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현대음악의 거장’ 지휘자 필립 글래스(88)가 미 워싱턴 D.C.의 복합 문화 공연장인 ‘케네디 센터’에서의 신작 초연 일정을 취소했다. 지난해 12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공연장 명칭에 자신의 이름을 넣어 ‘트럼프-케네디 센터’로 변경한 데 따른 ‘공연 보이콧(거부)’으로 풀이된다.
29일 뉴욕타임스 등 외신에 따르면, 클래스는 최근 공개 성명을 통해 “숙고 끝에 나의 교향곡 제15번 ‘링컨’의 존 F. 케네디 공연예술센터 공연을 취소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글래스는 ‘현대 미니멀리즘 음악’의 대가다. 1976년 초연한 전위적인 오페라 ‘해변의 아인슈타인’이 그의 대표작이다. 전체 작품을 공연하는 데에만 5시간이 걸리는 대작이다. 글래스는 ‘트루먼 쇼’ ‘디 아워스’ '미시마' 등의 영화음악을 작곡한 인물로도 잘 알려져 있다. 박찬욱 감독의 작품 ‘스토커’의 음악도 그가 작업한 결과물이다.
글래스가 이번에 세계 초연 일정을 취소한 작품은 교향곡 15번 ‘링컨 교향곡’이다. 케네디 센터와 이 센터 상주악단인 '내셔널 심포니 오케스트라(NSO)'는 오는 6월 12~13일 지휘자 카렌 카멘세크, 바리톤 독창자 재커리 제임스와 함께 이 작품을 무대에 올릴 예정이었다. 올해 미국 독립선언 250주년 기념 시리즈의 핵심 공연으로 준비됐다.
글래스는 “교향곡 15번은 에이브러햄 링컨을 그린 작품이며, 요즘 케네디 센터가 지향하는 가치는 이 교향곡의 메시지와 정면으로 충돌한다”며 “나는 현 지도부 하의 케네디 센터에서 이 작품의 초연을 철회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낀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로마 다라비 센터 부회장은 “예술에는 정치가 들어설 자리가 없다”며 “정치에 기반한 공연 철회 요구는 잘못된 결정”이라고 비판했다.
최근 ‘트럼프-케네디 센터’는 정치와 예술 간의 갈등·분열을 조장하는 온상이 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초 본인이 케네디 센터 이사장으로 직접 취임한다고 선언했다. 이후 센터의 기존 이사진을 해임하고, 측근들을 이사진에 앉혔다. 지난해 12월엔 센터 이사회는 센터 명칭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이름을 추가해 '도널드 J. 트럼프 및 존 F. 케네디 공연예술센터'로 변경했다.
이런 트럼프의 움직임에 반발해 유명 소프라노 르네 플레밍 등 많은 음악가가 이 공연장의 출연을 취소하거나 거부하고 있다. 55년간 이 센터에 상주했던 워싱턴 내셔널 오페라(WNO)도 이달 초 이전 계획을 발표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예술가들과 관객들의 보이콧이 이어지면서 2024년 가을 93%였던 케네디 센터의 티켓 판매율이 지난해 가을 57%로 급감했다고 보도했다.
김수현 기자 ksoohy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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