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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시사회 세 번, 건진 건 0편…'볼 게 없다'는 말조차 지친 영화판

입력 2026-01-26 16:29   수정 2026-01-26 18:03

아르떼에 일주일에 한 번 영화 리뷰를 싣는다. 한 주에 최소 한 번은 언론시사회에 참석해야 글을 쓸 수 있다.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면서 이 루틴에 변화가 생겼다. 극장 산업이 침체하고, OTT 서비스가 극장 콘텐츠의 인기를 압도하면서 언론시사회 참석하는 일이 줄었다. 코로나 전에는 일주일에 서너 번 정도 참석했다면 지금은 한 달에 서너 번 플러스알파 정도. OTT 드라마와 영화가 워낙 인기를 끌면서 극장용 영화를 보지 않더라도 리뷰를 작성하는 데는 별문제가 없다.

지난주는 좀 이례적이었다. 무려(!) 세 차례나 언론시사회에 참석했다. 1월 21일 <물의 연대기>를 시작으로, 1월 22일 <왕과 사는 남자>, 1월 23일 <직장상사 길들이기>를 차례로 관람했다. 쉬운 일이 아니었다. 오랜만에 3일 연속으로 극장을 찾아 영화를 봤더니 체력이 따라주지 않은 것은 차치하고, 리뷰로 쓸만한 영화가 없어 이번 주 돈벌이는 날릴 판이 되어 영 속이 쓰렸다. 이를 긍휼히 여긴 편집장님께서 그 사정을 글로 쓰는 게 어떠냐며 동아줄을 내려줘 이게 웬 떡이냐 하는 심정으로 덜컥 잡아 버렸다.



세 영화는 나름 호감 포인트가 있어, <물의 연대기>는 자기 목소리가 강한 배우 크리스틴 스튜어트의 연출 데뷔작이라는 점에서, <왕과 사는 남자>는 제작 소식이 뜸한 한국 영화의 신작이라는 점에서, <직장상사 길들이기>는 개인적으로 <이블데드> 시리즈와 <다크맨>을 애정하는 입장에서 샘 레이미라는 이름이 주는 신뢰의 면에서 극장을 향한 기대감을 갖게 했다. 장르도 서로 달라 예술영화와 사극과 고어로 이어지는 ‘시사의 연대기’는 극장 영화에 흥미를 잃어가는 나를 ’극장에 사는 남자’로 ‘길들이기’에 충분할 법한 라인업이었다.

들뜬 마음으로 시사회를 고대하면서 한편으로 불안감도 없지 않아, <물의 연대기>는 크리스틴 스튜어트가 연출 경험이 전무해 어떤 만듦새를 일궈낼지 가늠이 되지 않고, <왕과 사는 남자>는 장항준 감독의 성향이 워낙 대중 친화적이라 자기 영화를 만드는 대신 흥행으로 검증된 요소를 반영할 가능성이 높고, <직장상사 길들이기>의 샘 레이미는 언제 적 샘 레이미야, 새로운 면모를 기대하기에는 감독의 경력도, 영화의 장르도 너무 익숙한 데가 많아 잘해야 완성도가 ‘평타‘ 정도 나오지 않을까 하는 예상을 하게 만들었다.

결과적으로 불안감이 맞아떨어졌는데 구체적으로 밝혀 보자면, <물의 연대기>는 어려서 아버지에게 성적 학대를 당한 리디아(이모겐 푸츠)가 그에서 탈출하고자 자기 파괴를 거듭하다 작가가 되어 그제야 삶의 궤도에 안착한다는 사연이다. 삶을 위협하는 높은 파고에 맞서 물의 생명력으로 자신을 지켜내고 정체성을 유지하는 리디아의 여정에 곁을 두는 영화는 남들과는 다른 듯 과시적이다. 개성이 부각하는 것 같아도 전형적인 데가 있어 초보 감독의 야심과 한계가 수면을 가운데 두고 물 위와 물밑이 확연히 구분되는 특징이 있다.



<직장상사 길들이기>는 예고편을 보면서 무인도에 고립된 페덱스 직원의 <캐스트 어웨이>(2000)에, 겨울철 차 사고로 인질 처지가 된 소설가가 팬에게 보살핌을 가장한 학대를 당하는 <미저리>(1991)를 더해 샘 레이미의 고어 연출로 풀어가는 작품이란 생각이 들었다. 영화를 보고 나니 여기에 더해 작금의 트렌드를 반영한 모양새다. 회사의 갑질 남성 상사와 무인도에 표류한 여성 부하 직원이 로맨스를 가장해 화해했다 본색을 드러내 대립하고 결국, 여성은 복수에 성공하고 존경받는 여성으로 거듭난다. 더하고 덜 할 것도 없이 딱 그 정도다.

독특함이 결여된 개성의 작품이란 인상인데 1970년대 후반 연출 데뷔한 샘 레이미의 경력을 고려하면 그 이상을 기대하는 것도 과하다는 생각이다. 대중의 취향에 영입하면서도 자신이 잘할 수 있는 고어 묘사를 녹여내는 연출은 할리우드에서 잔뼈가 굵은 감독이기에 가능한 영역이라 크게 만족할 만한 영화는 아니어도 장면 장면 건질 것이 있어 일부러 시사회를 찾아간 시간과 노력이 아깝지는 않은 수준이었다. 단, <직장상사 길들이기>에 관한 나의 어쩌면 호의(?)적인 평가는 상대적일 수 있는데 전날 본 영화가 워낙 실망스러웠던 탓이다.



‘왕과 사는 남자‘, 도대체 이런 밋밋한 설명문 같은 제목으로 어떻게 관객의 호기심을 살 수 있을지 궁금해, 차라리 어떤 영화인지 확인하려고 극장을 찾게 만들 목적인가, 물론 그런 의도는 아니겠어도, 그에 현혹되었다가는 본전도 못 찾을 것 같은 이 사극은 한때 크게 흥행했던 같은 장르의 접근법과 이를 풀어가는 방식을 그대로 차용하여 대박, 적어도 중박 정도는 히트하고 싶다는 투명한 속내를 작품의 만듦새보다 우선한다. 수양대군(유지태)에게 왕위를 뺏긴 10대 나이의 왕 이홍위(박지훈)는 유배지에서 어떤 생활을 했을까, 기록되지 않은 역사를 상상한다.

아니, 상상 대신 '답습한다'가 더 정확한 표현에 가깝다. 유배지 마을 주민들과 처음엔 데면데면하다 마음을 나눈 후 결국, 역사의 비수에 찔려 비극적 운명을 맞이한다는 설정, 이의 핵심은 왕과 촌장 엄흥도(유해진) 간의 관계인데 둘 사이를 오가는 감정 교류가 웃음과 눈물로만 설명되어 굳이 왜 해당 역사적 사실이 필요했을까, 영화 자체보다 기획 의도를 더 깊이 들여다봐야 하는 닭이 먼저, 달걀 먼저의 쓸데없이 치열한 머릿속 논쟁을 하게 만든다. 확실한 하나는 한국 영화의 위기가 도무지 변할 생각이 없는 제작 마인드와 시스템에 결정적 원인이 있다는 사실이다.




영화들이 기대한 바에 미치지 못했어도 원고료만 받으면 상관없어하는 심술로 이 글을 쓴 건 아니고 영화의 위기 운운하는 수많은 어쩌고저쩌고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여기저기에서 만들어지고 있고 언젠가 다시 관심의 중심에 설 날이 올 거라 확신해서다. 영화는 위기가 아닌 적이 없었다. 매체의 존립을 위협받는 상황에서 돌파구를 마련해 새 시대를 맞이한 건 영화 역사가 증명한다. 위기와 새 시대의 사이의 간격이 짧기만을 바랄 뿐. 내 체력이 달리거나 말거나 서너 편 정도의 시사회를 매주 찾아갈 수 있는 날이 어서 도래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렇게 되면 내 원고료도 자연스럽게... 흠흠, 이상으로 글을 마친다.

허남웅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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