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달 반 동안 15kg을 감량했어요. 단순히 야위는 게 아니라 '피골이 상접한 상태'를 표현하고 싶었죠. 저만의 방식으로 단종을 풀어가고 싶었습니다."보이그룹 워너원 출신 배우 박지훈(28)이 영화 '왕과 사는 남자'로 스크린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웨이브 시리즈 '약한 영웅'을 기점으로 배우로서의 이미지를 확실히 각인시킨 그는 이번 영화를 위해 이를 악물었다.
오는 2월 4일 개봉하는 '왕과 사는 남자'는 조선 제6대 왕 단종 이홍위의 유배 시절을 스크린 전면에 내세운 작품이다. 단종은 12세의 나이에 왕위에 올랐으나, 숙부 수양대군에게 권좌를 빼앗긴 뒤 유배돼 17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한 비운의 군주로 역사에 기록돼 있다.
기존 사극들이 계유정난 전후의 정치적 격변과 권력 다툼에 초점을 맞췄다면, 이 영화는 왕좌에서 밀려난 이후의 시간, 한 인간으로 살아간 단종의 마지막 여정에 시선을 둔다. 이야기는 1457년, 궁을 떠나 강원도 영월 청령포로 향하는 어린 선왕의 발걸음에서 시작된다.
박지훈은 이홍위 역을 맡아 충신들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과 깊은 무력감 속에서 강원도 영월 광천골로 유배된 인물이 촌장 엄흥도와 마을 사람들과의 생활을 통해 점차 삶의 의지를 되찾아 가는 과정을 세심하고 입체적으로 표현했다.
박지훈은 작품을 마주한 소감에 대해 "매 순간 매 신마다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했다. 제 연기에 의심이 많은 편이라 제가 한 장면 장면은 아쉬운 부분도 있었다"며 "영화를 보면서는 너무 재밌기도 했고, 가슴 아프게 보기도 했다. 그런 상태였다"고 털어놨다.

실존 인물 단종을 연기한다는 사실은 그에게 큰 부담이었다. 그는 "제안을 받았을 때 솔직히 무서웠다. 제가 비운의 왕 단종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을까, 공허하고 가족들이 다 죽어나간 그 마음을 첫 영화, 첫 스크린에서 고스란히 표현해 낼 수 있을까 하는 무게감과 무서움이 컸다"고 속내를 드러냈다.
출연을 결심하게 된 계기는 장항준 감독과의 네 번째 미팅이었다. "감독님이 '단종은 너여야만 해, 지훈아'라고 하셨어요. 차를 타고 집에 가면서 창밖을 보는데 생각이 많아졌죠. 어쩌면 해볼 수도 있지 않을까, 그 마음을 잘 표현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자신감이 그때부터 들었습니다. 감독님을 믿고 결정했습니다."
장 감독이 끝까지 박지훈을 설득한 이유에 대해 그는 "'약한 영웅' 덕분이지 않을까 싶다. 그 눈빛을 보고 캐스팅해 주셨다고 하셨다"며 "무게감 있으면서도 결코 나약하지만은 않은 에너지, 감독님이 그런 저만의 에너지를 봐주신 것 같다"고 말했다.
영화에서 박지훈은 유해진과 깊은 호흡을 나눈다. 그는 유해진을 두고 "제가 볼 수 없는 위치의 선배님"이라며 "선배님이 주신 에너지를 제가 고스란히 전달할 수 있을까, 제가 하는 연기에 집중하실 수 있을까 하는 무서움이 있었다. 범접할 수 없다고 느꼈고 긴장을 많이 했다"고 고백했다.
유해진은 앞서 인터뷰에서 박지훈을 여러차례 칭찬해 놀라움을 자아냈다. '대선배'에게 사랑받는 비결을 묻자 그는 "그런 비결 같은 건 없다"며 웃었다. "계획하고 무조건 잘 보여야지 하기보다는 최대한 빈말 안 하고 자연스럽게 다가가려고 했어요. 저만의 스타일로 다가간 게 제일 컸던 것 같습니다."
현장에서 본 유해진은 어땠을까. "촬영장에선 말수가 적으신 편이고, 연기할때 집중력이 대단하세요. 촬영 대기 중이나 세팅 중에는 주변을 걸으시는 편이죠. 생각에 잠겨 있거나 대사를 읊조리는 모습을 많이 봤어요. 그럴 때는 최대한 감정신 있는 날보다는 라이트한 신 있는 날 다가가려고 했어요. 눈치껏 잘 행동했다고나 할까요? 하하."

두 사람을 가까워지게 만든 건 분장차에서 촬영지까지 함께 걷는 시간이었다. "왜 선배님 혼자 걸어가시지 싶어서 매니저님께 내려달라고 했어요. 군대는 언제 가니, 돈은 어떻게 관리하니 같은 정말 사소한 이야기부터 나눴습니다. 서로 하는 신 대사도 맞춰봤습니다."
박지훈은 유해진의 연기를 보며 여러 차례 놀랐다고 했다. 그는 "연기는 저렇게 하는 거구나 싶었다"며 "웃는 신에서도 너무 현실적인 웃음이라 저게 연기인지, 정말 선배님의 웃음인지 헷갈릴 정도였다"며 존경의 마음을 전했다.
박지훈은 두 달 반 동안 15kg을 감량해 놀라움을 자아냈다. 그는 "정말 간단하고 정말 어려웠는데 안 먹었다. 사과 한 조각 먹으면서 버텼다. 사람이 피폐해지더라. 단순히 야위는 게 아니라, 더 상위 표현을 내고 싶었다. '피골이 상접했다'는 상태를 표현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앞서 장항준 감독은 "박지훈이 다이어트 안 하면 이 작품이 제게 유작이 될 수도 있다고 했다"고 말해 화제가 됐다. 이에 대해 박지훈은 ""휴가 기간 동안 마음껏 놀고 먹던 상태라 감독님이 보셨을 때 이미지가 달라 보였을 것 같다. 그 믿음을 저버리지 않기 위해 다이어트를 했다"고 털어놨다.
촬영 당시 몸 상태는 극한에 가까웠다. "영화에 식사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먹고 싶다는 생각이 안 들었어요. 음식을 보기만 해도 바로 게워낼 것 같았거든요. 염분을 딱 먹었을 때만 맛있다는 생각이 들었죠. 에너지가 바닥이 났다는 걸 처음 느껴봤어요. 먹은 게 없으니까 숨 가쁘게 소리 지르다 보면 머리가 핑 돌았어요. 그래도 쓰러질 정도로 위험하진 않았고, 간간이 젤리 하나씩 먹으면서 버텼습니다."
단종을 표현하는 데 있어 그는 눈빛과 호흡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는 눈빛 연기를 해야지 하고 신경 쓰는 건 아니다. 대본에 충실해서 상황에 들어가려고 한다"며 "이 작품을 하면서 눈이 저만의 무기일 수도 있겠다고 느꼈다"고 귀띔했다.

유해진은 박지훈의 눈을 보고 절로 눈물 연기가 됐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그는 "좋게 봐주신 건 감사하지만 스스로 보면서 진짜 잘했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보면 다 어색하다. 왜 이렇게 했을까, 에너지를 조금 더 낼 수 없었을까 하는 의심을 계속한다"고 겸손히 답했다.
"제가 '약한 영웅'으로 널리알려진 건 사실입니다. 그때도 '터닝포인트'라 이야기 하며 이를 악물고 찍었으니까요. 그 작품으로 인해 차기작들이 결정되고 좋은 작품에 출연하게 됐죠. 저만의 욕심이지만 작품의 흥행을 떠나 이것저것 다 도전해 보고 싶습니다. 이런 흐름 자체를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왕과 사는 남자'를 통해 어떤 반응을 얻고 싶으냐는 질문에 박지훈은 이렇게 답했다. "일일 연속극을 보면 나쁜 캐릭터를 연기한 배우에게 '나쁘다'고 타박하잖아요. 이 영화에도 과몰입하셔서 저를 안됐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생겼으면 좋겠어요. '단종 아이가~ 아이고 고생했데이'라는 말이 나오면, 그게 최고의 승산 아닐까 싶습니다."
김예랑 한경닷컴 기자 yesr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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