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협력업체 직원에게 548일간 '대리 근무시간 입력'을 시키고 회사 부동산 거래를 특정 부동산 업체에 몰아주는 등 전방위적인 비위를 저지른 한국전력 간부를 해고한 것은 적법하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18일 법조계에 따르면 광주지방법원 제14민사부는 지난 1월 한국전력공사의 전 부장 A씨가 회사를 상대로 낸 해고무효확인 소송에서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다. 전문가들은 지방 공기업의 모럴해저드가 심각한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548번 대리 출근입력에 231번 지각...'26년 베테랑'의 몰락
26년간 한전서 근무하며 공로상까지 받은 A씨의 몰락은 그가 2020년부터 2024년까지 OO지역 지사의 부장으로 재직하던 시절 벌인 비위 행각에서 시작됐다. 판결문에 따르면 A씨가 저지른 비위는 직위를 이용한 '생활형 비리'와 '갑질'이 뒤섞인 양상이었다. 2022년 A씨는 1만 8000원 상당의 회사 홍보용 손톱깎이 세트 75개를 구매하겠다고 결재를 올렸지만 실제로는 업체와 공모해 16만원대 고가 화장품 세트 8개로 바꿔 개인적으로 사용했다.
부하직원과 동행 출장했으면서도 각자 차량을 이용한 것으로 처리하거나, 당일 출장을 1박 2일로 처리해 수당으로 106만원을 챙긴 사실도 적발됐다. 2020년부터 4년간 총 47차례에 걸쳐 허가되지 않은 관외 지역에서 법인카드를 500만원 정도 부당 사용하는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횡령)'도 적발됐다. 그밖에 2021년과 2023년 두 차례에 걸쳐 OO지역 한전 사택 매매계약을 체결하면서 담당 직원에게 자신의 지인이 운영하는 광주 소재 부동산 업체를 통하도록 압력을 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가장 황당한 것은 협력업체 직원에 대한 갑질이었다. 유연근무제를 쓰던 A씨는 시설관리 협력업체 직원에게 자신의 사내 PC 비번을 알려주고 3년 동안 548일 동안 '유연근무 출근 시간'을 대신 입력게 했다. 이 기간에 A씨는 총 231번 지각했으며, 누적 지각시간만 3990분에 달했다. 결국 A씨는 징계에 회부되 해고 처분을 받게 됐다.
A씨는 재판에서 근무시간 대리입력에 대해 "어머님의 건강 사유로 광주에서 OO지역으로 매일 출퇴근하면서 지각이 잦자 안타깝게 여긴 협력업체 과장이 먼저 제안한 것"이라며 "유연근무제에서는 출근시간 10분 이내 입력하면 지각으로 보지 않는 게 관행"이라고 주장했다. 법카에 대해선 "관외 지역 직원들과의 네트워크 형성을 위해 쓰는 게 관행"이라고 주장했고, 특정업체 부동산 이용에 대해서는 "OO지역 부동산 업체들은 담합을 해 믿을 수 없어 지인을 소개한 것"이라고 강변하는 등 변명으로 일관했다.
○전문가들 "사적 비위 관행으로 방치하면 공공신뢰 훼손" 지적
하지만 법원은 A 부장에게 적용된 혐의를 대부분 인정하고 해고가 과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근무시작까지 도착하지 않았고, 지각을 알리지 않은 것은 취업규칙 위반"이라며 "본인이 정시(8시) 출근이 쉽지 않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유연근무 출근 시간을 7~8시로 설정하는 등 지각을 당연하게 여겼다"고 꼬집었다.
대리 근무 시간 입력에 대해서도 "협력업체 과장은 요청을 거절하기 어려운 지위에 있었고, 해당 과장 역시 '(대리입력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대부분 대신 체크했다'고 진술한 점을 고려하면 부당한 요구에 해당한다"고 꼬집었다.
재판부는 사택 매매 개입에 대해선 "해명이 지나치게 주관적이며, 적정 가격이나 싼 가격으로 거래를 체결했다고 해도 특정인에게 중개수수료 이익을 얻게 한 것은 특혜로 회사 윤리강령에 위배된다"고 지적했다. 결국 회사의 해고 처분이 적합하다고 판단해 회사 측의 손을 들어줬다.
한 HR분야 전문가는 "비밀번호만 공유하면 누구나 대리 입력이 가능한 엉성한 근태 관리와 협력업체에 대한 사적 갑질을 방치 한게 548일간 장기 비위의 원인이 됐다"며 "관행이라는 이름아래 이뤄진 사적 비위가 결과적으로 회사에 대한 공공의 신뢰를 훼손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에 대해 정상태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는 "수위 높은 비위 행위에 대해 엄정 처분을 하지 않을 경우 자칫 '전례'나 '관행'이 될 수 있다"며 "제도의 악용 가능성을 차단하는 강력한 처벌이 신뢰 회복의 최우선 과제"라고 짚었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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