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은 전기차용 배터리 시장에서 수년째 1위를 놓치지 않고 있다. 비야디(BYD)와 지리자동차 등 중국 내수가 뒷받침돼 배터리 기술력과 점유율을 빠르게 끌어올렸다. 중국 배터리의 특징은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라는 것이다. 한국이 잘하는 삼원계 배터리보다 에너지 밀도가 낮지만 가격이 싸다. 200~300㎞에 불과하던 LFP의 주행거리도 꾸준한 기술 개발 덕분에 500㎞ 이상으로 늘어났다. 가격이 중요한 전기차 시장에서 절반에 가까운 점유율을 차지한 이유다. 전기차 배터리 시장에서 중국 CATL과 BYD의 합산 점유율(지난해 1~11월)은 54.9%로 한국 배터리 3사(LG에너지솔루션·SK온·삼성SDI) 점유율(15.8%)보다 네 배 가까이 높다. CATL 혼자서 한국 배터리 3사 점유율 총합을 넘어선 지도 수년이 됐다.
휴머노이드 시장이 본격화하면서 고성능 배터리 개발에 집중해온 한국 배터리 3사에 기회가 온 것이다. LG에너지솔루션과 삼성SDI는 휴머노이드용 배터리를 납품하기 위해 소재사들과 울트라 하이니켈 배터리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테슬라와 중국 휴머노이드 기업의 의뢰를 받은 LG에너지솔루션은 엘앤에프(양극재), 엔켐(전해액), 도레이첨단소재(분리막) 등과 연합해 휴머노이드용 배터리를 개발 중이다. 보스턴다이내믹스와 배터리 납품을 논의 중인 삼성SDI는 에코프로비엠(양극재), 솔브레인(전해액), 더블유씨피(분리막) 등과 손잡았다.
하이니켈 분야에서 한국과 중국은 상당한 기술 격차가 있다. 휴머노이드에 적합한 울트라 하이니켈 배터리와 2170, 46원통형 시리즈 양산 기술을 보유한 기업은 세계에서 LG에너지솔루션과 삼성SDI뿐이다.
소재사도 마찬가지다. 엘앤에프는 작년 하반기 세계 최초로 울트라 하이니켈 양극재 양산에 성공했고 에코프로비엠도 생산을 앞두고 있다. 엔켐과 솔브레인은 높은 니켈 비중에도 안정성을 유지할 수 있는 고출력 전해액 기술을 개발했다. 도레이첨단소재, 더블유씨피는 울트라 하이니켈에 어울리는 분리막 기술 등을 갖췄다. 본격적인 납품은 내년부터다. LG에너지솔루션이 테슬라에 수만 대 분량의 옵티머스용 배터리를 납품할 것으로 전해졌다.
CATL, BYD 등 중국 배터리 업체도 울트라 하이니켈 배터리 기술을 개발 중이지만 양산에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알려졌다. 니켈 비중이 올라갈수록 폭발 위험성 등이 커지는데 이를 관리하는 기술이 부족하다. 이들의 기술력은 니켈 비중이 50~70%인 미드니켈 수준에 머물러 있다. LFP 기술을 더 끌어올리기도 쉽지 않다. LFP 배터리로는 휴머노이드를 수십 분 정도밖에 가동할 수 없다. 에너지 출력도 낮아 순간적인 힘을 필요로 하는 휴머노이드에 적합하지 않다.
배터리 회사들이 니켈 비중을 높이려는 것은 휴머노이드의 배터리 장착 공간이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휴머노이드는 가슴, 등의 한 뼘 남짓한 곳에 최고 효율의 배터리를 채워야 한다. 전기차 대비 5%도 안 되는 공간에 배터리를 넣어야 하는 것이다. 최신 휴머노이드에 스스로 배터리를 바꾸는 기술이 들어갔지만 한계는 명확하다. 한두 시간마다 배터리를 교체하느라 작업장을 비워야 하는 데다 교체용 배터리도 준비해야 해서다. 수백 대의 로봇을 돌리는 사업장에서 수백 대 이상의 배터리 교체 공간을 마련하는 것 역시 비용이 든다. 고효율 배터리를 쓰면 교체에 드는 시간을 줄일 뿐 아니라 비축용 배터리를 덜 마련해도 된다.
중국·미국 업체들 국내 기업에 손짓…LG엔솔·삼성SDI 등과 공급 협력

업계에선 울트라 하이니켈과 차세대 배터리인 46원통형 시리즈(지름 46㎜·높이 80㎜) 조합을 현 상황에서 휴머노이드에 가장 적합한 기술로 평가했다. 울트라 하이니켈 배터리의 에너지 밀도는 평범한 삼원계 배터리보다 30% 이상 높다. 46원통형 시리즈 역시 기존 각형·원통형·파우치형보다 20~30%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배터리 업체 연구원은 “에너지 밀도를 얼마나 높이는지가 휴머노이드용 배터리 전쟁의 요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중국 휴머노이드 업체조차 중국이 아니라 한국 업체에 배터리를 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복수의 중국 휴머노이드 업체에서 배터리 납품을 의뢰받고 제품 개발에 들어간 것으로 확인됐다. 휴머노이드 ‘옵티머스’를 개발 중인 테슬라에도 하반기부터 수만대의 울트라 하이니켈(니켈 비중 95% 이상) 배터리를 납품할 예정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총 6개 휴머노이드 업체에 배터리 납품을 준비 중이다. 삼성SDI는 보스턴다이내믹스의 휴머노이드 아틀라스에 배터리 납품을 준비하고 있다. 피규어AI, 애질리티로보틱스, 1X테크놀로지스 등 미국 휴머노이드 회사도 별다른 대안이 없는 만큼 한국 배터리를 쓸 가능성이 큰 것으로 업계는 예상하고 있다.

중국의 러브콜이 특별한 건 이들은 그동안 중국산 배터리를 대부분 사용해왔기 때문이다. LG에너지솔루션 역시 전기차 배터리는 중국시장 점유율이 미미하다. 미국 역시 한국을 찾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과 중국이 치열한 기술 경쟁을 벌이고 있지만, 휴머노이드 배터리 영역에서만큼은 한국이 양국 밸류체인 모두에 편입될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이르면 내년부터 휴머노이드용 배터리 양산이 시작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는 내년 말부터 수천 대의 산업용 휴머노이드 양산을 시작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LG에너지솔루션과 관련 K배터리 밸류체인도 이 일정에 맞춰 가동될 수 있다. 이창실 LG에너지솔루션 최고재무책임자(CFO·부사장)는 지난해 4분기 실적 발표에서 “원통형 배터리의 기술력을 인정받아 글로벌 선도 기술을 보유한 6개 업체에 제품 공급뿐 아니라 차세대 모델향으로 스펙 및 양산 시점을 협의 중”이라고 말했다. 이연희 LG에너지솔루션 경영전략 담당도 “떠올릴 수 있는 대부분의 선도 기업으로부터 수주를 완료했다”며 “고에너지밀도, 고출력 스펙에 하이니켈 삼원계(NCM) 기반의 2170 원통형 전지 제품 공급을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현대차의 차세대 휴머노이드 ‘아틀라스’는 삼성SDI와 연합할 가능성이 높다. 삼성SDI는 이미 현대차의 로봇 플랫폼 ‘모베드(MobED)’를 통해 기술력을 검증받았다. 보스턴다이내믹스는 2028년 삼성SDI 배터리를 납품받아 양산을 시작할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SK온 역시 휴머노이드용 배터리 개발에 나선 것으로 전해졌다.
장기적으로 로봇 배터리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서는 기술력 개발이 필수적이다. 전고체 배터리는 액체 전해질 대신 고체 전해질을 적용해 안정성과 공간 효율을 끌어올릴 수 있는 차세대 기술로 꼽힌다.
국내 배터리 3사는 모두 전고체 배터리를 개발 중이다. 삼성SDI는 지난 2023년 3월 전고체 파일럿 라인을 수원 SDI연구소에 구축한 뒤 현재 여러 고객사에 샘플을 공급하고 테스트를 진행 중이다. 양산 목표 시점은 내년 하반기이며 900Wh/L의 에너지 밀도를 구현한 황화물계 전고체 배터리를 개발하고 있다.
SK온은 지난해 9월 전고체 배터리 파일럿 플랜트를 준공했으며 당초 목표인 2030년 상용화를 2029년으로 1년 앞당겼다. LG에너지솔루션은 황화물계 전고체 배터리 상용화 목표를 2030년으로 제시했다. 현재 파일럿 라인을 가동하고 있으며, 2028년에는 800Wh/kg급 고분자계 전고체 배터리를 먼저 선보일 계획이다.
김우섭 기자 dut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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