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제도는 다양한 형태로 사회·경제 변화를 초래한다. 규제 정책이건 진흥 정책이건 경제 주체인 사회 구성원은 새로 만들어지거나 바뀐 제도에 적응하고 대응하는 방식으로 행동하기 때문이다. 한 예로 현금 거래 대신 카드 결제 관행이 정착한 계기는 정부가 1999년 자영업 과표 양성화를 위해 도입한 신용카드 소득공제 제도였다. 신용카드를 쓰면 세금을 덜 낼 수 있게 되자 소비자들이 즉각 반응했다.이처럼 정부 정책으로 표출되는 제도는 경제 주체의 행동 변화에 이어 시장 규칙과 관행을 바꾸고, 나아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국가 경제에 영향을 미친다. 물론 정책에 따라 효과가 단기로 끝나느냐, 아니면 장기적인 사회 변화로 이어지느냐의 차이는 있다.
애덤 스미스 이후 고전경제학은 시장을 이기적인 인간 본능에서 비롯된 자연 질서의 총합으로 여겼다. 시장 불완전성을 이유로 적극적 정부 개입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지만, 여전히 시장 자본주의를 지탱하는 근간은 인간 이기심과 시장 경쟁이다. 이를 통해 자원 배분이 효율화되고 국가의 부가 증가한다.
그렇기에 경제 주체의 행동과 시장 규칙을 바꾸는 제도 도입이나 개편은 당연히 신중해야 한다. 첨단산업 연구까지 제약하는 주 52시간 근무제, 과도한 실손의료보험이 초래한 필수·응급의료 체계 붕괴 등에서 보듯 장기적으로 돌이키기 힘든 경제적·사회적 부작용을 부른 사례가 적지 않다는 점에서 그렇다. 2012년 골목 상권 보호를 위해 도입한 유통산업발전법이 대형마트의 심야 영업을 금지하면서 역으로 공룡 유통사 쿠팡을 키우는 결과를 낳은 것도 사실이다. 형사사법 체계를 뿌리째 뒤바꿀 검찰 개혁과 서울대 10개 만들기 정책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를 두고 우려하는 목소리도 작지 않다.
과거 권위주의 정부 때와 달리 경제와 사회가 고도화하고 이해 당사자의 목소리가 제각각일수록 제도 설계의 복잡성이 증가하는 것은 당연하다. 더 힘든 상황이라는 것은 누구나 안다. 그렇더라도 단기 목표를 달성하면서 중장기적 부작용이 없도록 국정을 이끄는 국회와 행정부의 대응 능력은 이에 맞춰 달라져야 한다. 국정 전반에 걸쳐 더 고도화한 지식이 있어야 하고 바꾼 제도를 사회·경제시스템 안에 제대로 안착시킬 전문성도 필요하다.
하지만 국회와 정부가 그만한 능력과 자질을 갖추고 있는지 솔직히 의문이다. 국가 운영의 영속성과 지속 가능한 경제 성장의 토대를 훼손해서는 안 되지만, 선거와 지지층 앞에서 이런 기본 전제조차 쉽게 무너진다. 대주주 경영권을 제약하는 상법 개정을 강행하고 일방적으로 노조 권리를 강화한 노란봉투법을 시행한 것이 앞으로 얼마나 큰 후폭풍을 몰고 올지는 상상하기조차 두렵다. 통합 특별시에 최대 20조원을 지원한다는 새로운 균형성장 전략이 기존 공기업 나눠먹기식 국가 균형발전과 어떻게 다른 성과를 낼지도 궁금하다. 문재인 정부 이후 숱하게 발표된 부동산 대책에도 서울과 수도권으로 몰리는 투자 심리를 제대로 잡지 못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모든 산업 분야에서 인공지능(AI) 도입이 가속하면서 산업 현장의 블루칼라 직종은 물론 일반 사무직과 회계사, 변호사, 의사 등 전문직까지도 일자리를 위협받을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한국개발연구원(KDI) 보고서에 따르면 2030년이면 수행하는 업무의 90% 수준에서 AI로 자동화할 수 있는 일자리가 전체 일자리의 90%에 달할 것이라고 한다. 수행 업무의 64%를 AI로 대체할 수 있는 것으로 분석된 국회의원과 고위 공무원 일자리도 안전지대로 보기 어렵다. 현재만 쳐다보고 미래를 고민하지 않는 국회와 정부라면 AI로 대체하지 못할 이유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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