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다우니 주연의 영화 ‘셜록 홈즈’에는 지하 권투클럽에서 홈즈와 거구의 권투 선수 간 격투 신이 나온다. 홈즈답게 시합 전에 머릿속으로 제압 시나리오를 아주 구체적으로 시뮬레이션한 뒤 그대로 재현해 완전히 KO시킨다. 수건을 던져 시선을 흩뜨리고 상대의 페인트성 잽을 막은 뒤 왼쪽 뺨, 이어서 양 귀때기를 한 번에 때려 놓고는 복부, 턱, 명치 연쇄 강타에 이어 횡격막 타격까지.이때 홈즈가 양 귀때기를 동시에 가격하면서 하는 말이 ‘디스컴버뷸레이트(discombobulate)’다. 얼이 완전히 빠진 상황, 쉽게 말하면 ‘멘붕 상태’다. 이 익숙지 않은 영어 단어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통해서 또 접했다. 트럼프는 미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베네수엘라의 독재자 니콜라스 마두로 체포 작전 때 ‘디스컴버뷸레이터(discombobularor)’라는 비밀 병기를 사용했다고 밝혔다.
러시아·중국제 로켓으로 무장한 베네수엘라군이 미군이 진압할 때 방아쇠를 눌렀지만 아무것도 작동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가 디스컴버뷸레이터 때문이라는 것이다. 체포 작전 때 수도 카라카스 일대의 정전 및 레이더·통신망 마비와 마두로 경호원들이 설명하기 힘든 음파의 영향으로 극심한 두통과 함께 피를 흘리며 쓰러져 움직일 수 없게 됐다는 보도는 이미 있었다. 트럼프의 인터뷰 발언으로 무기마저 작동 불능 상태였음이 추가로 알려진 것이다. 트럼프는 이 모든 마비 상황을 초래한 무기체계를 디스컴버뷸레이터로 통칭한 것으로 보인다.
19세기 말 미국의 포함(砲艦) 외교 상징은 쿠로후네(黑船·흑선)다. 1853~1854년 페리 제독이 이끌고 온 군함에 도쿠가와 막부는 ‘태평한 잠을 깨우는 증기선에 밤잠을 못 이루다’ 결국 두손 두발 들고 문을 열었다. 170여 년이 지난 지금 트럼프 시대의 쿠로후네는 디스컴버뷸레이터다. 기업을 국가 권력의 도구로 쓰는 포함 자본주의 양상도 되풀이되고 있다. 미국의 빅테크, 정유회사, 방산기업이 과거 동인도회사나 독일 크루프, 일본의 미쓰비시 등의 역할을 하고 있다. 역사는 반복된다. 현재를 푸는 힌트도 과거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윤성민 수석논설위원 smyoon@hankyung.com
관련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