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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흰색은 무지개"…'길' 만들던 예술 인생, 마침내 끝에 닿다

입력 2026-01-28 17:08   수정 2026-01-28 17:09


단색화 거장 정상화 화백이 28일 별세했다. 향년 93세.

고인은 한국 현대미술과 단색화를 대표하는 작가 중 한 명이다. 그를 대표하는 작품은 ‘격자형 추상회화’ 연작. 고령토를 물에 섞어 여러 번 캔버스에 얇게 바른 뒤 나무 끌로 체중을 실어 눌러가며 캔버스를 접고, 이렇게 만든 균열을 아크릴 물감으로 메웠다가 다시 뜯어내는 작업이다. 작가는 이를 ‘길’을 만드는 작업이라 불렀다. 이 연작은 미술계의 높은 평가를 받으며 리움미술관과 일본 도쿄현대미술관, 아랍에미리트 구겐하임 아부다비 등 국내외 유수 미술관에 소장돼 있다.

1932년 경북 영덕에서 태어난 고인은 중학교 2학년 때 미술의 길에 들어섰다. “수의과 대학에 원서를 넣었다”고 거짓말을 하고 서울대 미대에 지원해 인천사범학교 미술 선생이 됐다. 격자형 추상회화의 아이디어를 처음 얻은 건 1967년. 상파울루 비엔날레 출품을 위해 브라질에 들렀다가 인부들이 돌을 네모나게 잘라 길을 만드는 모습에서 ‘인간의 힘’을 느꼈다. 그는 생전 “어릴 적 어머니가 한복을 지으며 천에 주름을 잡고, 밥을 지으며 도마 위 무를 가지런히 자르던 모습과 겹쳐 보였다”고 설명했다.

1960년대 후반 아시아 추상미술의 첨단을 걷던 일본 고베로 건너간 그는 1970년대 초반 ‘격자 회화’ 양식을 확립했다. 처음에는 ‘벽지 그림’이라는 비판을 받았지만, 눈 밝은 이들은 그의 진가를 알아봤다. 이우환은 “세계 어디를 다녀도 이런 장인 정신을 갖고 이렇게 어려운 작업을 하는 작가는 보지 못했다”고 감탄했다. 그의 작품 속 흰색을 두고 한 일본 평론가는 “정상화의 흰색은 무지개”라고 평했다. 멀리서 보면 다 똑같은 흰색 같지만, 가까이서 보면 회색 등 무채색뿐 아니라 하늘색과 분홍색 등 다양한 색이 보이는 오묘한 빛깔을 띠고 있다는 얘기였다.


이후 정 화백은 평생을 격자형 추상회화 제작에 매진했다. 작품 하나를 완성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6개월에서 1년. 온몸을 써서 체중을 실어 완성하는 작품이기에 체력 소모가 컸고, 나이가 들수록 작업은 더 어려워졌다. “이게 무슨 그림이냐, 벽지 아니냐”는 비아냥을 듣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한눈팔지 않고 자신의 길을 갔다. 2023년 91세의 그는 갤러리현대에서 열린 개인전에서 기자들과 만나 이렇게 말했다. “그렇게 똑같은 일을 반복하는 게 참 바보스럽죠. 하지만 그 자체가 제 작품입니다. 사람이 사는 것도 결국 반복입니다. 다르게 보면 격자를 구획한 선은 내 실핏줄이고, 작품은 곧 내 심장이 뛰고 철렁대는 모습이지요.”

그러는 사이 시장의 평가가 뒤늦게 따라왔다. 2000년대 초중반 수백만원대였던 그의 작품 가격은 급등해 지금은 수억~십수억원에 거래된다. 한국 현대미술을 상징하는 작가로서 국립현대미술관 개인전(2021년)을 열기도 했다. 그는 “시간이 지나면 누가 진짜고 누가 가짜인지 가려진다”고 말했다.

2023년 스위스 큐레이터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그림 그리는 화가로서 하고 싶은 것은 다 했어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지금 이 순간에도 ‘조금 더 잘해야 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어요. 인간의 생각에는 만족이란 있을 수 없거든요. 그러니 완성이란 것도 있을 수 없어요. 작가의 일은 하나의 세계관을 만들어내는 거니까요. 그래서 예술이란 끝없는 것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끝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끝없는 것을 한다는 것.” 빈소는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 6호실, 발인은 30일이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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