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비디아의 차세대 그래픽처리장치(GPU)인 '파인만' 생산에 TSMC의 1.6나노(㎚·1나노는 10억분의 1m) 공정이 가장 먼저 적용될 것이라는 대만언론 보도가 나왔다. 빅테크들의 2나노 수요가 폭증하는 상황에서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대만을 방문해 TSMC 고위급과 만찬을 가진 것에 대한 해석이다. 업계에선 황 CEO가 파인만 로드맵을 앞세워 초미세 공정 물량을 조기에 확보하겠다는 의지를 TSMC에 강력하게 보였을 것으로 분석했다.
현지에서도 황 CEO가 최근 대만을 찾은 것을 두고 단순한 방문이 아니라 TSMC 2나노 및 후속 공정인 A16 공정의 물량 확보를 위한 고강도 협상 성격이 짙다고 해석하고 있다. 그 배경에는 물량이 곧 경쟁력이라는 AI 칩 시장의 현실이 깔려 있다. 현재 칩 공급 현황을 보면 TSMC의 2나노 생산 능력은 주요 고객사들에 의해 대부분이 예약이 끝난 상태다. 웨이저자 TSMC CEO도 최근 2나노 공정 수요가 예상보다 훨씬 강하다고 언급한 바 있다.
황 CEO는 TSMC 경영진과의 만찬 이후 기자들과 만나 "엔비디아의 웨이퍼 수요만으로도 TSMC가 향후 10년간 생산능력을 100% 이상 늘려야 한다"며 "TSMC는 매우 열심히 일하고 있지만 수요가 워낙 많아 더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황 CEO가 참석한 타이페이 만찬에는 웨이저자 CEO를 비롯해 친융페이 TSMC 수석부사장 겸 공동최고운영책임자(COO), 영 류 폭스콘 회장 등 대만 핵심 공급망 기업 경영진이 참석했다. 대만 언론은 참석 기업들의 시가총액 합계가 1조 달러(1448조7000억원)에 이른다며 '1조 달러 만찬'으로 불렀다.
황 CEO의 이번 발언은 TSMC의 생산 능력이 이미 한계에 직면했다는 점을 재확인했다. 웨이저자 CEO는 지난해 11월에도 "첨단 노드 생산능력이 AI 수요 대비 약 3배 부족하다"며 "충분하지 않고, 충분하지 않고, 여전히 충분하지 않다"며 수요 폭증을 생산이 도저히 따라가지 못할 정도라고 토로했다. TSMC는 2024년 기준 연간 1700만장의 12인치 웨이퍼 생산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2025년 생산량 증가로 이 수치가 더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황 CEO가 제시한 10년간 2배 증설이 실현되면 TSMC의 연간 생산능력은 3400만장 이상으로 확대돼야 하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차별화 지점은 메모리 아키텍처다. 루빈이 HBM4·HBM4E 기반이라면 파인만은 HBM의 다음 세대를 채택한다. 이는 단순히 대역폭을 늘리는 차원을 넘어 한 GPU가 처리할 수 있는 모델 파라미터와 컨텍스트(AI가 한 번에 머릿속에 담고 생각할 수 있는 텍스트·이미지·토큰의 양) 길이를 크게 확장하는 방향이다. 현재 AI 성능의 한계는 연산보다 메모리 용량과 이동 비용에서 먼저 드러난다. 파인만은 이 병목을 하드웨어 레벨에서 풀어 GPU 간 NVLink 등 통신에 대한 의존을 줄이고 더 많은 작업을 단일 가속기 안에서 끝내도록 설계될 가능성이 크다.
연산 측면에서도 파인만은 AI 특화 가속의 다음 단계를 겨냥한다. 블랙웰이 트랜스포머·어텐션에 최적화된 텐서 코어와 명령어 집합을 대폭 확장했다면 루빈은 학습과 추론의 균형을 강화한다. 쉽게 말해 자동차로 비유하면 블랙웰은 고속도로에서 빨리 달리도록 만든 엔진이고, 루빈은 고속도로와 시내를 모두 잘 달리게 만든 엔진이다. 파인만은 한 단계 더 나아가 산길·비포장도로·신호등이 많은 복합한 도로까지 달리게 해주는 엔진을 목표로 한다.
TSMC의 A16 공정은 정보가 제한적이지만 업계가 공유하는 설계 데이터와 분석을 종합하면 2나노 강화판인 N2P 대비 뚜렷한 개선폭을 보이는 것으로 평가된다. 동일 전력 조건에서의 동작 속도가 약 8~10% 높아지고, 전력 효율은 15~20%가량 개선될 것으로 예상된다. 트랜지스터 집적도 역시 7~10% 확대돼 같은 면적에 더 많은 연산 자원을 담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TSMC는 폭증하는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역대 최대 규모의 설비 투자를 단행하고 있다. 회사는 지난해 한 해에만 409억 달러(59조2400억원) 규모의 투자 계획을 밝혔다. 이미 9개의 신규 생산시설을 건설에 돌입한 가운데 8개가 첨단 웨이퍼 팹이고 1곳은 CoWoS(Chip-on-Wafer-on-Substrate) 등 최첨단 패키징 팹이다. 올해 설비 투자 계획은 이보다 더 증가한 560억 달러(81조1200억원) 규모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할 전망이다. 지난 분기 삼성전자 영업이익의 4배가 넘는 돈이다.
미국 애리조나주 팹 21 2단계 생산시설은 당초 2028년 목표였으나 2027년으로 1년 앞당겨졌다. 이 공장은 내년 여름부터 장비가 도착해 대량 생산 체제를 갖출 예정이다. TSMC는 대만 내 타이중, 신주, 가오슝 등에서도 2나노에서 1.4나노에 이르는 차세대 초미세공정 중심의 신규 팹 증설을 진행 중이다. 업계 관계자는 "TSMC의 파운드리 기술력은 탄산수, 카라멜 색소, 설탕, 오렌지 오일 등 천연 향료, 인산을 신의 비율로 배합해 생산하는 코카콜라의 핵심 비밀에 비견될 정도"라며 "삼성전자나 인텔이 아무리 투자해도 엔비디아는 시선을 돌리지 않고 TSMC의 생산 능력 확대만을 기다릴 것"이라고 말했다.
강경주 기자 qurasoh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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