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여 년 전 우리나라는 민주화됐다. 현재 가장 큰 문제는 권력의 균형이 급격히 무너지고 있다는 것이다. 균형이라는 관점에서 그렇다. 권력을 가진 일부 과두(oligarch)와 국민 개인 간의 균형 말이다. 조금 심하게 이야기하면 노예의 나라로 전락하고 있다. 감성적으로 이야기하면 팬덤의 나라라고 할 수도 있겠다. 어쩌면 그러한 맥락에서 국제투명성기구(TI) 한국지부는 우리나라의 부정부패 상황을 ‘엘리트 카르텔에 의한 이익 편취’라고 표현한 것일지도 모르겠다.과두의 핵심은 정치, 관료제, 기업, 이익집단이다. 이들 간 합종연횡으로 집단권력이 형성되고, 국민 개인은 소외돼 힘의 균형은 완전히 무너지는 것이다. 어느 사회나 권력을 지향하는 과두가 발생하고 존재한다. 일부는 생존을 위한 투쟁 과정에서 과두로 부상하기도 한다. 그들은 국민이 선거로 뽑지 않는다. 유일하게 정치인을 국민이 선거로 선출한다. 정치가 다른 과두들을 통제하고 관리해 권력의 균형을 추구해야 하는 기능을 감당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가장 기본적인 메커니즘이 고장 나 있다. 정치의 타락 때문이다. 전문적인 선수들의 선전, 광고, 홍보, 감성팔이에 국민이 속고 있는 것이다. 섬네일 비즈니스가 정치를 대체해가고 있다.
첫째, 자질을 갖춘 정치인이 잘 보이지 않는다. 세계관과 철학은 협소하거나 극악하게 왜곡돼 있고, 기본적인 역량은 국민의 평균 수준에도 미치지 못한다. 진지한 청년들의 취업 준비에도 비교될 수 없을 만큼 준비도 돼 있지 않으며, 태도 역시 사회의 보편적인 기준에 비해 겸손과 공감 수준이 매우 미흡하다. 무엇보다도 격변하는 국제 지경학 환경에서 복잡하고 불확실한 이슈를 다뤄본 경험이나 경륜이 보이지 않는다.
둘째, 정치의 인센티브 구조가 엉망으로 왜곡돼 있다. 우리나라 국회의원은 보좌진 연봉까지 고려하면 세계 최고 대우를 받는다. 세계를 경영하는 미국의 의원들이 받는 수준이다. 신기한 것은 똑똑한 보좌진이 제도와 정책을 다루고, 한가해진 국회의원들은 국민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권력 놀음과 부패에 심취해 있다는 것이다. 유능한 부하들의 뒷받침에 힘입은 탐욕스럽고 게으른 보스들의 모습은 우리나라 대부분 공공 조직에서 그대로 반복되고 있다. 건달들의 축제와 출세를 위한 한탕이 우리나라 정치의 기본적인 목적으로 관찰된다.
셋째, 정치의 실질적인 권한이 너무 크다. 관료제와 레거시 언론의 적당한 타협으로 정치는 기존 질서와 제도를 너무 쉽게 바꿔버린다. 결과적으로 이권이 그렇게 흘러 다니게 된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여야가 적당히 서로 주고받으면서 수없이 많은 쓸데없는 사회간접자본과 경기장, 문화시설, 공항을 지어냈다. 또한 비대한 공공부문 인사까지 깊숙이 관여하고 있다. 타락한 정치의 영향이 너무나도 강력하고 깊숙이 사회에 침투하는 것이다.
넷째, 지난 2~3년 전부터는 우리나라 공론의 장이 국제 첩보 정보전의 전장이 돼 가는 것 같다. 안토니오 그람시의 진지전(war of position) 업그레이드 버전으로, 심리 및 인지전 양상을 띠고 있다. 용감하고 도전적인 우리 한국인의 집단적인 기억과 경험을 해체하고 재구성하려는 그런 시도도 보이고, 온갖 잡다한 집단사고 흐름의 실험과 자극도 보인다. 내적 역량이 없는 우리 정치가 외부 영향이나 공작에 매우 취약해져 가고 있다.
우리나라 속성상 아무래도 중앙권력의 흐름에 개인들이 원자화돼 빨려 들어가는 경향이 있다는 것은 매우 오래된 관찰이다. 하지만 그럴수록 이제는 개인이 당당하게 나서야 할 때다. 나름의 가치관과 소신을 갖고 활발한 참여와 교류를 통해 정치 타락을 막고, 과두와 개인 간 권력의 균형을 되찾아 와야 한다. 디지털 네트워크와 인공지능(AI)을 통해 이제는 가능한 시대가 열렸다. 최근 발표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의 생성형 AI 구독료가 연간 1조원에 달하며, 이용자 확산 속도는 세계 1위라고 한다. 너무나 반가운 소식이다. 국민들이 개인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을 돕는 정신, 토론, 서비스, 문화, 연대가 압도적으로 창발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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