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란은 혁명 직후부터 물경 40년 가까운 미국의 제재를 받아왔다. 2002년 핵개발 의혹이 불거지면서 유엔안보리 및 유럽연합 제재까지 삼중 제재를 감내해야 했다. 이미 경제 고립에 익숙하고 외부 압력에 대한 맷집이 강하다. 저항경제 시스템이 작동하는 나라다. 그렇다면 이번 사태는 왜 갑자기 불거진 것일까?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것일까? 요약하면 안보 위기, 외교 고립에 경제 실패가 동시에 겹쳐 촉발된 결과다. 3중 쓰나미가 동시에 닥친 것이다.
먼저 안보 위기다. 작년 6월 13일, 소위 ‘12일 전쟁’이라 불리는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이 있었다. 미국의 이란 핵시설 공습까지 이어졌다. 미국 본토에서 날아온 전략 폭격기가 벙커버스터 16기를 투척한 사건은 세계를 놀라게 했다. 이란은 이스라엘에 즉시 반격했고, 미국 공습에 대한 보복으로 카타르 알 우데이드 미군 주둔 공군기지로 미사일을 발사했다. 이쯤 되면 아마겟돈을 연상케 하는 전면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전쟁은 경제를 옥죈다. 생필품 가격은 치솟았고, 달러와 유로에 대한 집착도 심화됐다.
외교 고립도 심해졌다. 작년 9월 29일 유엔은 2015년 이란핵합의 이후 해제했던 ‘핵확산 관련’제재를 복원했다. 본래 핵합의 이후 10년이 지나면 이란에 대한 유엔 제재는 영구 종료될 예정이었다. 10년 기간 내에 이란이 합의를 어기면 제재가 복원되는 구조였고, 그 시한을 한 달도 남기지 않은 상황에서 스냅백(제재 복원), 즉 제재가 다시 부과됐다. 미국은 이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1기인 2018년부터 스냅백을 해왔던 차다. 작년 유엔안보리 결의안 2231호에 따라 영국, 프랑스, 독일 등 핵합의 유럽 주요3개국도 제재를 복원했다. 이란이 아무리 항변해도 소용없었다. 유럽마저 다시 제재에 나서자 이란 경제에 미치는 심리적 타격이 컸다. 한번 풀린 제재가 다시 시행되면 단순히 이전으로 돌아가는 정도가 아니다. 이란 국민들은 훨씬 더 큰 압박을 받았고, 그동안 미국을 설득해 재합의를 중재하던 유럽마저 돌아선 고립감이 커졌다.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유럽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를 도운 이란이 괘씸했을 것이다.
안보 위기와 외교 고립에 이어 체제의 부패와 경제 파탄도 결정적이었다. 시민들을 시위로 나서게 한 구체적 계기가 있었다. 바로 작년 10월 27일 이란 중앙은행의 '아얀데(Ayandeh) 은행'의 청산선언이었다. 2013년 친정권 인사가 세운 후 권력 측근들의 이익에 복무해 온 은행이었다. 고금리로 예금을 유치하고 친정권 인사들에 대한 방만한 대출을 일으켰다. 설립자 본인 회사에도 자유롭게 돈이 들어갔다. 두바이 몰 두 배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진 '이란몰 프로젝트'가 대표적이다. 결국 고금리 예금인수에 방만한 부실대출로 인한 50억달러 손실로, 국립 멜리 은행과 병합되는 절차를 거치게 된다. 부실은행을 국립 은행이 인수하면서 유관 채권이 물린 5개 시중 은행도 부도 위기에 몰렸다는 소문이 돌았다.
아얀데 은행 구조조정은 시장 신뢰 회복에 실패했고, 오히려 예금주와 바자르 상인들의 불안감을 폭증시켜 달러에 집착하게 만들었다. 화폐가치는 올 1월 6일 달러당 150만 리알까지 떨어졌다. 10년전 이란핵합의 당시 달러당 3만2000리알이었다. 물가 상승도 살인적이었다. 식료품의 경우 65%에 육박할만큼 올라 시민들의 생존권 위협까지 이어졌다. 지난 10월 말 시작된 은행 구조조정의 여파로 금융거래 결제시스템이 멈췄다. 거래 중단으로 상권은 직격탄을 맞았다. 바자르 상인 등 중소규모 소상공인들은 치명적 손해를 보았다.
이처럼 경제 금융 시스템은 이권의 수단으로 전락한 모습에 이란 국민들은 분노했다. 그간 역내에서 이란 혁명 수출의 전위 역할을 하던 친이란 무장집단들과 시리아 아사드 정권 붕괴의 충격도 컸다. 시리아에 깔아놓은 차관이나 유무상 지원액 300억달러, 베네수엘라 니콜라스 마두로 정권에게 받아야 할 미수금 20억달러를 고스란히 날렸다는 후문이다. 이란 국민들은 우유 한 통 사기 힘든 상황에서 그동안 이란이 시리아나 베네수엘라를 지원해왔다는 소식은 분노를 초래했다. 레바논 헤즈볼라, 가자 하마스, 예멘 후티 반군을 막대한 재원으로 도왔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이처럼 외교, 안보, 경제 위기에 그리고 심리적 자존감 상실까지 겹치자 시민들은 거리로 나섰다. 좌절과 분노의 수위만 보면 정권이 붕괴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다만 아직은 불확실하다. 시민의 분노는 역대 최고 수준으로 치솟았지만 체제 붕괴 임계점에는 이르지는 못했다는 평가가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이유는 세 가지다. 첫째 권력의 내부 균열이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체제가 무너지는 중요한 징후는 시위대를 막는 혁명수비대 및 군경 등이 시민 편을 드는 것이다. 아직 그런 징후가 없다. 둘째 저항하는 시민들을 영도할 상징적 인물이 없다. 대중의 분노를 하나로 묶어낼 저항의 구심력이 보이지 않으면, 체제를 무너뜨릴 힘을 모으기 힘들다. 셋째 체제 붕괴 이후를 상정하는 하나의 목표가 보이지 않는다. 희생을 감수하고서라도 얻고자 하는 목표가 뚜렷해야 하나 아직 불명확하다.
하지만 이미 이란 이슬람 신정 체제의 내구성은 시효를 다해가고 있다. 종교를 도구화하여 이권을 탐해 온 지배연합의 행태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현 체제의 강경노선이 지속되는 한 제재 해제는 불가능하기에 구조적인 경제난을 극복할 방도도 없다. 외교적으로도 고립무원 상황이다. 히잡 시위 이후 사회적 균열은 커졌고 최근 시민들의 경제적 박탈감을 해소할 뚜렷한 방안도 보이지 않는다. 권부 핵심 스스로 바뀌어나갈 조짐도 없다. 이번엔 잔혹한 탄압으로 요행히 시위를 다스릴 수 있을지 몰라도 앞으로는 그만큼 더 커진 저항의 힘을 마주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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