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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살수록 수십조 증발"…금융시장 뒤흔든 '장수 리스크' [글로벌 머니 X파일]

입력 2026-02-06 07:00   수정 2026-02-06 07:17

이 기사는 국내 최대 해외 투자정보 플랫폼 한경 글로벌마켓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최근 글로벌 자본 시장의 이른바 ‘장수 리스크’가 커지고 있다. 알츠하이머 진행을 늦추는 신약, 비만 치료제의 확산 등으로 기대수명이 연장되면서다. 사망 시까지 확정 연금을 지급해야 하는 글로벌 연기금과 보험사의 관련 부채가 크게 증가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연금 위험 이전 증가
6일 영국 연금 전문 매체 '프로페셔널 펜션스'에 따르면 영국 내 확정급여형(DB) '연금의 위험 이전(PRT)'의 누적 거래액이 지난해 5000억 파운드를 돌파했다. '연금 위험 이전'은 확정급여(DB)형 연금에서 기업이 미래 연금 지급 의무와 그에 따른 각종 위험을 보험회사 등 제3자에게 넘기는 거래·구조를 뜻한다. 기업들은 자신들이 감당할 수 없는 불확실성인 '은퇴자들이 예상보다 5년, 10년 더 살게 될 위험'을 돈을 주고 보험사에 떠넘기는 것이다.

작년 한 해 동안 영국에서 체결된 '위험 이전 거래 건수'는 총 380건이었다. 역대 최고치였던 2024년의 기록을 1년 만에 25% 경신한 수치다. 영국 대형 연금 컨설팅사 하이먼즈 로버트슨의 제임스 멀린스 파트너는 최근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2026년에는 수십억 파운드 규모의 초대형 바이인(Buy-in) 거래들이 쏟아지며 또다시 사상 최고 기록을 갈아치울 것"이라며 "우리는 지금 연금 역사의 거대한 변곡점을 지나고 있다"고 말했다.

여기서 ‘바이인(Buy?in)’은 확정급여(DB)형 연금에서 연금 리스크를 보험사에 넘기는 방식 중 하나다. 연금 부채는 그대로 안고 있으면서 그 부채를 뒷받침하는 자산으로 보험사의 단체연금을 사들이는 구조를 뜻한다. 과거 저금리 시대에는 연금 부채의 할인율이 낮아 부채 규모가 커 보이는 것이 문제였다. 최근에는 '가입자가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것이 핵심 리스크로 떠올랐다.
기대여명에 따라 부채 증감
영국 컨설팅사 WTW의 분석에 따르면 만 65세 은퇴자의 기대여명이 현재 가정보다 단 1년만 늘어도 기업이 감당해야 할 연금 부채는 약 4~5% 증가한다. 수백조 원을 굴리는 연기금 입장에서 부채 5%의 증가는 수십조 원의 현금 증발과 지급불능 사태로 이어질 수 있다.

현재 영국 시장은 '바이인(Buy-in)'과 '장수 스와프(Longevity Swap)'이라는 두 가지 도구로 관련 리스크에 대응하고 있다. 바이인은 보험증권을 자산으로 보유하는 것이다. 장수 스와프는 자산은 연기금이 운용하지만 '가입자가 예상보다 오래 살 위험'만 떼어내 파생상품으로 거래하는 방식이다.

영국 연금보호기금(PPF)의 '퍼플 북 2025'에 따르면, 2024년 바이인·바이아웃 및 장수 스와프를 합친 위험 이전 규모는 부채 기준으로 560억 파운드에 달했다. 영국 로이드 뱅킹 그룹의 연금 트러스티는 지난해 3월 51억 파운드 규모의 장수 스와프를 체결했다.

영국 최대 통신사 BT(브리티시 텔레콤)는 글로벌 재보험사 스위스리 및 RGA와 각각 50억 파운드씩 총 100억 파운드 규모의 장수 스와프를 완료했다. 자산 360억 파운드, 가입자 26만 명에 달하는 연금이 리스크의 3분의 1을 시장에 넘긴 것이다.

미국에선 아폴로, 블랙스톤 등 거대 사모펀드(PE)들이 소유한 보험사들이 관련 시장을 주도한다. 이들은 연금 부채를 인수해 자산을 확보한 뒤, 이를 사모 대출이나 대체 투자에 활용해 고수익을 노린다. 미국 생명보험마케팅연구소에 따르면, 2024년 미국 '연금의 위험 이전' 시장의 신규 프리미엄은 518억 달러를 기록하며 전년 대비 14% 증가했다. 계약 건수는 794건으로 역대 최다였다.


캐나다 역시 관련 시장이 뜨겁다. '베네핏 캐나다'에 따르면 2024년 캐나다 '연금의 위험 이전' 시장 거래 규모는 110억 달러(약 15조 원)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관련 모든 리스크를 최종적으로 받아내는 곳은 글로벌 재보험사다. 에이온(Aon)의 분석에 따르면, 작년 9월 기준 글로벌 재보험사의 자본 총액은 7,600억 달러로 전년 대비 6% 증가했다. 평균 자기자본이익률(ROE)은 16%에 달한다. 풍부해진 자본력을 바탕으로 전 세계의 장수 리스크를 흡수한다. 이를 다시 자본시장에서 다양한 파생상품으로 구조화해 유통하는 '리스크의 유동화'가 가속화되고 있다.
의학 혁신의 파급 효과
최근 금융 시장이 장수 리스크에 민감해진 건 의료 기술의 비약적 발전 때문이다. 지난해 유럽위원회는 알츠하이머 치료제 '키선라'의 판매를 공식 허가했다. 앞서 승인된 '레켐비'에 이어 인지 저하 속도를 늦추는 두 번째 '질병 조절 치료제'다. 미국 CMS(메디케어·메디케이드 서비스 센터)는 이미 2024년 7월부터 키선라를 메디케어 급여 적용 대상에 포함했다.

암 생존율도 높아졌다. 최신 논문 '암 통계 2026(Cancer statistics 2026)'에 따르면 전체 암 환자의 5년 상대 생존율은 1970년대 중반 49%에서 2015~2021년 사이 70%까지 치솟았다. 영국 정부는 23억 파운드를 투입해 2035년까지 암 진단 후 5년 생존율을 75%까지 끌어올리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장수 리스크 헤지를 위한 자금 이동은 글로벌 채권 시장에도 영향을 미쳤다. 연기금들은 부채를 보험사에 넘기기 위해 보유하고 있던 주식과 위험 자산을 매각하고 있다. 반면 리스크를 떠안은 보험사들은 장기 부채와 만기를 매칭하기 위해 초장기 국채와 우량 회사채를 확보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고령화 속도의 한국에서도 자본 시장에서 '장수 리스크'가 커지고 있다. 내년 국내에 도입될 규제도 한국 보험사들에 부담이다. 정부는 2027년부터 보험사의 '핵심자본비율' 규제를 대폭 강화할 방침이다. K-ICS(신지급여력제도) 하에서 요구자본 대비 기본자본 비중을 50% 이상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 골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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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완 기자 kjw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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