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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손상 치료 ‘시간 싸움’ 끝내나…아주대, 새 분자 스위치 찾았다

입력 2026-01-26 10:16  


약물이나 독성 물질로 간이 급격히 망가질 때, 치료 효과가 '시간'에 묶이는 한계가 컸다. 대표 치료제로 쓰이는 N-아세틸시스테인(NAC)은 간손상 발생 12시간을 넘기면 효과가 크게 떨어진다. 응급실에 늦게 도착한 환자에게는 선택지가 사실상 없었다.

26일 아주대병원에 따르면 아주대병원 노화중개연구센터 박태준 교수팀은 이런 한계를 넘어설 단서를 찾았다.

종양혈액내과 최용원 교수, 인플라메이징 연구센터 김영화·최재호 교수와 함께 약물 유발 급성·아급성 간손상에서 'SLIT2/ROBO4 신호축'이 간세포를 보호하는 핵심 기전임을 규명했다. 치료 표적 가능성도 제시했다.

SLIT2는 몸속에서 세포 간 신호를 전달하는 단백질(분자 신호 물질)이다. 원래는 신경세포가 길을 찾을 때 방향을 잡아주는 유도 단백질로 알려졌지만, 최근에는 혈관·면역·염증 반응 조절에도 관여하는 것으로 연구가 이어지고 있다.

ROBO4는 세포 표면에 붙어 있는 ‘수용체 단백질’이다. 밖에서 오는 신호(단백질)를 받아들이는 문(리셉터) 역할을 한다.

약물 유발 간손상은 급성 간염의 약 10%, 급성 간부전의 최대 50%를 차지한다. 하지만 임상 현장에서는 원인 약물 중단과 NAC 투여가 사실상 표준처럼 쓰인다. 문제는 치료 시간이 짧다는 점이다.

연구팀은 아세트아미노펜(APAP), 티오아세트아미드(TAA), 담관결찰(BDL) 등 다양한 간손상 동물모델과 독성 간질환 환자 혈청을 분석해 SLIT2 단백질이 간손상 상황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추가 분석에서는 SLIT2의 작동 방식이 드러났다. SLIT2가 간세포의 ROBO4 수용체와 결합해 NF-κB 신호를 억제했다. 독성 대사 과정의 핵심 효소인 CYP2E1 발현도 낮췄다. 그 결과 산화스트레스(ROS)와 염증 반응이 함께 줄었다. 간세포가 버틸 수 있는 조건을 만든 셈이다.

연구팀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SLIT2 단백질 전체를 쓰는 방식의 한계를 고려해, ROBO4 결합 부위를 바탕으로 SLIT2 유래 펩타이드 'SP5'를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SP5는 염증을 억제하고 간세포 괴사를 줄였다. SLIT2 단백질과 비슷한 간 보호 효과를 보였다.

가장 주목할 만한 대목은 '투여 시점'이다. SLIT2 단백질과 SP5 펩타이드는 간손상 발생 24시간 이후에 투여해도 치료 효과를 상당 부분 유지했다. NAC가 효과를 잃는 시점 이후에도 간손상을 완화할 수 있다는 뜻이다. 흔히 발생하는 아세트아미노펜 독성 억제 가능성도 제기된다.

연구팀은 "독성 간손상에서 SLIT2/ROBO4 신호축이 산화스트레스와 염증을 동시에 조절하는 핵심 보호기전임을 규명한 데 의미가 있다"며 "간손상 이후에도 치료 효과를 보인다는 점에서 임상 적용 가능한 새로운 치료 패러다임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어 "ROBO4 특이적 펩타이드 전략은 단백질 치료의 한계를 보완할 수 있어, 향후 다양한 염증성 간질환으로 확장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번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Molecular Therapy'(IF 12)에 'SLIT2 as a Key Regulator and Therapeutic Target in Liver Injury'라는 제목으로 2026년 1월 온라인에 실렸다.
수원=정진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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