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적 불명’의 이방인이 아니다. 나는 현상이다”
국민 간식, 디저트 세상의 주인공. 인간들이 나를 그렇게 부른다. 내 이름은 ‘두쫀쿠’다. 두쫀쿠가 뭐냐고? 모르신다고? 만약 그렇다면 당신은 사회적 민감도(Social Sensitivity)가 너무 낮은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 해도 관계없다. 이 글을 읽는 순간 당신은 전문가가 될 것이 분명하다.
내 본명은 두바이쫀득쿠키다. 그게 뭐냐고 묻는다면 나는 더 이상 설명할 방법이 없다. 동내 카페부터 대형 마트나 편의점까지 나를 모시느라 난리다. 유행이 아니라 현상이다. 이게 나 두쫀쿠다. 불과 얼마 전까지 나도 비웃음을 당하던 시절이 있었다. “초콜릿도 쿠키도 아닌 것이, 도대체 정체가 뭐니?” “두바이 사람도 모르는 두바이 쿠키라고?!” 조롱이었다. 신기해했다. 하지만 나는 당당하다. 내가 어떻게 이 자리에 섰는지 들려주려 한다. 더임코치의 컨피던스 코칭이 본 나, 두쫀쿠 이야기다.
숫자가 증명하는 ‘두쫀쿠의 난(亂)’
내가 얼마나 대단한 존재인지 궁금한가? 단순한 유행이라고? 네버(Never)다. 내 데이터는 우주적이다. 당사자인 나도 놀란다. 편의점 업계의 수치를 보시라. A 편의점은 첫 출시 단 9시간 만에 초도 물량을 완판했다. 편의점 물건의 완판 소식을 들어 본 적이 있는가? 당시 편의점 앱 검색어 순위는 단연 1위였다. 단일 상품이 전체 검색량의 40% 이상을 차지할 정도였다. B 편의점은 더 놀랍다. 사전 예약 판매를 시작하자마자 단 9분 만에 매진됐다. 접속자가 몰려 앱 서버가 일시적으로 마비되기도 했다. 이 정도면 단순한 인기가 아니라 ‘현상’이다.
중고 거래 사이트에서도 나는 대세다. 내 원래 가격은 4,000원대다. 하지만 다시 팔리는 거래 가격은 1만원에서 2만원까지 치솟았다. 원래 중고 사이트는 원가보다 낮다. 중고의 의미가 그것이다. 그런데, 나 두쫀쿠는 중고가 아니다. 손을 타기는 했지만, 더 가치가 커졌다. 소위 두쿠런(두바이쫀득쿠키런)이다. 웃돈을 주고서라도 나를 소유하려 한다.
나에 대한 관심은 SNS에서 ‘장르’로 나타난다. 가히 폭발적이라는 표현이 맞겠다. 그러니 장르다. 가만히 두질 않는다. 인스타그램 기준으로 두쫀쿠와 두바이쫀득쿠키 해시태그는 18만여개에 달한다. 나, 두쫀쿠가 주인공이라는 이야기다. 내가 주인공인 영상물의 조회수는 10억 회를 넘겼다고 한다.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과장도 안 한다. 현상을 있는 그대로 보여줄 뿐이다. 나는 지금, 이 순간, 대한민국에서 가장 뜨거운 존재다. 이 압도적인 수치가 바로 내 자신감의 첫 번째 근거다. 더임코치의 컨피던스 코칭에 등장할 이유가 충분하다.
‘울퉁불퉁’해도 괜찮아, 멋쟁이 토마토처럼
내 외모를 다시 한번 보라. 매끈하고 고운 마카롱과는 거리가 멀다. 거친 피스타치오와 카다이프가 엉겨 붙어 있다. 그야말로 ‘울퉁불퉁’ 그 자체다. 더임코치의 컨피던스 코칭의 주인공인 된 ‘멋쟁이 토마토’가 생각났다. 나 두쫀쿠에게는 선배 격이다. 그들은 노래했다. “울퉁불퉁 멋진 몸매에~”라고. 남들에게는 불규칙한 표면일 뿐이다. 하지만 선배는 그것을 스스로 ‘멋진 몸매’라 명명했다. 존재를 그 자체로 인정하고 자부심으로 승화시킨 것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겉은 투박하고 속은 정돈되지 않은 듯 보인다. 하지만 나는 이 안에 상반된 매력을 공존시켰다. ‘바삭함’과 ‘쫀득함’의 낯선 결합이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부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질적인 결합을 나의 ‘강점’으로 선택했다. 누군가가 한 것이지만, 그런 나의 존재는 내 이름이 되었다. 상품이 되었다.
존재가 강점이 되고, 자신감이 된 것이다. 코칭은 여기서 시작된다. 존재를 인정하는 순간, 단점은 나를 상징하는 ‘특징’이 된다. 대체로 특징은 장점을 말한다. 나에게 그 특징은 곧 강력한 무기가 된 것이다. 그 자체다.
비하를 가치로 바꾼 ‘못난이 삼형제’의 지혜
사실 나는 처음엔 ‘괴식(怪食)’ 취급을 받았다. 당연하다. 국적 불명이다. 또 이것도 아닌 것이, 저것도 아니다. 이러니 괴이한 음식 그 자체였다. 나보다 먼저 더임코치의 컨피던스 코칭에 등장한 ‘못난이 삼형제’ 이야기와 같다. 그들은 자신을 ‘못난이’라고 대놓고 떠들었다. 비하의 언어를 가치 있는 상품성으로 바꿔 놓았다.
나 역시 “넌 도대체 무엇이냐? 도대체 무슨 맛이야?”라는 질문도 많이 받았다. 사실 말이 질문이지, 그건 의구심이었다. 의구심이 뭔가? 대체로 ‘인정하기 어려운 궁금증’이다. 약간의 두려움, 즉 경계심도 있다. 나는 그것을 '경험해 보지 못한 미지의 맛'이라는 멋진 단어를 동원했다. “비싸기만 하고 국적도 불분명하다”는 비판? 전혀 주눅 들지 않았다.
대신 내 안의 디테일에 집중했다. 볶은 카다이프의 사각거리는 식감, 고소한 피스타치오 스프레드의 조화. 이 디테일에서 사람들은 드디어 나를 발견하기 시작했다. 내 진가를 알아주기 시작한 것이다. 남들이 뭐라든 나는 나만의 ‘결’을 완성했다. 국적 불명의 맛은 SNS의 카메라 렌즈를 통과하자 치명적인 매력이 됐다. ‘못생긴 것이 아니라 못난이’라고 외쳤던 못난이 삼형제처럼, 나 또한 ‘이상한 음식이 아니라 특별한 경험’임을 증명했다. 내 안에 다른 나, 그걸 나는 발견하고 상품화했다.
"나를 마음껏 카피하세요", 오픈 소스의 자신감
내가 이토록 빠르게 세상을 점령한 비결이 또 있다. 역설적으로 ‘비밀이 없다는 것’이다. 보통 맛집은 레시피를 금지옥엽 숨긴다. 며느리도 모르는 비법이 있어야 권위가 생긴다고 믿는다. 나는 달랐다. 나의 레시피는 인터넷 바다에 낱낱이 공개되어 있다. 카다이프를 볶는 법부터 스프레드 비율까지. 나를 직접 만드는 ‘홈베이킹’ 영상이 넘쳐난다.
남인숙 작가는 시사저널에 쓴 글에서 이 지점을 정확히 짚었다. 내가 ‘닫힌 성’이 아니라 ‘열린 광장’이었기에 성공했다고. 누구나 나를 흉내 낼 수 있고, 재해석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개방형 컨피던스’다. 진짜 실력자는 자기 것을 빼앗길까 봐 전전긍긍하지 않는다. 오히려 내 노하우가 널리 퍼져 판이 커지는 것을 즐긴다. 오픈 소스가 되었을 때, 나는 하나의 문화가 됐다.
편의점은 대량 생산으로, 소형 카페는 장인 정신으로 나를 만든다. 누군가는 집에서 나를 만들며 유희를 즐긴다. 수만 개의 카피본은 나를 지우는 것이 아니다. 나라는 존재를 우주 끝까지 확장하는 엔진이 된다. 공유할 때, 브랜드는 대체 불가능한 ‘현상’이 된다. 품절이지만, 마음만 먹으면 구할 수 있다. 이것은 두쫀쿠가 현상이 된 이유다. 나는 나를 ‘품절’로 안달 나게 만들었고, ‘구함’으로 성취를 만들었다.
‘두쫀쿠의 변신’, 연결을 위한 몸부림
남인숙 작가 이야기를 더 인용해 본다. 남 작가는 나를 ‘세대가 공감할 수 있는 연결 소재’라 평했다. 젊은이들의 전유물인 줄 알았던 내가, 사실은 세대와 세대를 잇는 고리가 되고 있다는 뜻이다. 이것은 현상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97세 유튜버 할아버지도 만났다. 이구(29)할아버지 얘기다. 손녀로부터 두쫀쿠를 선물 받은 할아버지가 나를 야무지게 베어 물었다. 손녀가 "얼마쯤 할 것 같은가요?" 물었다. 할아버지는 "7,000원 값어치는 하겠다"고 말했다. 두쫀쿠를 처음 만난 할아버지는 그렇게 정확하게 맞췄다. 대통령도 만났다. 1월 23일 울산을 찾은 대통령, 한 소년이 나를 대통령에게 선물했다. 대통령도 내 존재를 알았다.
나는 비로소 내 존재의 우주적 가치를 느꼈다. 나는 단순한 간식이 아니다.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세상과의 접점이다. 누군가에게는 “나도 요즘 유행하는 거 먹어봤어”라는 용기다. 나는 나의 존재 가치를 간식이 아니라, 세상을 연결하는 매개체로 확대시켰다. 내가 가진 잠재력을 발견한 것이다. 가능성을 현실로 만든 것이다. 더임코치의 컨피던스 코칭이 하는 일이 바로 그것이다.
두쫀쿠에게 한국인의 ‘탐구 자존감’이란?
누구는 ‘유행의 산물’이라 말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코칭의 산물이다. 두쫀쿠, 나의 코칭은 나를 이렇게 이끌었다. 내가 집중한 것이 한국인의 뜨거운 기질이다. 한국인의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 끝을 보는 탐구심 말이다.
코칭에서 가장 중요한 에너지는 ‘스스로에 대한 호기심’이다. 궁금해야 존재를 발견하고, 자신감을 만든다. 한국인들은 고맙게도 낯선 나를 보고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이게 왜 인기?”라는 의문을 “나도 확인해 봐야겠다”는 행동으로 옮겼다. 이것은 모방이 아니다. 세상의 흐름에 발맞추는 능동적인 자아의 표현이다.
트렌드 전문가 김난도 교수는 이런 현상을 ‘디토(Ditto) 소비’라 명명했다. 자신만의 가치관을 바탕으로 특정 인물이나 콘텐츠의 제안을 따르는 경향이다. 하지만 한국인의 ‘디토’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여기에 ‘체크슈머(Checksumer)’적 기질이 더해진다. 제품의 성분과 후기를 꼼꼼히 따지고 확인해야 직성이 풀리는 기질이다.
한국 소비자에게는 FOBO(Fear Of Better Option)이자 FOMO(Fear Of Missing Out), 두 가지가 다 있다. 더 좋은 옵션이 있을지 모르지만 일단 지른다. 놓치고 싶지 않아 일단 지른다. 이러니 두쫀쿠, 내가 성공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 수밖에 없다.
나는 한국인의 이 예리한 민감성을 믿었다. 맛의 미세한 차이를 잡아내는 그들의 미각, 더 맛있는 조합을 찾아내는 집요한 탐구심. 나는 그 역동적인 에너지에 정확히 올라탔다. 한국인들은 나를 단순히 먹기만 하지 않는다. 더 쫀득하게, 더 고소하게 변주하며 나를 ‘연구’한다. 그들에게 나는 하나의 ‘과제’이자 ‘성취’였다. 나를 구하고, 맛보고, 품평하는 과정 자체가 자신의 안목을 증명하는 ‘게임’이 된 셈이다.
내가 국적 불명의 ‘괴식(怪食)’에서 ‘완소템’이 된 배경이다. 끊임없는 깨우침과 성찰은 나를 이렇게 완성했다. 대통령이 "실제로 두바이에서 온 거냐?" 물었다. 참모가 "레시피만 두바이고 한국에서 만들었다"고 답했다. 이렇게 난 ‘이방인’에서 대통령이 인정한 ‘국민 간식’이 되었다. 나의 완성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두쫀쿠와 두쫀쿠 현상은 코칭의 산물이다
사람들은 묻는다. “너는 커서 뭐가 될 거니?” 나는 대답한다. 나는 이미 완성된 듯 보이지만, 나의 완성은 ‘기쁨을 주는 존재’로 진행형이다. 그래서 두쫀쿠인 나도 그 끝을 잘 모르겠다. 혹시 아는가? 누군가가 나를 북쪽에 보낸다면 나는 남북화해의 ‘밀알’도 될 수 있다.
두쫀쿠 현상은 요행이 아니다. 나의 존재를 강점으로 만들고, 또 가능성을 현실화했다. 관점을 바꾸니 더 큰 세상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여러분도 자신에게 물어보시라. 당신 안의 ‘카다이프’는 무엇인가? 숨겨둔 당신만의 사각거리는 식감은 무엇인가? 그것을 꺼내어 초콜릿으로 감싸고 세상에 내놓아라. 내가 그랬던 것처럼, 당신도 충분히 멋쟁이가 될 수 있다.
더임코치의 컨피던스 코칭은 그래서 두쫀쿠이자, 두쫀쿠 현상이다.
<한경닷컴 The Lifeist> 더임코치/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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