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0석 규모의 객석을 바라보며 무대 위에서 시를 읽는 경험은 공간의 성격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이날 흘러나온 음악은 오페라 ‘라보엠’에서 주인공들이 사랑을 속삭이는 장면을 담은 곡이었다. 40여 분간 이어진 고요한 독서 시간. 뒤이어 고명재 시인이 등장해 자신의 시와 창작 경험을 들려줬다.
최근 대형 공연장을 중심으로 ‘읽고, 쓰고, 나누는’ 프로그램이 주목받고 있다. 영상 중심의 콘텐츠 환경 속에서 오히려 텍스트에 집중하는 경험을 ‘멋’으로 인식하는 이른바 ‘텍스트 힙(Text Hip)’ 트렌드를 반영한 기획이다.
지난해 신설된 GS아트센터의 참여형 프로그램 ‘클럽라테(라운드테이블)’의 시 클래스도 이런 흐름을 보여주는 사례다. 이 프로그램은 배움·창작·대화를 결합한 형식으로, 공연장을 찾은 이들을 관객이 아닌 ‘참여자’로 받아들인다. GS아트센터는 지난 늦가을부터 연말까지 시인 4명과 함께 ‘시 클래스’를 진행했다. 참여자들은 사전에 김복희 시인의 <희망은 사랑을 한다>와 유수연 시인의 <사랑하고 선량하게 잦아드네> 등 4권을 읽고 공연장에 모여 시인과 대화하고 글을 쓰며 서로의 문장을 나눴다. 올해 9월에도 GS아트센터는 시 클래스를 포함한 클럽라테를 진행할 계획이다.
문화기획자들은 이런 흐름을 단순한 ‘독서 열풍’으로만 보지 않는다. 빠르게 소비되는 이미지와 영상에 대한 피로감, 깊이 있는 관계와 사유에 대한 갈증이 맞물린 결과라는 분석이다. 소음이 넘쳐나는 환경에서 느리게 연결되고 싶은 욕구가, 소설보다 비교적 분량이 짧은 시를 통해 더 뚜렷하게 드러난다는 해석도 나온다.
이해원 기자 um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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