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흔 무렵 참담한 실패를 겪은 뒤 바닥을 친 인생을 일으키려는 갸륵한 의욕을 품었다. 생업을 접고 지인들과 소통을 끊은 채 고립된 처지를 견뎌냈다. 장차 무엇으로 밥벌이를 해야 할지 모르는 막막함에 빠져 갈팡질팡하다가 서울 살림을 화물차에 싣고 시골로 내려왔다. 시골로 가자! 시골에 살길이 있다는 가느다란 희망을 품고 무작정 이삿짐을 꾸린 것이다. 인구 1000만의 대도시에서 수돗물만 먹고 자란 처지로 낯선 땅에 낙향해 자리를 잡은 것은 언감생심 영농후계자가 되려는 야심 때문은 아니었다.
시골 오기 전에는 냉이에 대해 잘 몰랐다. 마트에서 사다 먹던 냉이를 땅에서 캐고 데쳐서 조리한 것도 첫 경험이었다. 겨우내 김장김치를 파먹다가 풋것으로 볼가심을 할 요량으로 호미를 들고 묵정밭으로 나갔는데, 아직 땅에서는 쑥, 고사리, 쇠비름, 민들레 등속은 싹이 돋기 전이다. 냉이와 지칭개는 너무 닮아서 구별하기 어렵다. 냉이를 캐는 할머니들께 어떤 게 냉이냐고 묻자 바구니 속을 들어 보이며 “이게 냉이여!”라고 웃는다. 눈에 불을 켜고 들여다보니 묵정밭 땅거죽에 들러붙은 냉이가 드문드문 눈에 띄었다. 냉이를 캘 때는 호미를 흙에 살짝 밀어 넣고 뿌리가 다치지 않게 들어 올린다. 그건 냉이가 뿌리째 먹는 식물인 까닭이다.햇볕이 도타워지면서 시골 어디서나 구할 수 있는 냉이, 달래, 쑥, 쇠비름, 민들레, 망초, 고사리, 원추리, 질경이 같은 것은 자연이 베푸는 훌륭한 제철 먹거리다. 냉이는 밭두렁이나 노지 아무 데서나 언 땅에 뿌리를 박고 눈비를 맞으며 자란다. 얼었다 녹은 들판은 온통 먹거리 천지다. 저수지 건너편 앞산에 올라 어린 고사리를 끊어다 볶고, 밭고랑에서 캔 냉이와 달래는 뿌리째 조리하고, 쇠비름과 원추리 등은 끓는 물에 데쳐 된장에 무쳐서 먹는다.
겨울이 끝나면 냉이가 온다. 냉이를 캘 생각만으로 심장박동이 빨라지는 것이다. 냉이의 쌉쌀한 맛과 향긋한 생취는 한겨울 추위를 견딘 보상일 테다. 냉이는 잃었던 입맛을 되찾는 데 보탬이 된다. 땅의 정기를 품은 냉이를 잘 씻은 뒤 끓는 물에 데친다. 냉이를 꺼내 된장, 멸치액젓, 들기름 몇 방울을 떨어뜨려 조물조물 버무려 밥상에 올린다. 갓 지은 밥을 떠서 된장에 버무린 냉이를 함께 밀어 넣으면 입안에 봄 향기가 가득 찬다. 밥알을 세듯이 씹고 냉이의 생취를 음미하며 한 끼를 먹노라면 왠지 세상이 살 만해진 느낌이 밀려든다. 언 땅에서 진눈깨비를 견디며 자라는 파릇한 냉이를 데쳐 밥 한 공기를 비우니, 혓바닥에 밴 묵은 김치의 소금기가 말끔하게 씻겨 내려간다.
냉이는 식곤증이 밀려오는 봄철에 필요한 영양소가 듬뿍 든 식재료다. 냉이 된장찌개를 끓일 때는 잘 씻은 냉이 한 줌, 된장과 고추장, 두부, 양파, 대파, 애호박, 청양고추, 홍고추, 다진 마늘 등을 쓰는데, 쌀뜨물이나 멸치다시마 육수를 써서 깊은 맛을 낸다. 진눈깨비를 맞으며 자란 냉이 한 줌을 넣고 끓인 된장찌개를 목구멍으로 넘기면 아, 내가 비로소 어른이구나, 하는 자긍심 같은 게 가슴 밑바닥에서 올라온다. 냉이 된장찌개에 밥 한 공기를 거뜬히 비우면 한의원에서 지어온 보약 한 첩을 먹은 듯 온몸에 활력이 솟는다.
나는 육식을 썩 내켜 하지 않는다. 폭식이나 탐식과도 거리가 멀다. 캐비어나 푸아그라, 훠궈, 마라탕 같은 비싼 먹거리를 찾아 먹지도 않는다. 핏물 도는 스테이크 큼직한 조각을 잘라서 삼키고 싶거나 헛헛한 속을 달래려고 소고기 등심을 씹어 삼키며 배를 채운 적이 없진 않다. 시골에선 채식을 더 자주 했다. 제철 야채의 맛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인생이 진절머리 나는 순간은 한밤중 냉장고에서 꺼낸 치킨 튀김이나 피자 조각 같은 걸 꾸역꾸역 삼키며 허기를 채울 때다. 냉각된 치킨 튀김을 우적우적 씹노라면 사는 게 비참하고 슬퍼지는 것이다. 그에 반해 봄날 저녁 따뜻한 밥 한 공기와 냉이를 넣고 끓인 된장찌개를 뜨는 것은 어떤가? 뜨거운 냉이 된장찌개를 한술 뜨고, 아삭아삭 씹히는 섞박지 한 종지, 구운 김과 고등어자반을 반찬 삼아 잡곡밥 한 공기를 비울 때 속으로 아, 나는 복된 사람이구나, 하는 것이다.
시골로 내려온 것은 기진한 몸을 살리는 묘책이었다. 왜 이 불편한 시골로 살러 왔냐고 꼬치꼬치 캐묻지 마라. 드잡이가 일상인 대도시에 염증과 역심이 돋아서라고 해두자. 자, 오늘 잡곡밥을 지어 냉이를 무치고 냉이 넣은 된장찌개를 끓여 밥 한 공기를 비우며 겨우내 잃었던 입맛을 되찾는 건 기특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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