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9월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가전·TV 전시회(IFA)를 취재할 때였다. 시내 가전 매장에 들어갔더니 삼성전자 직원들이 불붙은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TV와 ‘BURN’(불에 타다)이란 문구가 새겨진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전 세계 이목이 쏠린 전시회 기간에 LG전자 OLED TV의 ‘번인’(열화) 현상을 알리기 위해 일부러 옷을 맞춘 것이다.삼성과 LG가 TV와 가전을 놓고 그랬듯이 두 회사 간 경쟁도 동반 성장의 원동력이 되고 있다. “삼성 한 번 꺾어보자”는 SK하이닉스의 독기는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 선점으로 이어졌고, 그 힘으로 지난해 삼성을 누르고 D램 1위에 올랐다.
SK하이닉스의 비상은 ‘32년 메모리 1위’에 취해 있던 삼성에 스스로를 되돌아보도록 했다. 반도체 부문 열쇠를 넘겨받은 전영현 삼성전자 부회장은 ‘근원 경쟁력 회복’에 모든 역량을 쏟아부었다. 문제가 된 D램을 재설계하는 등 삼성의 경쟁력을 끌어내린 원인을 근본부터 파고들었다. 1년여가 지난 지금 고객사들은 “삼성이 돌아왔다”고 입을 모은다. SK하이닉스와 삼성이 치고받는 사이 메모리 반도체 3위인 미국 마이크론은 뒤로 밀렸다.
이랬던 갈빗집과 쌀집의 기술 경쟁은 언젠가부터 ‘복지 경쟁’으로 양상이 바뀌었다. SK하이닉스가 ‘영업이익의 10%’를 인센티브로 주기로 한 게 발단이 됐다. 신입사원도 억대 연봉자 반열에 오르게 되니, 결혼정보업체의 인기 직업 리스트에 SK하이닉스 직원이 의사보다 앞순위에 섰다는 말까지 나왔다. 이게 삼성 직원들을 자극했다. “SK하이닉스보다 더 많이 받아낼 테니 힘을 보태달라”는 삼성전자 노조의 ‘마케팅’에 4개월간 6만 명가량이 가입 신청서에 서명했다. 이날 삼성전자에는 창사 이후 첫 단일 과반 노조가 태어났다.
전 세계 ‘D램 거지’들이 반도체를 하나라도 더 받기 위해 한국을 찾는 ‘메모리 슈퍼 호황기’엔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리스크에 둔감해진다. 하지만 인공지능(AI) 인프라 투자 경쟁이 사그라들면 메모리업계엔 한파가 불어닥칠 수밖에 없다. ‘파격 인센티브’를 원래 받아야 할 급여로 생각하는 직원들이 그때는 ‘파격 양보’를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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