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을 넘나드는 초국가 범죄가 늘어난 데다 스테이블코인 등 가상자산을 활용한 은폐 방식이 나날이 진화한 여파다. 교묘해지는 자금세탁 방식에 발맞춰 금융당국의 수사 역량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3일 금융위원회 금융정보분석원(FIU)에 따르면 작년 한 해 금융당국에 보고된 자금세탁 의심 거래는 총 130만 건에 달했다. 2024년 100만 건에서 1년 새 30만 건이나 폭증했다. 금융회사는 불법 자금이나 자금세탁 행위로 의심되는 금융거래를 당국에 보고해야 한다.
자금세탁 의심 거래가 급증한 것은 가상자산을 활용한 범죄 행위가 횡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약 거래부터 중고차 수출까지 불법 수익을 적법한 자금처럼 세탁하려는 움직임이 전방위로 확산하고 있다는 게 금융당국의 판단이다.암호화폐를 활용한 환치기 범죄도 판치고 있다. 지난 5년간 관세청과 FIU 등이 적발한 환치기 범죄 규모는 약 11조5000억원에 이른다. 이 중 83%(약 9조5000억원)가 가상자산을 활용한 것으로 파악됐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상당수 자금세탁 거래가 미신고 가상자산거래소를 이용한 것으로 파악된다”고 말했다.
환치기 적발 작년 2조원 육박…수출대금 조작해 '관세 탈루'도
국내 상황도 마찬가지다. 금융위원회 금융정보분석원(FIU)에 따르면 작년 자금세탁 의심 거래 보고 건수는 130만 건에 달했다. 고액 현금거래, 환치기 등 각종 범죄로 의심되는 금융거래가 하루에만 3500건 발생하고 있다는 얘기다.
최근 국내에서 마약 범죄가 급증한 것은 마약 거래를 통해 얻은 불법 수익을 손쉽게 적법한 자금으로 세탁할 수 있어서다. 울산지방검찰청에 따르면 최근 가상자산 환전업체를 통해 마약 거래 자금을 가상자산으로 세탁한 범죄조직의 불법 수익이 대거 환수됐다. 이들은 텔레그램에서 활동하는 마약 판매상의 의뢰를 받아 마약 매수금을 가상자산으로 세탁하고, 그 수수료를 약 16%씩 받는 방식으로 이익을 거둔 것으로 파악됐다.
오픈채팅방·유튜브 등을 통해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불법 도박사이트도 자금세탁 통로로 활용되고 있다. 특히 운영자·모집책·광고책 등 조직 체계를 갖추고 해외에서 서버를 운영하는 등 초국경 범죄 형태로 진화하고 있어 수사에 큰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알려졌다.
가상자산을 통한 환치기 범죄도 기승을 부리고 있다. 관세청과 FIU에 따르면 작년 한 해 동안 적발된 환치기 범죄 규모는 약 1조9000억원으로 이 중 80%에 달하는 1조5000억원가량이 가상자산을 활용해 이뤄졌다. 환전업자가 텔레그램으로 고객(송금의뢰인)을 모집하고, 해외 공모자에게서 스테이블코인(테더)을 전송받아 국내 가상자산거래소를 통해 현금화한 뒤 국내 수령인에게 지급하는 식이다.
당국 관계자는 “원화로 세탁된 현금을 출금해 수익을 챙기고 있다”며 “가상자산으로 거래를 은폐하거나 수출 가격을 조작해 관세를 탈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우리나라 최대 중고차 수출국인 리비아에 세탁된 자금이 송금되는 사례도 적지 않다는 분석이다. 인천본부세관에 따르면 작년 11월까지 리비아로 수출된 중고차는 총 13만7765대(2억2520만달러)로, 이 중 상당수가 가상자산을 활용해 자금세탁이 이뤄진 것으로 금융당국은 파악하고 있다.
금융권에서는 새로운 무역 결제 수단으로 떠오른 스테이블코인을 활용한 범죄를 촘촘하게 적발하지 못할 경우 자금세탁 규모가 매년 폭증할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스테이블코인이 비용과 시간이 많이 드는 기존 외환 결제를 빠르게 대체할 수 있어서다. 일반적으로 기업 간 무역 거래를 체결하면 수입업체는 현지 통화를 달러로 바꾸고, 수출업체는 달러를 현지 통화로 환전한다. 이때 환전 수수료가 발생한다.
또 송금이 완료될 때까지 2~5영업일이 걸린다. 업계 관계자는 “편리성과 안전성을 확보한 스테이블코인 활용 거래가 확대되면 이를 악용한 범죄가 덩달아 증가할 가능성이 높다”며 “자금세탁 방식과 범위가 빠르게 확대되고 있는 만큼 이를 통제·관리해야 하는 금융당국 및 수사기관의 조사 방식과 인력, 제재 수단을 대폭 늘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재원/서형교 기자 wonderfu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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