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의 본질은 구성원의 열정 부족이 아니라 그 일을 받아들이는 ‘심리적 경로’에 있다. 사람은 자신이 직접 선택한 일에는 의미를 부여하고 몰입하지만, 강요된 일에는 본능적으로 거리를 둔다. 따라서 리더에게 필요한 역량은 단순히 동기를 주입하는 기술이 아니라 구성원이 주어진 현실을 ‘자신의 일’로 인식하게 만드는 환경 설계 능력이다. 업무 자체는 조직의 필요에 의해 결정되었을지라도, 그 일을 풀어가는 방법이나 순서, 접근 방식 중 단 일부라도 구성원이 결정하게 해야 한다. “이 일을 하라”는 일방적 지시보다 “이 난관을 당신이라면 어떤 방식으로 풀어가겠느냐”는 질문이 강력한 이유는 그 질문이 구성원에게 ‘통제권’을 돌려주기 때문이다. 선택의 여지가 전혀 없다고 느끼는 순간 사람은 일을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저항하는 쪽을 택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리더가 경계해야 할 태도는 배려를 가장한 모호함이다. 미안한 마음에 “일단 해보고 상황에 따라 바꾸자”는 식의 유보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은 오히려 구성원의 헌신을 방해한다. 사람은 확정된 현실 앞에서만 자신의 태도를 결정한다. 일이 잠정적인 상태로 남아 있을수록 구성원은 그 업무에 깊이 발을 들이지 않고 주변을 겉돌게 된다. 모호함은 위로가 아니라 불확실성을 가중시키는 장치가 될 뿐이다. 따라서 리더는 업무의 확정된 범위를 명확히 제시하고, 그 단단한 토대 위에서 구성원이 마음껏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가이드를 제공해야 한다.
무엇보다 업무 수용성의 핵심은 ‘절차적 공정성’에 있다. 결과가 아무리 가혹하더라도 그 결정이 내려진 논리와 맥락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때 사람은 비로소 결과를 받아들인다. 조직에서 신뢰가 무너지는 시점은 성과가 정체될 때가 아니라 의사결정 과정이 불공정하다고 느낄 때다. 일방적인 통보가 아니라 투명한 소통을 통해 ‘왜 이 업무가 필요한지’와 ‘왜 당신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납득 가능한 근거가 제시되어야 한다.
조직이 서서히 붕괴되는 순간은 구성원들이 업무를 수행하면서도 속으로 “이건 내 일이 아니다”라고 선을 긋기 시작할 때다. 그 순간 조직은 협력하는 공동체가 아니라 각자의 안위만을 살피는 개인들의 집합체로 전락한다. 아무도 하고 싶지 않은 일을 맡겨야 할 때, 리더는 단순한 업무 배분자가 아닌 ‘의미의 설계자’가 되어야 한다. 구성원이 타의에 의해 부담을 지는 피해자가 아니라 자신의 방식대로 문제를 해결하는 주인공이 될 수 있도록 판을 짜주는 것이 진정한 리더십의 본질이다. “이걸요?, 제가요?, 왜요?”라는 반문을 듣지 않으려면 말이다.
<한경닷컴 The Lifeist> 정인호 GGL리더십그룹 대표/경영평론가(ijeong1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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