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는 3월 최대 60조원 규모 ‘캐나다 초계 잠수함 프로젝트(CPSP)’의 최종 제안서 제출을 앞두고 한국과 독일이 산업·외교 역량을 총동원한 승부수를 던지고 있다.
한국에서는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과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 등 주요 기업 총수와 정부 고위 인사가 동시에 움직이는 이례적인 총력전이 벌어지고 있다.
CPSP에는 한화오션과 HD현대중공업이 컨소시엄을 구성해 ‘원팀’으로 참여하고 있다. CPSP는 3000톤급 디젤 잠수함 8~12척을 도입하는 사업이다. 폴란드 잠수함 사업의 약 5배에 달하는 초대형 프로젝트다.
이번 컨소시엄에서는 수상함 분야를 HD현대중공업이, 잠수함 분야를 한화오션이 주관·지원하는 분담 구조를 갖췄다. 두 회사는 독일 티센크루프마린시스템스(TKMS)와 함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돼 경쟁을 벌이고 있다.
독일 TKMS는 재래식 추진 잠수함 분야에서 세계 최대 공급자로 꼽힌다. TKMS는 노르웨이와 공동 개발 중인 212CD 잠수함을 내세웠다. TKMS는 1980~90년대 한국의 1200톤급 209급 장보고-I 잠수함 도입 당시 핵심 건조 기술을 전수한 독일 하데베(HDW) 조선소를 2005년 인수합병했다.

현재 HDW는 TKMS의 자회사로 한국 잠수함 건조 기술의 출발점으로 평가된다. 당시 한국은 설계도는커녕 특수강 용접 기술조차 부족한 처지였다. 하지만 34년이 지난 지금 한국은 독자 기술로 개발한 3000톤급 장보고-III(KSS-III) 배치-II 모델을 앞세워 독일의 최신형 ‘Type 212CD’와 정면으로 맞붙고 있다.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에 따르면 한국은 최근 5년 무기 수출 성장률에서 세계 최고 수준을 기록하며, 재래식 잠수함 시장의 전통 강자인 독일의 점유율을 가파르게 추격하고 있다.
양국의 승부는 이미 전차 시장에서 한 차례 엇갈렸다. 2022년 폴란드 전차 사업에서는 한국 K2가 독일 레오파르트2의 느린 생산 공정을 파고들어 대승을 거뒀지만 2023년 노르웨이에서는 성능 우위에도 불구하고 ‘나토 안보 연대’라는 지정학적 벽에 막혀 독일에 패배했다.
“무기만 잘 만든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라는 뼈아픈 교훈을 얻은 한국이 이번 캐나다 수주전에서는 완전히 다른 전략을 들고나온 이유다.

이번 수주전의 핵심은 단연 ‘잠항 지속 능력’이다. 한국은 세계 최초로 수소연료전지(AIP)와 리튬이온배터리를 결합한 하이브리드 체계를 제안했다. 기존 납축전지보다 잠항 시간을 3배 늘린 이 기술은 얼음으로 덮인 북극해에서 부상 없이 작전해야 하는 캐나다 해군이 혹할 강점으로 평가된다.
반면 독일 TKMS는 검증된 연료전지 AIP 기술과 노르웨이 콩스버그의 ‘ORCCA’ 전투체계를 결합해 신뢰성을 강조한다. 나토 표준 무장과의 완벽한 호환성은 한국이 넘어야 할 가장 높은 산이다.
콩스버그의 ‘ORCCA’ 전투체계는 나토 표준 무장과 완벽히 호환된다. 이는 미군 및 연맹국과의 상호운용성을 중시하는 캐나다 해군의 보수적 요구를 공략하는 핵심 카드다.
또한 노르웨이는 캐나다와 흡사한 북극해 작전 환경을 가진 국가다. 독일은 노르웨이라는 검증된 파트너를 전면에 내세워 북극권 운용 신뢰성을 입증하려 한다.
다만 업계에서는 북극해라는 특수 환경에서는 한국의 장기 잠항 능력이 결정적 우위를 점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독일의 AIP(공기불요추진) 기술이 정숙성 면에서 세계 최고 수준으로 알려졌지만 독일 잠수함은 기본적으로 수심이 얕은 발트해 작전에 최적화돼 있다.
반면 캐나다가 원하는 북극해는 거대한 얼음 밑을 수천 km씩 이동해야 한다. 이때는 단순히 조용한 것보다 한 번 충전으로 얼마나 오래, 강력한 출력으로 버티느냐가 생존을 가른다. 리튬배터리를 장착한 한국의 KSS-III는 기존 모델보다 잠항 시간을 3배 늘렸고 이는 북극해 환경에서 독일제보다 훨씬 유연한 전술적 우위를 제공한다.

주목할 점은 캐나다의 평가 구조다. 잠수함 자체 성능 배점은 20%에 불과하다. 대신 유지·보수(MRO)와 현지 경제 기여도가 무려 65%를 차지한다. 잠수함을 얼마나 잘 만드느냐보다 누가 캐나다의 산업 생태계를 더 풍요롭게 할 것인가가 중요하다. 이에 한국은 역대급 ‘원팀’ 카드를 던졌다.
지난 1월 26일(현지 시간) 강훈식 대통령비서실장을 필두로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 등 한국 산업계의 거물들이 오타와로 급파됐다.
제안서 내용도 파격적이다. 잠수함 MRO 인프라를 위한 현지 철강 공급망 구축, 현대차의 수소·AI 기술이전, 그리고 수조원 규모의 캐나다산 원유 장기 수입까지 묶은 ‘범정부 패키지 딜’를 제시했다. 한화오션은 캐나다 최대 철강사 알고마스틸과 손을 잡았고 한화시스템은 위성통신 협력을 약속했다.
독일 역시 만만치 않다. 라인메탈이 최근 뤼르센의 군함사업부(NVL)를 인수하며 지상과 해상을 아우르는 종합 방산 공룡으로 거듭난 데다 유럽연합(EU)의 금융지원 혜택인 ‘세이프(SAFE, Security Action For Europe)’ 프로그램을 무기로 캐나다를 공략하고 있다.
이번 수주전의 최대 암초는 기술력이 아닌 지정학적 장벽이라는 말도 나온다. 독일은 EU가 주도하는 ‘유럽방위산업프로그램(EDIP)’과 ‘유럽방위산업전략(EDIS)’을 방패 삼아 ‘바이 유러피안(유럽산 무기 우선 구매)’ 논리를 펼치고 있다.
특히 캐나다가 2025년 12월 비유럽 국가 최초로 EU의 무기 공동구매 프로그램인 ‘세이프’ 참여 계약을 마무리한 점이 치명적이다. 세이프는 EU 집행위가 무기를 공동구매 하는 회원국에 낮은 금리로 대출금을 지원하는 제도로 EU 회원국들의 재무장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마련됐다. 자금 집행은 올해부터 이뤄진다.

한국이 이번 캐나다 잠수함 수주전에 총력을 기울이는 배경에는 과거의 연이은 실패 경험이 있다. 2024년 호주 호위함 사업에서는 국내 업체 간 소송전으로 분열하며 독일·일본에 밀렸고 2025년 폴란드 오르카 사업에서는 현지 작전 환경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해 고배를 마셨다.
이번에는 접근 방식이 달라졌다. 업체 간 소송을 중단하고 정부와 기업이 하나로 움직이는 ‘K-방산 원팀’ 체제를 구축했다. 캐나다의 평가 기준과 산업 정책을 전제로 한 맞춤형 전략을 준비했다는 점에서 이전과는 결이 다르다는 평가가 나온다.
독일 역시 사활을 걸었다. 보리스 피스토리우스 독일 국방장관은 최근 오타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캐나다 봄바디어 항공기 18대 이상을 구매해 조기경보통제기 ‘글로벌아이(GlobalEye)’ 등으로 개조하겠다는 제안을 내놨다. 잠수함 수주를 대가로 캐나다 항공산업 전반을 끌어올리겠다는 파격적인 조건이다.
피스토리우스 장관은 한국을 직접 거론하며 기술 경쟁력도 강조했다. 그는 “한국도 훌륭한(excellent) 잠수함을 건조하지만 우리가 더 나은(better) 잠수함을 만든다”며 “독일의 Type 212CD는 한국이 제공할 수 없는 독보적인 스텔스 특성을 갖췄고 식량이 바닥날 때까지 수중 잠항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독일은 항공기 구매 외에도 자국 함정 전투체계(CMS 330)를 캐나다산으로 교체하고 에너지·우주·인공지능(AI) 분야 협력까지 포함한 전방위 패키지를 제시했다.
이에 맞서 한국은 속도와 구조적 결합을 앞세웠다. 한화오션은 캐나다 측에 2035년까지 장보고-III(KSS-III) 기반 잠수함 4척을 인도하겠다는 구체적인 납기 로드맵을 제시했다. 독일보다 2~3년 빠른 일정이다.
국내 잠수함 건조 역량과 생산 여력을 근거로 현실성을 강조했다. 한국의 제안은 조기 납기와 안정적인 건조 능력, 현지 MRO 시설 투자를 핵심으로 한다. 수소 생태계 구축과 AI 기반 MRO 센터 설립 등 중장기 산업 결합 전략이다. 한마디로 캐나다를 북미 방산·정비 허브로 키우겠다는 구상이다.
방산업계 관계자는 “구체적인 인도 시점을 명시한 것은 생산 일정이 포화된 독일이 따라잡기 어려운 카드”라며 “캐나다가 단기 성과보다 장기적인 방위 역량의 연속성을 중시한다면 한국이 유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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