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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 곳 없는데 나가라니"…다주택자 때리기에 세입자 '날벼락' [돈앤톡]

입력 2026-01-28 13:30   수정 2026-01-28 13:38


"세입자는 갈 곳이 없다고 하고, 부동산에서는 어떻게든 집을 팔자고 하네요."

서초구에 거주하는 40대 A씨는 최근 며칠 사이 고민이 깊어가고 있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다주택자에 대한 양도세 중과 유예는 없다'고 못을 박은 뒤 보유 주택 한 채를 정리하려고 마음먹었기 때문입니다. 매도 대상은 실거주 중인 서초구 아파트가 아니라 동대문구에 있는 아파트입니다.

문제는 매물을 내놓겠다고 하자마자 발생했습니다. 해당 주택에 살고 있던 세입자가 '계약갱신청구권을 쓰겠다'고 나섰기 때문입니다. A씨는 처음엔 난감했지만, 곧 세입자의 상황도 이해가 됐다고 합니다. 확인해보니 그 단지에서 전·월세로 나와 있는 매물이 단 한 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A씨는 "제가 봐도 주변에 이사 갈 집이 하나도 없더라"라며 "이사비를 주고 나가달라고 할 상황이 아니라고 판단했다"고 말했습니다. 결국 A씨는 매물을 거두고 '버티기'를 선택했습니다.

그런데 며칠 뒤, 부동산 중개업소에서 전화를 받았습니다. 중개업자는 "세입자가 갈 집은 어떻게든 알아보겠다고 하니, 다시 매도를 추진해보자"고 제안했습니다. 팔고 싶은 집주인, 나갈 수 없는 세입자, 그 사이에서 뛰는 중개업자까지, 기묘한 상황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이는 오는 5월 9일로 다주택자에 대한 양도세 중과 제도 유예 중단이 예고된 뒤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입니다. 정부의 의도는 명확합니다. 다주택자가 '투자용'으로 보유한 매물을 시장에 내놓게 함으로써 공급을 늘리고, 집값 안정을 도모하겠다는 것입니다.

정책의 시선은 '다주택자들의 세금 부담'에 꽂혀 있지만, 현장에서 속을 태우는 주체는 따로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바로 그 집에 살고 있던 임차인들입니다.

2024년 서울시 주거실태조사에 따르면, 서울은 집을 소유한 사람보다 '빌려 사는' 사람이 더 많은 도시입니다. 서울시의 자가 점유율은 44.1%, 임차 가구 비율은 53.4%입니다. 특히 월세(28.0%) 비중이 전세(25.4%)를 추월한 상황입니다. 서울과 경기, 인천을 포함한 수도권에서는 자가 점유율이 52.7%로 높아지지만, 임차 비율 역시 44.4%로 여전히 높은 비중을 차지합니다.

시장 변동의 충격이 임차인에게 직접적으로 전이될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다주택자 매도 압박은 곧 임차인들의 주거 불안으로 직결됩니다. 현금 보유력이 부족한 임차인들은 집주인의 매도 결정에 따라 주거 환경이 더 열악한 곳으로 밀려나거나, 급증한 임대료를 감당하며 '반전세' 등으로 내몰리는 구조입니다.

문제는 매도 압박이 가해지는 현시점의 시장 여건입니다. 전·월세 물량이 풍부하고 이사 선택지가 많은 국면이라면 매도 과정에서의 충격은 충분히 흡수되지만, 최근 수도권 전·월세 시장은 이미 '물건이 없는 상태'에 가깝습니다. '절벽'으로 불릴 만큼 신규 공급이 없는 상황이 예고돼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집주인의 매도 결정은 곧바로 임차인의 이사 문제로 번지고, 이사 문제는 다시 보증금 인상이나 월세 전환이라는 비용 부담으로 연결됩니다. 정책의 칼날이 매도자를 향하고 있지만, 실제 충격은 임차인이 먼저 떠안는 구조가 만들어지는 셈입니다.

여기에 토지거래허가제라는 변수까지 더해집니다. 계약 시점에 따라 '4개월 이내 입주' 요건을 맞출 수 있는 집은 매도가 가능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다주택자가 매물을 정리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습니다. 이에 따라 팔 수 있는 집에서는 임차인이 밀려나고, 팔 수 없는 집에서는 다주택자가 발이 묶이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집니다. 부동산 거래 현장에서 "대체 누구를 위한 규제냐"는 아우성이 나오는 까닭입니다.


전문가들은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유예 일몰이 집값을 안정시키는 효과는 제한적일 전망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습니다. 이미 문재인 정부 시기를 거치며 다주택자 포지션이 상당 부분 정리되면서, 현재 다주택자 비중 자체가 과거보다 낮아졌기 때문입니다.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주택을 소유한 개인 중 2건 이상 보유한 다주택자 비중은 202년 15.8%에서 2024년 14.9%로 낮아졌습니다.

김학렬 스마트튜브 부동산연구소장은 "지금 토허제로 묶여 있는 곳에서는 다주택자가 물리적으로 아예 팔 수 없는 경우가 많다"며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유예 제도를 제대로 시행하기 위해선 우선 토허제를 풀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토허제인 지역에서는 한 건이 거래될 때마다 임차 세대가 줄어드는 것으로 보면 된다. 기존 세입자들은 토허제 밖으로 밀려나게 되는 것"이라며 "결국 토허제로 지정된 구역에는 임차로도 못 사는 상황으로, 돈 있는 사람만 살 수 있는 곳이 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슬기 한경닷컴 기자 seulk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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