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대의 미성년자 성범죄자인 미국 억만장자 고(故) 제프리 엡스타인에 대한 추가 문건 파장이 퍼져 논란이 되고 있다. 특히 그가 러시아 정보기관과 결탁해 세계 정·재계 유력 인사들을 상대로 이른바 '콤프로마트(협박용 약점 수집)' 공작을 펼쳤다는 '러시아 스파이설'까지 나왔다.
1일(현지 시간) 텔레그래프에 따르면 미 법무부가 지난달 30일 공개한 관련 문건 300만 건과 사진 18만 장, 영상 2000건에는 엡스타인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및 러시아 연방보안국(FSB)과 긴밀히 접촉한 많은 정황이 담겨 있다.
공개된 문서 중 1056건에 푸틴 대통령의 이름이, 9000건 이상에 모스크바가 언급되어있다.
일부 문서는 엡스타인이 2008년 미성년자 성매매 알선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이후에도 푸틴 대통령을 직접 만났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2011년 한 이메일에는 엡스타인이 푸틴 대통령과의 면담 일정을 조율하는 내용이 담겨 있고, 2014년에도 추가 면담을 계획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2010년에는 한 지인에게 러시아 비자 발급을 도와주겠다며 "푸틴의 친구가 있다. 그에게 부탁할까"라고 제안한 내용도 담겨있다.
일각에서는 엡스타인이 영향력 있는 기업인과 언론 재벌, 정치인들을 성적 관계로 유인한 뒤 촬영해 협박하는 전형적인 '콤프로마트' 작전을 수행했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고 텔레그래프는 보도했다.
콤프로마트는 러시아어 '콤프로미티루유시 마테리알'의 줄임말로, 정치·사회적 목적으로 상대방을 압박하거나 통제하기 위해 수집한 자료를 뜻한다.
텔레그래프는 엡스타인의 이메일에는 '협박' 개념이 명확히 드러난다고 밝혔다. 엡스타인은 2015년 FSB 출신인 세르게이 벨랴코프 당시 러시아 경제발전부 차관에게 "모스크바 출신 여성이 뉴욕의 유력 사업가들을 협박하려 하고 있다. 이는 모든 관련자들의 사업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경고했고, 이후 자신에게 보낸 이메일에서는 해당 여성의 협박을 저지하는 전략을 세우며 "FSB의 친구들에게 연락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고 적기도 했다.
또 해당 여성에게는 미국 사업가를 협박하는 것은 FSB 시각에서 '브라그 나로다(인민의 적)'으로 간주될 수 있으며 "극도로 가혹한 처벌을 받을 것"이라고 위협했고, 한편으로는 협박을 포기하는 대가로 2년간 매달 5만 달러를 지급하겠다고 회유하려 했다.
또 다른 문건에서는 당시 유럽평의회 사무총장이자 노르웨이 전 총리였던 토르비에른 야글란에게 미·러 정상회담을 앞두고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을 상대하는 방법에 대해 푸틴 대통령에게 조언할 수 있다는 내용도 담겼다. 그는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에게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통찰'을 제공할 수 있다며 "그는 무언가를 얻었다고 보여야 한다. 그게 전부"라고 썼다.
공개된 문건 속에는 엡스타인과 측근들이 러시아 출신 젊은 여성들을 모집하기 위해 얼마나 조직적으로 움직였는지도 담겨 있다. 모스크바에서 파리, 뉴욕으로 가는 모델의 항공편 예약을 요청하는 이메일도 포함돼 있었다.
2013년 이메일에는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 빌 게이츠가 "러시아 여성과의 성관계로 인한 후유증을 처리하기 위해" 약이 필요하다는 주장과, 당시 아내였던 멀린다에게 성병 감염 사실을 숨기려 했다는 주장이 담겼다. 이에 대해 게이츠 측은 "완전히 터무니없는 거짓말"이라고 일축했다.
엡스타인은 영국 출판 재벌이자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에서 일했던 것으로 알려진 로버트 맥스웰에 의해 첩보 세계에 발을 들였을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고 텔레그래프는 전했다. 이들의 만남은 러시아 정보기관의 급여를 받는 석유 재벌이 주선한 것으로 알려졌다. 맥스웰의 딸 길레인은 엡스타인의 오랜 연인이었다.
맥스웰은 1991년 대서양에서 요트에서 추락해 숨졌는데 타살, 특히 모사드가 개입했을 가능성이 제기돼 왔다. 엡스타인은 2018년 작성한 이메일에서 영국 '더미러'의 탐사 보도를 인용해 맥스웰이 모사드를 협박했다가 살해됐다고 주장했다.
엡스타인이 모사드 요원으로 활동했다는 의혹도 나왔다. 미 연방수사국(FBI)은 한 정보원이 "엡스타인은 에후드 바라크 전 이스라엘 총리와 가까웠고 그 아래서 첩보 훈련을 받았다"고 보고했다고 밝혔다. 기밀 해제된 FBI 문서에는 "엡스타인이 모사드에 포섭된 요원이라는 확신을 갖게 됐다"는 표현도 담겼다.
장지민 한경닷컴 객원기자 newsinf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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