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금값과 은값이 큰 폭으로 하락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케빈 워시 전 미국 중앙은행(Fed·연준) 이사를 차기 연준 의장 후보로 지명한 영향이라는 분석이다. 해당 선물 투자 포지션 축소가 하락 폭을 키웠다는 의견도 있다.
31일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금 현물은 이날 전장 대비 9.5% 급락한 트로이온스당 4883.62달러에 거래됐다. 전날 사상 처음으로 트로이온스당 5500달러선을 돌파하며 5594.82달러로 고점을 높인 지 하루 만이다. 뉴욕상품거래소에서 4월 인도분 금 선물 종가도 트로이온스당 4745.10달러로 전장보다 11.4% 급락했다.
국제 금 가격은 지난 26일 사상 처음으로 트로이온스당 5000달러선을 넘어선 이후에도 매수세가 몰리면서 지난주 이후 기록적인 상승세를 이어왔다. 최근 몇 달 새 랠리를 이어온 국제 은 가격은 조정 폭이 더욱 컸다.
로이터에 따르면 은 현물 가격은 이날 전장 대비 27.7% 급락한 83.99달러에 거래되며 트로이온스당 100달러선 아래로 떨어졌다. 1982년 이후 최대 하루 기준 하락 폭을 기록했다.
금 현물 가격은 이날 트로이온스당 77.72달러까지 저점을 낮추기도 했다. 금·은 가격 급락 여파로 백금(-19.18%), 팔라듐(-15.7%) 등 다른 귀금속도 이날 큰 폭으로 하락했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업계에선 최근 얇은 유동성 구간에서 FOMO성 소규모 자금이 과도한 가격 움직임을 만들었는 분석이 나온다. 가격이 내재가치보다 유동성에 더 크게 좌우되는 상태였다는 뜻이다.
이날 금값 하락은 미국 Fed 금리 방향 전망의 영향이 컸다. 트럼프 대통령이 워시 전 Fed 이사를 지명한 뒤 달러가 강세를 보였고 시장은 공격적 금리 인하 기대가 약해질 수 있다는 쪽으로 해석했다는 분석이다,
여기에 이날 발표된 생산자물가지수(PPI)가 예상보다 강하게 나오면서(로이터 기준 전월 대비 0.5%로 예상 0.2% 상회) Fed가 금리를 내릴 가능성이 떨어졌다는 관측도 있다.
최근 금과 은 투자 관련 다양한 상황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는 분석도 있다 선물 포지션의 과밀, 마진 요건 상향, ETF 자금 흐름의 변화, 달러 강세 등 구조적 요인이 동시에 작동했다는 것이다.
미국 선물시장의 투자자 포지션 구성을 보여주는 'Commodity Futures Trading Commission(CFTC)'의 주간 COT(Commitments of Traders) 자료에 따르면, 지난 27일 기준 은(Comex 5000온스) 선물시장에서 매니지드 머니의 포지션은 순매수 우위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구체적으로 매니지드 머니(고객 자금을 위탁받아 운용하는 기관투자자)는 은 선물에서 롱(매수) 포지션 1만 9423계약을 보유했지만 숏(매도) 포지션은 1만 1724계약으로 집계됐다. 이는 매니지드 머니가 은 가격의 추가 상승 가능성에 보다 무게를 두고 포지션을 운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금(Comex 100oz) 역시 매니지드 머니의 롱 포지션이 14만3321계약으로 숏 2만5,162계약을 크게 웃돌고 있었다. 이런 수치 자체가 급락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최근처럼 가격이 급격히 오른 경우에는 변동성까지 높아지면 작은 계기로도 ‘줄줄이 포지션 축소’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이 과정에서 하락 폭을 더 키웠다는 분석이다.
이런 상황에서 결정적 역할을 하는 장치가 마진이다. 선물 거래는 레버리지가 기본이기 때문에 변동성이 커지면 거래소와 청산소는 증거금 요건을 조정한다. CME그룹 산하 'CME Clearing'은 1월 중순 귀금속 마진 산정 방식을 명목가치 대비 비율로 변경하겠다고 공지했다.
1월 27일에는 은 선물의 마진을 9%에서 11%로 상향했다. 고위험 계정의 경우 요구 수준은 더 높다. 마진 인상은 같은 포지션을 유지하기 위해 더 많은 현금이 필요하다. 이를 감당하지 못한 참여자에게는 포지션 축소라는 선택지만 남긴다. 이 매도가 다시 변동성을 키워 추가 마진 인상과 추가 청산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형성될 수 있다.
달러의 방향 전환도 중요 요인이다. 달러가 강해지면 달러 표시 금속은 비달러권에서 체감 가격이 올라 수요를 압박한다. 이 관계를 수치 모델로 매매하는 펀드가 적지 않다. 달러의 움직임은 개별 뉴스보다 빠르게 모델 매매와 헤지, 리밸런싱을 동시에 촉발해 가격을 계단식이 아니라 엘리베이터식으로 움직이게 만든다.
블룸버그통신은 “케빈 워시 지명이 금·은 시장 조정의 계기가 되긴 했지만 시점상 다소 늦었다”며 “시장은 그동안 포물선처럼 급등한 흐름을 되돌릴 수 있는 구실을 찾고 있었을 뿐”이라고 평가했다.
김주완 기자 kjw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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