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적 수사뿐만이 아니다. 실물 경제 현장 곳곳에서도 이 같은 변화가 감지된다. 베이징에서 만난 중국 기업 관계자들은 하나같이 “한국 기업과 협력을 늘리고 싶다”고 말한다.
로봇 분야만 봐도 그렇다. 중국은 산업용 로봇 도입 규모에선 세계 최대다. 하지만 핵심 부품과 정밀 제어, 현장 맞춤형 기술 측면에서 여전히 해외 기업이나 기술 수요가 있다. 이 지점에서 한국 기업 경쟁력이 부각되고 있다.
중국 로봇업계 관계자는 “하드웨어는 중국이 만들지만 공정 최적화 과정에서 한국 기업과 협력하고자 하는 의지가 크다”고 말했다. 물론 한국 기업에도 인구 14억 명과 광범위한 산업 수요를 갖춘 중국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시장이다.
한·중 기업 협력을 위한 정치 여건이나 수요는 무르익었지만 장애물은 예상치 못한 곳에 있다. 바로 중국에 있는 한국 기업 데이터 부재다. 중국 내 한국 기업 데이터는 여러 기관에 흩어져 있다. KOTRA, 주중한국상회, 대사관, 각 지역 영사관 등이 저마다 기업 정보를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이를 통합해 체계적으로 관리하거나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곳은 없다.
주중 한국 기업 중 데이터베이스화된 곳은 절반에도 못 미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다 보니 어느 지역에 어떤 분야의 강소기업이 있는지, 로봇·인공지능(AI)·부품 등 세부 산업별로 어떤 기술을 갖춘 기업이 있는지 파악하기 어렵다.
통합 기업 데이터베이스 자체가 없으니 한국 기업 수요가 있는 중국 기업과 즉각적이고 정밀하게 매칭하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한국 기업의 사업 확대와 시장 안착에 도움이 되는 중국 기업과 협업할 기회는 사라지고 있다.
중국에서 대기업의 2~3차 벤더(부품 납품 기업)가 폐업하거나 중국 기업에 매각돼도 알음알음 정보를 파악해야 한다. 중국 기업과 합작 형태로 사업을 시작하는 한국 기업이 빠르게 늘고 있지만 이에 관한 정보도 없다.
지금 당장 필요한 건 한·중 관계 개선과 투자 확대 등 거창한 구호가 아니다. 가장 기본적인 인프라 정비다. 주중 한국 기업의 기술 분야, 핵심 제품, 협력 희망 분야, 중국 내 사업 단계 등을 포함한 ‘산업 지도’를 마련해야 한다. 운영 주체가 다른 개별 기관이 아니라 실행력 있는 컨트롤타워가 표준을 제정하고 산재해 있는 기업 데이터를 연계해야 한다. 눈 뜨고 눈앞의 수많은 기회를 날려버리면 그 대가는 결국 우리 경제가 치르게 된다. 훈풍이 왔지만 돛조차 펴지 못한다면 결국은 제자리걸음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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