떤 규칙으로 조정할지부터 사회적 합의를 형성해야 한다. 그 위에서 해외 선진 사례의 장점을 벤치마킹하되 한국의 재정구조와 자본시장 여건, 연기금을 비롯한 기존 공적 자산운용 체계와의 역할 분담까지 포함한 청사진을 제시해야 한다. 그래야 장기 국가 경쟁력을 뒷받침하는 지속 가능한 제도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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