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만의 어촌 마을 수르에서 30분여 떨어진 아라비아반도 동쪽 끝 해변 ‘라스 알 진즈’. 밤 9시가 되자 칠흑 같은 어둠 속에 여행자들이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이곳은 세계 최대 거북이 산란지이자, 매일 밤 장엄한 자연의 드라마가 펼쳐지는 무대다. 오만 정부는 거북이를 보호하기 위해 단 한 곳의 호텔(라스 알 진즈 터틀 리저브)에 투어 라이선스를 부여하고, 매일 밤 한정된 인원에게만 조심스럽게 입장을 허가한다. 이따금 떨어지는 별똥별과 잔잔한 파도 소리가 적막을 깨우는 동안 우리는 침묵의 ‘터틀 워칭’(거북이 관찰) 투어를 시작했다.
투어하는 동안 반드시 지켜야 할 철칙은 두 가지다. 소리를 내지 말 것 그리고 휴대폰 플래시를 켜지 말 것. 인간의 욕심이 거북이의 산란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하는 장치다. 가이드가 든 붉은 적외선 랜턴만이 유일한 길잡이다. 적외선은 거북이가 감지하지 못하는 파장이어서 시야를 방해하지 않는다. “어미 거북이도, 갓 태어난 새끼도 저 멀리 달빛과 별빛에 의지해 바다로 향해요. 그런데 눈부신 인공 조명을 비추면 방향을 잃고 헤매다 죽음에 이르기도 하죠.” 가이드의 말에 사람들은 더욱 숨을 죽였다.
그사이 멀리 나가 있던 다른 가이드가 손짓했다. 조용히 걸음을 옮겨 마주한 어미 거북이는 힘겨운 여정을 증명하듯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이미 제 몸보다 큰 모래 구덩이에 알을 낳은 뒤였다. 알을 보호하기 위해 뒷다리로 몇 번이고 모래를 덮어 땅을 다졌다. 그리곤 느릿느릿 하지만 단호하게 다시 파도를 향해 몸을 돌렸다. 어미 거북이는 다른 동물처럼 새끼를 품지 않는다. 그저 모래 속 온기에 새 생명의 운명을 맡긴다. 산통(産痛)이 남은 탓에 한 걸음 떼는 것도 힘에 부쳐 보였지만, 제 속도대로 묵묵히 발을 구른다. 어미의 뒷모습이 푸른 파도 속으로 흩어지자 숨죽여 응원하던 사람들의 입에서 짧은 탄성이 터져 나왔다.
어미 거북이가 알을 낳고 한 달 정도가 지나면 새끼들이 껍데기를 깨고 부화한다. 이어진 새벽 투어에서는 갓 태어난 새끼들이 힘차게 모래 구덩이를 거슬러 오르는 장면을 볼 수 있었다. 고작 손가락 한 마디 정도 되는 작은 생명체들이 본능적으로 바다를 향해 질주하는 모습은 그 자체로 경이로웠다.작은 몸짓을 지켜보는 동안 거북이의 비밀을 하나 더 들을 수 있었다. 새끼의 성별이 온도에 따라 결정된다는 사실이다. 알을 덮은 모래 온도가 29도보다 낮으면 수컷, 그보다 높으면 암컷이 태어난다. 하지만 지구 온난화로 해변 온도가 오르면서 암컷 거북이의 비중이 비정상적으로 높아지고 있다고 한다. 인간이 만들어낸 기후 변화가 거북이의 성비 불균형이라는 잔인한 결과로 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태어난 거북이들이 모두 이곳으로 돌아올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새끼 100마리가 태어나도, 성체가 돼 다시 이 해변으로 돌아오는 거북이는 대략 한 마리에 불과하다. 대부분 거친 바다에서 천적을 만나거나 인간이 버린 쓰레기 탓에 목숨을 잃는다. “그래도 당신은 지금 그 1%의 확률을 보고 있잖아요.” 가이드가 건넨 한마디는 다시금 깨닫게 했다. 생명이란 단순히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온 우주가 도와야 하는 치열한 투쟁임을.
거북이들이 파도 속으로 사라진 뒤에도 남은 여운에 자리를 한참 떠나지 못했다. 어느새 바다를 붉게 물들인 해를 바라보며 그저 몇 번이고 기도했다. 오늘 망망대해로 향한 저 작은 거북이들이 부디 무사히 이 고향 바다로 다시 돌아오기를. 인간의 이기심이 더 이상 그들을 아프게 하지 않기를.
수르=정소람 기자 ra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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