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저녁 7시에 석촌역에서 감자튀김 드실 분."
"내일 감자튀김 먹으면서 수다 떠실 분 있나요?"
"전 눅눅 감튀가 좋던데, 흐물흐물 맛있어요."

중고거래·지역 커뮤니티 플랫폼을 중심으로 감자튀김만을 함께 먹는 이른바 '감튀모임'이 MZ세대 사이에서 빠르게 번지고 있다. 햄버거나 다른 메뉴 없이 감자튀김 여러 개를 주문해 테이블 위에 쌓아놓고 함께 나눠 먹는 단순한 만남이 새로운 소모임 문화로 자리 잡는 모습이다.
3일 당근 동네 생활 탭에는 지역별로 감튀모임 모집 글이 잇따라 올라오고 있다. "감자튀김 같이 먹을 사람"이라는 짧은 문구 하나로 시작된 공지에 참여자가 몰리며 규모가 커졌고, 이날 기준 참여 인원이 1000명이 넘는 모임방도 등장했다. 800명, 300명 등 수백 명이 모여 있는 방도 지역마다 생성됐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하고 있다.
모임 방식은 단순하다. 약속한 시각에 동네 패스트푸드점에 모여 감자튀김을 주문한 뒤 이야기를 나누며 먹고 자연스럽게 해산한다. 지속적인 관계를 전제로 하지 않는 일회성 만남이라는 점에서 기존 동호회나 취미 모임과는 다른 분위기다.

감튀모임은 점차 놀이 요소를 더하며 확장되는 분위기다. 프랜차이즈별 감자튀김의 두께와 식감, 염도 등을 비교해 순위를 매기거나 평가표를 만드는 글도 등장한다. 갓 튀긴 '바삭감튀'와 시간이 지나 부드러워진 '눅눅감튀' 중 무엇이 더 맛있는지를 두고 취향 논쟁이 벌어지기도 한다.
"마라 감자튀김 새로 나왔는데 드실 분?", "케이준 감자 맛있는데 같이 드실 분 구합니다" 같은 글이 올라오며 모임 장소가 정해지고, "오늘 저녁 잠실역에서 감자튀김 먹으실 분"처럼 번개 모임이 만들어졌다가 금세 사라지는 식이다.
◇기자가 찾은 '감튀모임'…"진짜 감튀만 먹고 끝났다"
전날 기자가 직접 감튀모임에 참석해보니 현장 분위기는 예상보다 훨씬 가벼웠다. 오후 7시 30분, 당근에 올라온 '마포 감튀모임' 공지를 따라 맥도날드 망원점에 들어서자 이미 몇 명이 자리에 앉아 있었다.참석자는 총 7명. 홍대입구, 서울역, 서초 등 거주지는 달랐지만 이날 목적은 하나였다. 감자튀김을 먹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었다.
모임은 별다른 절차 없이 자연스럽게 시작됐다. "몇 개 시킬까요?"라는 질문에 "12개쯤이면 되지 않을까요?"라는 답이 돌아왔고, 감자튀김 12개를 주문한 뒤 모임장을 정해 N 분의 1로 비용을 정산했다.
잠시 후 테이블 위는 순식간에 감튀로 가득 찼다. 감자튀김이 산처럼 쌓이자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 "이거 다 먹을 수 있어요?"라는 농담이 오갔고, 곧바로 각자 감자튀김을 집어 먹으며 가벼운 대화가 이어졌다. "바삭파세요, 눅눅파세요?" 같은 질문에서 시작된 대화는 감자튀김 취향부터 요즘 고민, MBTI, 학교와 직장 이야기까지 자연스럽게 넓어졌다.
누군가는 감자튀김을 아이스크림에 찍어 먹는 조합을 추천했고, 다른 참석자는 "소금은 처음부터 뿌리면 안 된다"며 자신만의 비법을 소개했다. 처음 만난 사람들이었지만 어색함은 오래가지 않았다.

약 1시간 30분이 지나자 처음엔 "이걸 다 먹을 수 있을까" 싶었던 감자튀김은 어느새 모두 사라졌다. 별도의 뒤풀이도 없었다. 감자튀김을 다 먹자 모임은 빠르게 끝났다. 단톡방에는 "오늘 재밌었습니다", "다음에 또 다른 감튀모임에서 만나면 인사해요", "조심히 들어가세요" 같은 짧은 인사가 오갔고, 감자튀김 사진 몇 장이 공유된 뒤 방은 금세 잠잠해졌다.
참석자들은 감튀모임의 장점으로 부담 없는 참여 방식을 꼽았다. 벌써 세 번째 감튀모임이라는 강현규 씨(20)는 "당근에서 처음 보고 너무 재밌어 보였다"며 "감튀모임은 음식을 나눠 먹기도 쉽고 그래서 좋았다. 분위기가 방마다 정말 다른데 어느 모임은 감튀얘기만 하기도하고 어느 모임은 다양한 얘기를 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대학생 정소희 씨(21)도 "지난번에는 20명이나 모여서 엄청나게 복작복작했다. 거기에 모인 모든 사람이 우리가 감자를 먹는 걸 다 구경하더라"며 "연고 없는 사람들이 모여 떠드는 게 너무 재밌었다. 또 다른 모임이 생기면 참여해보고 싶다"고 했다.
◇감자튀김 중심 놀이형 소비 확산

이 같은 유행에 외식 프랜차이즈 업계도 반응하고 있다. 롯데리아와 맥도날드는 공식 SNS에서 감튀 모임을 언급하며 화제에 동참했고, 롯데리아는 전날 홍대점과 신림점에서 원하는 소스를 자유롭게 가져갈 수 있는 '소스 콜키지 프리' 이벤트를 진행하기도 했다. 단순한 유행을 넘어 감자튀김을 중심으로 한 놀이형 소비가 확산하는 분위기다.
감튀모임이 인기를 끄는 배경으로는 낮은 비용과 부담 없는 관계가 꼽힌다. 감자튀김은 햄버거 세트보다 저렴한 사이드 메뉴라 경제적 부담이 적고, 더치페이나 당근 페이로 간단히 정산할 수 있다. 무엇보다 관계를 오래 이어가야 한다는 압박이 없다.
실제로 감튀모임 공지글에는 이러한 '느슨한 만남'의 성격이 분명히 드러난다. 한 모집 글에는 "감자튀김 모임을 계기로 이루어지는 활동이라 하더라도 당근 모임 외에 별도로 이루어지는 만남이나 연락은 권장하지 않습니다. 각자 조심해서 신중하게 판단해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안내가 적혀 있었다.
이어 "상대방이 원하지 않는 개인 연락처 요구, SNS 계정 공유 강요 등 사생활을 침해할 수 있는 행위는 자제해 달라, 즐겁게 만나 함께 감자튀김을 먹고 서로를 존중하며 좋은 시간을 보내는 것"이 모임의 취지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전문가 "익명성 기발 단발적, 느슨한 연결이 인기 비결"

전문가들은 감튀모임의 확산 배경으로 동네 커뮤니티 기반의 익명성과 느슨한 연결이 단발성 만남 문화와 맞아떨어진 점을 꼽는다. 짧은 시간 동안 함께 몰입해 즐기고, 감자튀김을 다 먹으면 각자 일상으로 돌아가는 방식이 새로운 소모임 형태로 자리 잡고 있다고 분석한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감튀모임은 부담 없이 참여할 수 있지만, 단순히 의미 없이 모이는 자리가 아니라 감자튀김을 함께 먹는다는 분명한 목적이 있는 모임"이라며 "유연하면서도 가벼운 분위기 자체가 매력으로 작용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구 교수는 "요즘은 누군가를 만날 때 노골적으로 이성적 목적을 추구하는 방식이 세련되지 못하다고 받아들여지기도 한다"며 "함께 무언가를 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즐거움을 느끼는 형태의 만남이 확산하고 있다. 감튀모임은 느슨한 만남과 연대를 추구하면서도, 그 안에서 재미와 취향을 공유하려는 문화가 반영된 사례"라고 덧붙였다.
유지희 한경닷컴 기자 keeph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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