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나라의 종이 재활용률은 지난해 약 89%를 기록했다. 전 세계적으로도 가장 높은 수준이다. 수거 인프라와 제지 산업의 기술력, 일상생활에서 분리배출을 실천해 온 시민들의 참여 등 삼박자가 절묘하게 맞아 이뤄낸 결과다. 이 때문에 글로벌 시장에선 한국의 종이 재활용 시스템을 모범 사례로 꼽는다.
환경 전문가들은 이미 높은 종이 재활용률을 더 끌어올리는 것만큼 중요한 게 재활용의 질을 높이는 것이라 강조한다. 특히 가장 재활용 가치가 높은 우유팩 등 종이팩이 잘못된 방식으로 배출하면 일반쓰레기만도 못한 취급을 받게 된다. 재생종이 등을 만드는 과정에서 더 큰 비용이 들거나 질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다시 종이가 다시 종이 자원으로 돌아오는 비율을 높이고 자원 절감과 사회적 비용을 낮추기 위해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바로 분리수거 과정에서 정확한 배출을 해야 한다는 것. 국내 자원순환 전문가로 알려진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장의 도움을 받아 28일 직접 살고 있는 아파트 단지에서 종이 분리수거를 진행해 봤다.
아침에 나온 택배 상자. 무심코 접어 버릴 뻔 했지만, 테이프를 떼는 데만 2~3분이 걸렸다. 점심 후 버려진 도시락 용기는 종이 재질이었지만 음식물이 묻어 있어 물로 씻은 뒤 말려 버려야 했다. 종이컵도 종이상자에 함께 넣어 버릴 뻔했다.

그냥 버리면 편리했을 종이 재질 제품들이었지만 다시 종이로 태어날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다소 번거로운 분류 과정이 필요했다. 평소엔 아무렇지 않게 버렸을 종이 제품들을 서울시 종이류 분리배출 요령과 환경부 분리배출 가이드에 따라 분리하려니 “이건 어떻게 버려야 하지?”라는 질문이 계속해 나왔다.

비닐 테이프를 제거하고 다시 버리려던 찰나, 또 한 가지 그동안 놓쳐왔던 부분이 보였다. 바로 운송장이었다. 운송장 역시 그대로 붙여진 채로 배출해선 안 되는 물질이다. 홍 소장은 “택배 박스에 붙어있는 운송장은 겉으로 보기엔 종이 같지만 감열 프린터용 라벨지로 재활용이 불가능하다”며 “반드시 분리해 일반 쓰레기(종량제 봉투)로 버려야 한다”고 설명했다. 감열지는 코팅된 종이이거나 비닐 재질인 경우가 많고, 열에 반응하는 특수 약품 처리(BPA, BPS 등)가 되어 있어 종이 재활용 공정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또 다른 박스에 들어있던 각종 영수증도 마찬가지였다. 평소 일반 종이처럼 찢어지고 불에 타기 때문에 아무렇지 않게 종이라고 생각해 함께 모아 버리곤 했다. 하지만 이 역시 운송장과 마찬가지로 그대로 버리면 안 되는 감열지였다. 영수증 종이 표면 역시 인쇄 잉크 등이 묻어있어 재활용 공정에서 펄프를 추출하기 어렵고 다른 종이까지 오염시킬 수 있다. 일반 쓰레기로 종량제 봉투에 담아 배출해야 하는데 개인 정보 유출을 막기 위해 잘게 찢거나 파쇄해 버려야 한다.

어릴 때부터 우유 팩은 물로 잘 씻어 말려 배출한다고 배웠지만 바쁜 일상에서 이렇게 하긴 쉽지 않다. “그냥 물로 잘 헹궈 버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말한 홍 소장의 조언대로 잘 헹궈 말린 뒤 분리수거장으로 향했다. 우유 팩에 붙어있는 빨대오 포장비닐도 제거했다. 비닐이나 플라스틱 빨대가 섞여 들어가면 재생종이를 제조하는 과정에 또다시 걸러내야 해 인력과 비용이 추가되기 때문이다.
종이 팩 분리 과정에서 또 하나 놓치고 있었던 게 있었다. 바로 멸균 팩이었다. 이날 살펴보니 겉으로 보기엔 멸균 팩과 일반 우유팩을 바로 구분하기 어려웠다. 찾는 방법은 두 가지. 멸균 팩엔 용기 겉면에 ‘멸균 팩’과 ‘재활용 어려움’이라고 적혀있다. 하지만 글자가 너무 작아 일일이 확인하기 어려웠다.

더 쉽게 찾을 수 있는 방법은 바로 팩을 가위로 잘라 펼치는 것이다. 일반적인 우유 팩은 내부가 폴리에틸렌으로만 코팅돼 있어 하얗다. 반면 멸균 팩은 내부를 알루미늄으로 한 번 더 코팅해 회색빛을 띤다. 일반 종이팩(살균 팩)과 재활용 공정이 다르기 때문에 내부 색깔로 멸균 팩을 분리해야 한다.

홍 소장은 “일반 종이류와 섞이지 않도록 전용 수거함에 배출해야 한다”고 했다. 정 안되면 우유 팩과 멸균 팩만이라도 따로 분리해 모으는 게 그나마 최선이라는 설명이다.
추운 겨울이라 종이로 만든 테이크 아웃 커피잔을 자주 이용한 탓에 크고 작은 종이컵이 집안에 많이 쌓여 있었다. ‘종이니까 재활용이 되겠지’ 하며 무심코 일반 종이들과 버렸다간 그대로 일반쓰레기가 된다.

이유는 종이컵 안쪽에 코팅된 폴리에틸렌(PE) 때문이다. 물에 젖지 않도록 이 플라스틱 비닐을 내부에 코팅한다. 일반 종이는 물에서 금방 풀리지만 종이컵은 코팅 때문에 녹는 속도가 달라 함께 섞이면 재활용 공정에서 불순물로 취급된다.
그럼 어떻게 분리해야 할까. 우유 팩 역시 내부가 PE로 코팅돼 있기 때문에 우유 팩과 함께 종이 팩 전용 수거함에 배출해야 한다.

종이컵만큼이나 음식 용기도 요새 많이 나오는 종이 폐기물이다. 무심코 그냥 버리기 일쑤지만 이 역시 깨끗이 씻어 말리는 게 중요하다는 게 홍 소장 조언이다. 남아있는 음식물 역시 종이를 재생시키는 과정에서 걸러야 내야 할 이물질이기 때문이다.
젖은 채로 내놓는 것도 좋지 않다. 서울시 종이류 분리배출 요령에 따르면 음식물이나 물기에 젖은 종이는 재활용이 어려워 일반쓰레기로 처리된다.
반면 일반 종이류와 혼합 배출시 선별과정에서 제거 대상이 돼 소각·매립 등 추가 공정을 거쳐야 해 비용과 시간, 환경오염 등이 발생한다.

이날 종이를 분류하는 과정에서 여러 종이 제품 가운데 백판지 등으로 재생할 수 있는 고급 종이 소재인 우유 팩과 멸균 팩을 분리해 수거할 수 있는 별도의 분리배출 장치가 아파트 단지나 가정별로 만들어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아파트 단지나 각 가정에 멸균 팩을 따로 배출하기 위한 전용 수거함을 갖춘 곳은 드물다. 우리 아파트 단지도 마찬가지였다. 종이컵과 우유팩등 일반 종이팩을 별도로 배출하는 수거함조차 없었다. 다른 단지도 사정은 비슷하다. 이럴 경우엔 종량제 봉투에 버리는 게 더 낫다는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홍 소장은 “종이 팩과 멸균 팩도 기준대로 씻고 말려 전용 수거함에 배출되면 재활용 대상”이라며 “전용 수거함만 만들어 이들을 따로 분리한다면 쓰레기로 버려질 종이 팩들도 새 종이 자원으로 탄생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
관련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