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코틀랜드 에든버러에서 차로 1시간30분, ‘로열앤드에이션트(R&A) 월드 골프 뮤지엄’과 그 뒤로 펼쳐진 드넓은 수평선이 나타났다. 골퍼라면 꼭 한 번은 서고 싶은 바로 그곳, 골프의 ‘고향’이자 ‘성지(聖地)’ 세인트앤드루스 링크스였다. 모든 골퍼의 버킷리스트
경험만으로 훈장이 되는 골프장이 있다. 미국 오거스타내셔널GC, 사이프러스 포인트GC, 페블비치 링크스… 그리고 빠지지 않는 곳이 세인트앤드루스 링크스다. 1500년대 처음 골프라는 스포츠가 시작된 ‘골프의 고향’, 그래서 이름부터 ‘올드코스’다. 황량한 페어웨이와 거친 러프, 수많은 골프 전설이 거쳐간 스윌컨 다리. 골퍼라면 살면서 경험할 수 있는 최고의 낭만으로 가득한 곳이다.
세인트앤드루스 링크스를 찾았지만 ‘성지’로 불리는 올드코스 라운드는 현실적으로 힘들다. 1년 치 예약이 지역 주민, R&A 회원들로 일찌감치 차고, 취소 티에 한해 당일 선착순으로 제공되기 때문이다. 매일 세계 각국 골퍼들이 실낱같은 희망을 안고 클럽하우스 앞에서 밤을 새우는 풍경이 펼쳐진다. 단, 일요일에는 라운드를 운영하지 않고 모두에게 개방한다. 또 다른 챔피언십 링크스인 ‘뉴코스’ 역시 하루 전에 예약을 연다. 세인트앤드루스 링크스 내 7개 코스 중 여행 기간이 열흘 남짓한 한국인 골퍼에게 최선의 선택은 ‘주빌리코스’였다.1897년, 빅토리아 여왕의 즉위 60주년 ‘다이아몬드 주빌리’에 개장한 주빌리코스는 북해와 뉴코스 사이에 길고 가늘게 자리 잡고 있다. 페어웨이가 좁고 해풍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기에 가장 도전적이면서도 풍광이 멋진 코스로 평가된다. 지난해 10월 25일 오후 1시4분 티업을 온라인으로 예약한 건 8월 초. 그린피는 1인당 105파운드(약 21만원)였고, 이동에 특별한 어려움이 없다면 모두 걸어서 코스를 소화해야 한다.
세인트앤드루스행을 앞두고 여러 사람에게 조언을 구했다. 캐디 유무는 선택할 수 있지만 “세인트앤드루스의 바람은 상상 이상이라 캐디가 필수”라는 영국 전문가의 이야기를 듣고 곧장 캐디를 신청했다. 캐디피는 기본 팁을 포함해 110파운드(약 22만원)부터 시작한다.
범프앤드런의 진수를 맛보다
생애 최고의 라운드를 위한 날이 밝았다. 미국 오거스타 내셔널GC의 첫 인상이 마치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의 정원 같았다면, 세인트앤드루스 링크스는 이탈리아 바티칸에 비할 수 있겠다. 담백하면서도 황량하기까지 한 코스, 하지만 돌과 덤불 하나에도 골프의 역사가 녹아 있어서다.클럽하우스 앞에는 유니언잭과 클럽 깃발, 스코틀랜드 국기가 힘차게 나부꼈다. 중년 남성 두 명이 다가왔다. 2인의 라운드를 도와줄 캐디들. 이름은 공교롭게도 둘 다 브라이언이었다. 모두 R&A 회원으로, 간혹 아르바이트 삼아 캐디를 한다고.
티잉 구역에 서고 나서야 사나운 바람이 느껴졌다. 나무가 거의 없어 북해의 바람이 곧바로 때려 티에 올린 공이 떨어질 정도였다. “수, 바람이 오른쪽으로 거세게 불잖아. 10시 방향으로 티샷을 해야 해.”(브라이언)
초반에는 의외로 경기가 잘 풀렸다. 간혹 공이 덤불이나 옆홀로 빠져도 베테랑 캐디는 귀신같이 공을 찾아냈다. 클럽은 무조건 두 클럽 이상 크게 잡았다. 7번 아이언 대신 5번 유틸리티를 잡는 식이었다. 그린은 단단하고 불친절했다. 바람이 워낙 강해 그린에서 공이 다시 움직이기 일쑤. 투 퍼트에만 성공해도 버디를 한 듯한 기분마저 들었다.
스윌컨 다리에서 우즈의 눈물을 떠올리다
해외 무대에 도전한 프로들을 만나면 한결같이 “쇼트게임에 상상력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 말을 실감했다. 파인페스큐 잔디로 이뤄진 페어웨이는 워낙 타이트해 그린과 구분이 안 될 정도다. 대부분 어프로치에서 캐디는 7번, 또는 8번 아이언을 사용한 ‘범프앤드런’을 권했다. 127m 거리의 9번홀(파3), 60m를 앞둔 세컨드샷은 7번 아이언으로 롱퍼트 하듯 쳤다. 그린까지 힘차게 굴러간 공은 핀 한 발짝 옆에 멈춰 섰다. 이날의 유일한 파였다.북해를 왼편에 두고 나란히 펼쳐지는 그림 같은 8번홀(파4), 양떼가 풀을 뜯고 있는 코스를 지나며 이 라운드가 끝나지 않길 바라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마음은 13번홀 이후 빠르게 무너졌다. 카트로 이동하고 중간중간 휴식을 취하던 한국인 아마추어 골퍼에게 거센 바람을 맞으며 쉼 없이 걸어야 하는 링크스 코스는 가혹했다. 물론 스코어는 나와 브라이언의 비밀로 가슴에 묻었다.
골프장을 나서며 입구와 연결된 해변으로 갔다. 육지를 집어삼킬 듯 거센 파도가 포효하듯 몰아쳤다. 골프가 인간과 자연 간의 싸움이라지만 애초에 싸움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일요일 아침, 모든 순례자에게 공개되는 올드코스로 향했다. 전날의 강풍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2022년 타이거 우즈가 디오픈에서 커트탈락하며 쓸쓸하게 넘어오던 스윌컨 다리에 섰다. 생각보다 작은 돌다리, 이곳에 서 있다는 것만으로도 가슴에 훈장을 하나 단 듯했다.
마지막으로 이곳을 설계한 ‘올드 톰’ 톰 모리스(1821~1908)의 동상을 마주했다. 방직공의 아들로 태어나 그린키퍼를 거쳐 지금의 ‘18홀 코스’를 만들고 디오픈을 네 번이나 우승한 골프의 전설. 머지않은 날, 우리 다시 만나자며 작별 인사를 건넸다.
세인트앤드루스=조수영 기자 delinew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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