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선경
사람살이로 말하자면
어려움을 당해서야 그 마음의 품새가 드러나듯
늘 푸른 대나무도 바람을 맞아야
제멋이다 몇 해 전
서울 동대문 프라자에서 간송전을 보다가
풍죽(風竹) 복사본을 한 점 구해다 놓고
한참을 잊고 지내다 새삼
액자를 하여 거실 벽에다 걸어 놓았다
마음 어지러운 어느 날
가만히 바라보니 내 마음이 다 환해진다
대숲에 든 듯 새소리
댓잎 부딪는 소리 들린다
역시 푸른 대나무도 바람을 맞아야
어려움 이겨 낸 옛 어른 풍모 보여 준다
여린 가지와 흐린 묵향 속에서
어디 저런 기품이 숨어 있었나?
새삼 찬찬히 들여다보게 한다
대숲에 든 듯
세속을 벗어난 듯
내가 잔잔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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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출간된 성선경 시인의 시집 『풍죽』의 표제작입니다. 풍죽(風竹)은 ‘바람에 날리는 대나무’를 말하지요. 고난과 시련에 맞서는 선비의 지조를 상징합니다. 그런데 이 시는 상징을 앞세우기보다 생활의 풍경을 먼저 보여줍니다. 시인은 몇 해 전 간송전에서 본 풍죽의 복사본을 구해 뒀다가 한참 뒤에 액자를 해 거실 벽에 걸어 놓습니다.
그런 다음 “마음 어지러운 어느 날” 그림을 보면서 느낀 감각의 전환을 얘기합니다. 눈으로 보던 그림이 어느 순간 귀로 들리기 시작하면서 감각이 천천히 바뀝니다. “대숲에 든 듯 새소리/ 댓잎 부딪는 소리 들린다”에서 화면은 소리로 바뀌고, 소리는 내면의 풍경을 바꿉니다. 이때 환해지는 것은 상황이 아니라 마음입니다. 바깥의 사건은 그대로인데 안쪽의 숨결이 바뀌는 순간이 곧 시의 변곡점이지요.
여기서 ‘바람’은 단순한 고난의 은유를 넘어섭니다. 바람은 대나무를 시험하는 외부의 칼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대나무의 기품을 만들어 주는 내부의 손길입니다. “바람을 맞아야/ 어려움 이겨 낸 옛 어른 풍모 보여준다”라는 구절은 고난의 미화가 아니라 고난을 통과한 몸짓의 자세를 의미하지요. 흔들림 자체가 품격이 될 수 있다는 것은 흔들려도 꺾이지 않는다는 말보다 훨씬 더 섬세한 표현입니다.
바람이 없으면 잎은 움직이지 않고, 움직임이 없으면 소리도 없겠지요. 흔들리되 부러지지 않는 선, 휘어지되 꺾이지 않는 결, 그 결이 만들어 내는 소리. 대나무의 아름다움은 결국 ‘움직임의 품격’입니다. 사람으로 말하면 시련이 닥쳤을 때 드러나는 자세입니다. 바람을 맞아야 비로소 드러나는 대나무의 생태, 어려움을 통과해야 비로소 드러나는 마음의 품새. 이 둘은 거울처럼 서로를 비춥니다.
시인은 이어지는 「풍죽 2」에서 만고풍상을 겪는 대나무의 “그 구도가 마치 아름다울 미(美)처럼 보인다”는 깨달음을 얻습니다.
“문득 새벽에 깨어나 책상에 앉았는데/ 벽에 걸린 풍죽을 지긋이 훔쳐봤더니/ 그 구도가 마치 아름다울 미(美)처럼 보인다/ (…) 이른 새벽 문득 깨어나/ 새로운 삶의 한길을 보는 이 기쁨/ 대나무가 대나무로만 보이지 않는/ 이 아름다움을 간송 선생께서도 이미 보셨겠지?/ 한갓 대나무도 만고풍상을 겪어/ 그것을 슬기롭게 이겨 냈을 때/ 비로소 아름다움을 얻는다는 것/ 저 바람에 흔들리는 풍죽이 오늘 새벽/ 아름다울 미(美)처럼 보인다.”
고난과 흔들림이 아름다움의 조건이 되는 역설의 미학! 고난이 ‘상처’로 남지 않고 ‘구도’로 바뀌는 순간 비로소 미학의 경지에 도달합니다. 풍죽이 아름다운 것은 바람에 흔들리면서 그 역설의 미학을 꽃피우기 때문이지요.
시인은 시집 속의 「대숲」이라는 시에서 더욱 확장된 이미지를 보여줍니다. 바로 ‘정화(淨化)의 숲’입니다.
대숲
이제 나는 망우(忘憂)의 숲에 들었습니다
파죽지세, 들개같이 몰려들던 세속의 바람
숲에 기대어 이제 망연히 잊겠습니다
신발을 벗고 혁대도 조금 느슨히 풀고
한동안 댓잎 소리 따라가겠습니다
쏜 화살처럼 속절없이 빠른 세월도 잊고
느린 소걸음같이 그침 없는 시간도 잊겠습니다
나는 이제 망우의 숲에 들었습니다
속을 비운 대나무같이 나도 망우하겠습니다
내가 지키고자 한 삶이
결국 대나무 마디 같은 것이었나요
버려도 될 많은 각오들이 다
서걱거리는 바람 소리 같은 것이었나요
나는 지금 귀 떨어진 기왓장같이 누웠습니다
이제 어디 간 곳 모를 댓잎같이 푸른 날들
가지를 흔들어 대던 세속의 바람
숲에 기대어 이제 망연히 잊겠습니다
이제 내 것 아닌 호흡들을 흘려보내며
조용히 댓잎 소리 따라가겠습니다
나는 이제 망우의 숲에 들었습니다
대나무 마디마디 귀 닫고
망우하겠습니다.
시인은 대숲에서 “들개같이 몰려들던 세속의 바람”과 “느린 소걸음” 같은 시간을 잊고 “속을 비운 대나무같이” “망우(忘憂)하겠다”고 다짐합니다. 세속의 바람을 잊고, 댓잎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그 순간 ‘소리의 침묵’과 ‘고요의 울림’이 만납니다.
이럴 때 대나무의 비움은 빈약함이 아니라 공명(共鳴)의 조건이지요. 속이 비어 있어야 소리가 울립니다. 마음도 비어 있어야 울립니다. 욕심, 체면, 두려움, 비교로 가득 찬 마음에는 울릴 틈이 없습니다.
우리는 종종 큰 각오로 자신을 다그치지만, 어떤 각오는 바람처럼 스쳐 지나가고 남는 것은 상처뿐입니다. 대숲에서는 오히려 ‘각오’보다 ‘호흡’이 중요해지지요. 그래서 시인은 눕습니다. “나는 지금 귀 떨어진 기왓장같이 누웠습니다.” 누운 사람은 하늘을 봅니다. 바람을 덜 맞고, 숨을 더 길게 쉽니다. 마침내 “이제 내 것 아닌 호흡들을 흘려보내며/ 조용히 댓잎 소리 따라가겠습니다”라는 다짐에 이릅니다.
이 지점에서 풍죽의 미학과 대숲의 정화가 한 줄로 연결됩니다. 풍죽이 바람을 맞아 기품을 드러내듯, 대숲은 바람을 흡수해 고요를 만들어 냅니다. 우리는 흔들림의 품격과 흔들림을 씻어 내는 법을 함께 배웁니다.
마음이 산란할수록 큰 소리에 지배당하기 쉽지요. 이럴 때 풍죽은 작은 소리로 우리를 어루만지고 격려하는 음표가 됩니다. 바람이 지나가며 내는 “댓잎 부딪는 소리”는 우리 마음을 자기 자리로 돌아오게 하는 신호이기도 합니다. 어지러운 흔들림 속에서도 고아한 기품을 발견하게 해 주기 때문이지요.
그 발견은 우리 마음을 깨끗하게 헹궈주는 샘물과 같습니다. 오늘같이 바람이 센 날, 마음이 어지럽고 흔들리는 날에는 풍죽이 보여주는 역설의 미학을 더 깊이 새겨볼 일입니다.
■ 고두현 시인 : 199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늦게 온 소포』, 『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 『달의 뒷면을 보다』, 『오래된 길이 돌아서서 나를 바라볼 때』 등 출간. 김달진문학상, 유심작품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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