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적인 지휘자를 칭하는 두 개의 단어가 있다. ‘거장’을 강조하는 ‘마에스트로(maestro), 그리고 ‘장인’에 방점을 둔 ‘카펠마이스터(kapellmeister)’.
스위스 취리히에서 명지휘자 아르맹 조르당의 아들로 태어나 오스트리아 빈과 프랑스 파리를 오가며 화려한 경력을 쌓아온 지휘자 필리프 조르당(51)은 스스로 후자로 불리길 원한다. 그가 남긴 폭넓은 음반 목록을 보면 이유를 알 수 있다. 베토벤과 브람스 전곡 사이클을 비롯해 바그너 ‘니벨룽의 반지’, 베르디 ‘레퀴엠’, 차이콥스키와 라벨에 이르기까지 오페라와 교향악 사이를 경계 없이 넘나든다.
그는 독일 바이로이트 페스티벌,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극장, 런던 로열 오페라하우스, 베를린 필하모닉, 빈 필하모닉 등 세계 최정상급 무대를 이끌며 명성을 쌓았다. 최근까지 오스트리아 빈 슈타츠오퍼(국립 오페라극장), 빈 심포니 오케스트라 등을 이끈 조르당이 오는 29일(롯데콘서트홀)과 30일(예술의전당) 서울시립교향악단을 지휘한다. 그가 한국 악단과 호흡을 맞추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내한을 앞둔 그를 화상 인터뷰로 만났다.
“바렌보임은 리허설 사이 점심시간에도 지휘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질 만큼, 음악이 전부인 사람이었어요. 제게 아버지보다 더 큰 영향을 준 인물이죠.”
그는 포디엄에 막 서기 시작한 20대 때를 회상하며 이렇게 말했다. “바렌보임은 악보에 담긴 의도나 악상 전환 타이밍, 소리의 질감 등을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끊임없이 물으면서, 나의 어떤 말에도 절대 답을 알려주지 않았어요. 음악에 정답이란 없고, 나이가 들어도 지휘자로서 올바른 질문을 이어가고 해결책을 찾는 자세를 유지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배울 수 있었습니다.”
그가 콩쿠르에 매달리지 않고 20세에 독일 울름 시립극장 카펠마이스터(수석지휘자)로 뛰어들어 현장 경력을 쌓은 것도 아버지의 조언 덕분이었다.
“아버지는 ‘오페라로 지휘를 시작하라’고 하셨죠. 오페라는 오케스트라, 합창단, 무대 연출까지 통솔해야 하는 ‘종합 예술’입니다. 지휘자라면 오페라와 교향악 둘 다 능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한쪽만 고집한다면 지휘자로서 일의 절반만 하는 셈이죠.”
“두 작품은 ‘삶과 죽음’을 다루는 동시에 극도의 절망감, 상실감, 슬픔 속에서도 희망이 존재한다는 진리를 말하고 있습니다. 브루크너 작품을 지휘할 땐 있는 그대로의 음악을 방해하지 않고, 무언가 억지로 만들어내려 애쓰지 않는 게 중요합니다. 그저 음악을 믿어야 하죠.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도 한 줄기 빛은 존재한다는 걸 음악으로 전하고 싶어요.”
약 10년간 오스트리아에서 빈 심포니, 빈 슈타츠오퍼를 이끌었던 그는 내년 파리 국립오케스트라 수장으로 부임한다. 2009~2021년 파리 국립오페라 음악감독을 지낸 이후 6년 만의 귀환이다.
“음악으로 인생의 고통을 치유하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기여하고 싶어요. 빈 심포니에서 지휘자로서의 기초를, 빈 슈타츠오퍼에서 지휘자의 모든 감각을 확장했다면 프랑스에선 ‘국립이 어떻게 다른가’를 보여주는 데 집중하고 싶습니다.”
김수현 기자 ksoohy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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