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이주비 대출 규제로 서울 재건축·재개발 현장 10곳 중 9곳(약 3만 가구)의 사업 차질이 불가피하다는 관측이 나왔다. 이주 지연으로 주택 공급이 늦어질 수 있는 만큼 민간 정비사업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서울시는 올해 이주를 앞둔 재건축·재개발 사업장 43곳 중 40곳이 작년 발표된 ‘6·27 대책’과 ‘10·15 대책’에 따라 이주비 대출 규제를 적용받는다고 27일 밝혔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 보증을 받아 이주비를 확보한 1개 사업장을 제외하면 91%인 39곳이 이주비 대출의 직접적인 영향권에 든다. 재개발 1만4000가구, 재건축 1만2000가구, 모아주택 4000가구, 소규모 재건축 800가구 등 총 3만1000여 가구가 대상이다.
정부는 지난해 가계부채 관리 차원에서 이주비 대출 한도를 1주택자 기준으로 담보인정비율(LTV) 40%(최대 6억원)로 강화했다. 다주택자는 이주비 대출을 한 푼도 받을 수 없다. 이주 지연으로 금융비용이 늘어나 사업성이 떨어지고 준공 시점도 밀려 주택 수요자의 공급 불안 심리를 부추길 가능성이 크다.
서울시는 이주비 대출을 일반 주택담보대출과 구분해 LTV 70%를 적용해야 한다고 정부에 촉구했다.
분양가 상승으로 불똥 튈수도…소규모 사업장은 좌초 위기
정부의 이주비 대출 규제가 서울 공급의 80%가량을 차지하는 도시정비사업을 강타하고 있다. 대출 장벽에 따른 이주 지연으로 주택 공급이 늦어질 뿐 아니라 사업비 인상분이 고스란히 분양가 상승 압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주 지연으로 착공과 분양, 준공 등 후속 절차가 줄줄이 늦춰질 수밖에 없게 됐다는 관측이 나온다. 1주택자는 최대 6억원까지 이주비 대출을 받을 수 있지만, 강남권 등 고가 지역은 전셋값이 6억원을 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다주택 조합원이 많은 사업장은 고충이 더욱 크다. 다주택 조합원 비율은 정비사업장에 따라 10~30%인 것으로 알려졌다.
자금 조달 창구가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조합은 시공사로부터 추가 이주비를 지원받을 수 있지만 금융 비용이 부담이다. 강남권 등 대규모 현장은 기본 이주비보다 약 1~2%포인트, 중소 사업장은 3~4%포인트 높은 금리를 감수해야 한다. 서울시에 따르면 올해 8개 사업장(5900가구)이 이런 이주 비용 증가 문제에 직면할 전망이다. 강남권의 A 사업장은 조합원당 3200만원의 이자 부담이 더 발생하는 것으로 추산됐다.
시공사의 재무 상태가 열악해 추가 이주비 조달이 불확실한 사업장도 여럿 있다. 주로 강북권 중소 규모 정비사업장이 여기에 해당한다. 총 23개 사업장(2만2100가구)은 이처럼 ‘이주 비용 증가+사업 지연’ 문제를 겪을 것으로 보인다. 추가 이주비 규모가 690억원으로 추정되는 관악구 B 재개발 조합은 시공사와 보증 협의를 진행 중이다. 그러나 계약서상 시공사의 보증은 임의 사항인 만큼 사업이 늦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평가가 나온다.
올해 이주를 앞둔 사업장 중에선 수요자 선호도가 높은 대단지가 많다. 강남구 개포주공5단지(1279가구), 양천구 신정4구역(1713가구), 동작구 노량진3구역(3897가구), 강서구 방화3구역(1413가구), 노원구 상계2구역(1986가구), 서대문구 북아현2구역(2862가구) 등이 대표적이다. 내년에도 강남구 개포주공6·7단지(2698가구), 영등포구 신길2구역(2550가구) 등 1만5400여 가구(26곳)가 이주를 계획 중이다. 이 사업장이 이주와 철거를 신속히 진행하면 착공과 분양 시점을 1년가량 앞당길 수 있어 부동산 시장 불안 해소 효과가 크다.
하지만 정부는 이주비 대출 규제 완화를 검토하지 않는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 주택 공급의 약 80%가 민간 재건축·재개발 프로젝트에서 나오는 만큼 정부가 조만간 내놓을 공급 대책 효과가 제한적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조합이 이주 비용 증가와 사업 지연 때문에 불어난 사업비를 분양가에 태울 공산이 큰 만큼 최종 주택 수요자도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
이인혁 기자 twopeopl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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